네이버 이해진 의장이 내년 3월 의장직을 내놓는다는 소식이 20일 알려졌다. 등기이사는 유지하면서 유럽 시장을 정조준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김상헌 대표도 내년 3월 대표직에서 물러나며 후임에는 한성숙 네이버 서비스 총괄부사장이 내정됐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이해진 의장의 선택과 집중

이해진 의장은 유럽 시장 개척을 위해 의장직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이다. 새로운 이사회 의장은 추후 네이버 이사회에서 선임할 예정이며, 이 의장은 신진 시장을 위해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요한다는 방침이다.

사실 이해진 의장의 행보는 성공적인 라인 상장과 더불어 최근 있었던 K-1펀드 참여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먼저 라인 상장. 이해진 의장은 라인이 상장하던 당시 춘천 데이터센터 각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네이버는 라인과 같은 훌륭한 서비스를 빚어내는 화수분”이라며 “막강한 플랫폼 전략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배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는 현재의 스탠스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겠다는 의지다. 이는 역으로 이해진 의장이 새로운 시대를 열 선봉장으로 스스로를 점지했다는 해석도 가능하게 만든다.

지난 9월 프랑스 문화권력과의 만남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네이버는 당시 소동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플뢰르 펠르랭(Fleur Pellerin) 전 프랑스 디지털경제 장관과 유럽 금융전문가 앙투안 드레쉬(Antoine Dresch)가 설립한 Korelya Capital(코렐리아 캐피탈)의 유럽 투자 펀드 ‘K-펀드 1’에 출자 기업으로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네이버와 라인이 K-1 펀드에 각각 5000만 유로씩, 총 1억 유로를 출자한다는 계획이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플뢰르 펠르랭 대표는 프랑스의 ICT 육성책인 프랜치 테크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며 장관 재직 시절 한국을 찾아와 네이버와 인연을 맺기도 했다. 펠르랭 대표는 "네이버 및 라인과 협력하며 시장과 대중에 대한 접근성, 이에 따른 성공 스토리를 유럽 스타트업에 이식해 성숙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며 “다양한 스타트업을 육성해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디지털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네이버와 K-펀드 1의 만남은 구글 타도의 기치를 내건 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그리고 네이버의 유럽시장 진출이라는 키워드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자의 경우 펠르랭 대표가 K-1 펀드 구축을 위해 네이버 및 라인과 협력하기로 결정한 이유를 설명하며 '거대 단일기업의 폐혜'를 지적한 부분이 중요하다.

펠르랭 대표는 "프랑스 정부에서 일하며 ICT가 향후 국가경제의 비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언급하는 한편 인터넷 영역에서 기회의 균등을 강조했다. 동시에 "인터넷 공간은 오픈된 공간이지만 몇몇 주자들이 독점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기업명은 말하지 않겠지만 유럽의 경우에도 몇몇 다국적 기업들이 버티고 있어 제대로 된 가치창출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결론적으로 인터넷 공간의 개방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객체가 활동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지적, 그리고 이를 바꾸기 위해 유럽 스타트업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으며 그 파트너로 네이버와 라인을 택했다는 설명이다. 네이버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네이버의 글로벌 시장 진출 시도도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이해진 의장은 이러한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이해진 의장은 K-펀드 1과의 만남을 두고 "유럽 시장의 교두보 마련"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해진 의장이 누차 강조했지만 네이버의 글로벌 진출은 필사적으로 전개됐지만 그와 비례해 나름의 성과를 거두는 것에는 실패했다. 라인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파급력을 입증하지 못했고, 이를 만회하고자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글로벌 음원 서비스를 실시할 수 있는 믹스오디오까지 인수했으나 실패했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아주 오랫동안 글로벌을, 특히 유럽을 원했다.

그런 이유로 이해진 의장이 내년 3월 의장직에서 물러나 유럽 시장 진출에 전력하겠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네이버의 2차 퀀텀점프를 ‘글로벌’이라는 화두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 출처=네이버

김상헌 대표 물러나고 한성숙 체제로

김상헌 대표가 물러나고 한성숙 네이버 서비스 총괄부사장이 등장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네이버는 김상헌 대표가 물러난다는 소식을 전하며 “8년 간 네이버를 이끌며 글로벌 성장의 기반을 다진 김상헌 대표가 연임 대신 글로벌 서비스 개발을 탄탄하게 추진할 새로운 CEO에게 바통을 넘기는 결정을 내렸다”며 “한성숙 네이버 서비스 총괄부사장이 내정됐다”고 전했다.

아울러 네이버는 “탁월한 균형감각과 유연한 커뮤니케이션으로 회사를 이끌어 온 김 대표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인터넷 업계에서 빠른 전략적 판단과 추진력으로 중심을 잡아 왔다”고 평가하며 “한게임 분할, 라인 상장 등 회사의 굵직한 변화들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안정적으로 경영을 이끌며, 회사를 글로벌 레벨로 끌어 올렸다”고 전했다.

2013년부터는 인터넷기업협회를 이끌며 인터넷 산업 발전을 위한 구심점 역할도 했으며 인터넷 기업들과 스타트업 기업들을 위한 제도적 개선, 상생협력 활동을 전개했고, 글로벌 도약을 위한 인터넷 산업의 발전 역량을 결집하는데도 힘을 쏟았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김상헌 대표가 물러나는 지점은 정치적 부담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넥슨 주식 부당 거래 의혹에 휘말린 김상헌 대표를 계속 품고 가기에 리스크가 크다는 내부적 판단이 있었을 가능성이 업계에 돌았기 때문이다. 특히 네이버는 인터넷 사업자로 활동하며 정부의 규제에 민감한 스탠스를 보여왔다. 이 대목에서 검찰 조사까지 받았던 김상헌 대표와 ‘큰 꿈’을 꾸기에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

김상헌 대표에게 바통을 이어 받아 내년부터 네이버를 이끌 새로운 대표이사에 한성숙 네이버 서비스 총괄부사장이 내정된 부분도 중요하다. 엠파스 검색사업본부장 등 IT업계에서 다양한 경험과 역량을 쌓은 후 2007년 네이버에 합류한 한성숙 서비스 총괄부사장은 현재 네이버 서비스 전반을 총괄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브이 라이브(V LIVE) 등을 통해 글로벌 서비스를 추진하고 네이버의 모바일 전략, 스몰비즈니스에 전념하기도 했다.

▲ 출처=네이버

특히 스몰비즈니스적 측면에서 두각을 보인 대목이 흥미롭다. 지난 4월 네이버는 스몰비즈니스와 콘텐츠 창작자를 위한 미디어 라운드 테이블’을 주최했으며 이 자리에 김상헌 대표와 더불어 한성숙 서비스 총괄부사장이 참석한 바 있다. 당시 한성숙 서비스 총괄부사장은 프로젝트 꽃과 스몰 비즈니스를 아우르는 대단위 플랫폼 전략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결론적으로 이해진 의장-김상헌 대표가 물러나고 한성숙 서비스 총괄부사장이 등판하는 지점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먼저 이해진 의장이 물러나는 장면은 네이버의 글로벌 전략에 있어 선택과 집중을 단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며, 김상헌 대표의 퇴진은 정치적 부담과 더불어 다양한 고민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서비스를 총괄하는 한성숙 부사장의 등판은 향후 네이버가 플랫폼 비즈니스에 주목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대단위 전략을 공격적으로 끌어갈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한편 한성숙 서비스총괄 부사장은 내년 3월 열리는 주주총회의 승인과 이사회 결의를 거쳐 차기 대표이사로 최종 선임될 예정이며 김상헌 대표는 한성숙 내정자가 앞으로 차기 대표이사직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내년 3월 임기까지 업무 인수인계를 돕고, 이후에도 경영자문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