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적 부담 때문이었을까. ‘신동’이나 ‘천재’라고 불려온 그다. 결승선을 30m 앞에 두고 실수했다. 다른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그 다음 대회에서도 본선에서 실수하고 말았다. “부담이 많이 되나 봐요. 이겨야 한다는 압박이 있겠죠. ‘나는 김민찬이니까.’ 이런 생각으로.” 그의 아버지가 그랬다.

드론 천재라 불리는 소년이 있다. 파주 봉일천초등학교 6학년 재학 중인 김민찬 군이다. KT 드론 레이싱팀 기가파이브 소속이다. 올해 초 드론을 날리기 시작해 세계 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다. 상금이 쌓여 올해만 1억원 넘는 돈을 벌었다.

앞날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다. 신동으로서 느끼는 압박은 물론 진로 고민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드론 레이싱이 한때 유행에 머무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다. 김민찬 선수와 그의 아버지 김재춘 씨를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와이 대회로 떠나기 전날인 지난 10월 14일 봉일천초등학교 앞 카페에서 만났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세계 대회 최연소 참가 1등’ 천재거나, 신동이거나

“하고 싶은 연기는 모두 다 할 수 있어요.” 김민찬 선수는 자신감이 넘쳤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다. 지난 3월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 최대 드론 대회 ‘월드 드론 프리 2016’에 최연소 출전한 그다. 묘기를 부리며 장애물을 통과하는 프리스타일 부문에서 1등을 차지했다. 아쉽게도 레이싱 부문에서는 16강에 오르지 못했지만.

레이싱 실력을 입증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올해 7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컵 상하이’ 레이싱 부문에서 55초 56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다음 달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기가 드론레이싱 월드 마스터즈’ 역시 1등을 차지했다. 세계 정상급 선수가 총출동한 대회였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국내외 대회에 참가해 실력을 발휘했다. 드론 레이싱 아시아 랭킹 1위 타이틀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세계 랭킹은 아직 공식 집계되고 있지 않지만 최근 국제항공연맹(FAI) 주도로 순위를 매기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김민찬 선수의 ‘영업 비밀’은 RC 헬기 경험에 있다. 아버지를 따라서 3살 때부터 RC 헬기를 날렸다. 5살 때 관련 대회를 참가하기도 했다. 드론을 처음부터 잘 날리진 못했지만 기본기를 바탕으로 실력이 빠르게 늘었다. 대회에서 RC 헬기 기술을 드론으로도 구사하자 다른 선수들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는 김 선수의 필살기이기도 하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두바이 대회에서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갑자기 조종용 고글이 드론과 연결이 안 됐다. 김민찬 선수는 고글을 벗고 맨눈으로 드론을 조종했다. 관객과 다른 선수들은 놀라워했지만 그에겐 자연스러웠다. 고글을 안 쓰고 날리는 게 일반적인 RC 헬기 조종 경험이 풍부했으니까. 오히려 눈으로 보고 날리면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의 폭이 넓어진다고 설명했다.

김민찬 선수는 승부욕도 대단하다. 바니라는 영국 선수가 있다. 두바이 대회 레이싱 우승자다. 김 선수는 그를 라이벌로 여긴다. 8월에 열린 해운대 대회에서 진검승부를 벌여보고 싶었다. 그런데 대회 초반에 바니가 탈락하고 말았다. “아쉬워 죽는 줄 알았어요.”

제대로 된 훈련 공간도 없는 현실

“새가 된 느낌이에요. 하늘 높은 곳에서 날고 싶은 대로 갈 수 있으니까요.” 김민찬 군이 생각하는 드론의 매력이다. 프리스타일도 매력을 느끼지만 레이싱에 더 매력을 느꼈다. 시속 150㎞로 장애물을 통과하는 짜릿함을 잊지 못했다.

드론 잘 날리는 방법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처음에 날릴 땐 장애물 하나 통과하는 일이 정말 어려웠어요. 두 번째 날리던 날엔 마음먹고 그냥 빠르게 달렸죠. 천천히 달리니까 오히려 실력은 늘지 않더라고요.”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김재춘 씨가 덧붙였다. “레이싱 드론은 부서져도 몇천원이면 수리할 수 있습니다. 반면 RC헬기는 최소 20만~30만원이 들죠. 민찬이는 처음부터 과감하게 날렸습니다. 그게 빠른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됐죠.”

김민찬 선수는 뒤늦게 생긴 늦둥이다. 김재춘 씨에겐 두 딸이 있다. 큰 딸은 대학원 2학년이다. 작은 딸은 대학교 3학년이다. 김민찬 선수는 받은 상금으로 두 누나 등록금을 내줬다. ‘복덩이’가 따로 없다. 현재 돈 관리는 김재춘 씨가 하지만 김민찬 선수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대부분 사준다.

복덩이를 낳은 아버지에게도 고민이 없진 않다. “너 이거 때문에 공부를 못 하잖아.” 김민찬 선수가 멋쩍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원래 이거 하기 전엔 진짜 열심히 공부했어요. 밤 10시까지 학원을 다녔죠. 그런데 드론 대회에 많이 참가하다 보니 학교도 빠지게 되더라고요. 학원은 아예 안 다니고 있어요.”

김재춘 씨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금 드론이 뜨고 있지만 솔직히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원한다면 시켜주겠지만, 사실 민찬이가 공부를 조금 더 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대학도 가야 하니까요. 민찬이가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싶다고 하는데, 일단 공부를 잘해야 가능하잖아요.”

드론 레이싱 선수 생활을 계속한다고 해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단 환경이 문제다. 마땅한 훈련 장소조차 없다. 현재 살고 있는 파주는 대부분이 비행 금지 구역이다. 주변에 군 시설이 많은 탓이다. 일산 킨텍스 주변 한류월드 부지에서 연습을 자주 했는데 최근 공사를 시작해야 하니 연습을 중단해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체계적인 훈련은 당연히 받지 못하고 있다. 세계 챔피언의 훈련법은 다소 소박했다.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컴퓨터 드론 시뮬레이션을 통해 연습하고, 주말에 실제로 드론을 날려보는 식이다. 대회가 있을 경우 코스가 미리 공개되는데, 이를 보고 공터에 장애물을 비슷하게 꾸며놓고 알아서 연습했다.

드론을 바라보는 인식도 국내와 해외의 차이가 컸다. 해외에서는 김민찬 선수를 세계 챔피언에 준하는 대우를 해줬다. 관중들 열기도 뜨거웠다. 중국에서는 5만원이 넘는 입장권을 사서 드론 레이싱 대회를 관람하는 이들이 많았다. 해외 팀에서 김민찬 선수에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래도 의리’라는 생각으로 거절했다.

인터뷰 다음날 김민찬 선수는 아버지와 함께 출국했다. 하와이 대회에 참가하는데 두바이 대회만큼이나 규모가 크다. 그가 라이벌로 생각하는 선수들도 모두 참가한다. 승부의 결과는 10월 22~23일에 밝혀진다. “실수만 안 했으면 좋겠어요.” 김민찬 선수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