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먹을 메뉴를 찾지 못한 날, 간판에 ‘죽’집을 보고 찾아 들어가면 정말 다양한 ‘죽’ 이름들이 많다. 죽은 어느덧 환자들의 식탁에서 건강식으로 대중화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흰 죽에서 벗어나 영양을 생각하는 다양성뿐 아니라 다이어트 차원에서도 죽은 좋은 메뉴이기도 하다. 요즘은 수백 가지의 죽 메뉴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죽인 전복죽, 호박죽 등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죽은 곡식을 조미료 없이 묽게 끓여낸 한국 음식이다. 서양 음식과 비교하면 포리지나 오트밀 정도가 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동양식 죽 요리를 컨지(Congee)라고 하는데, 이는 타밀어로 죽이라는 뜻인 ‘칸지(கஞ்சி, Kanji)’가 포르투갈을 거쳐 영어로 소개되어 생겨났다.

죽의 기원은 언제일까? 우리 선조는 농경문화가 싹트던 시절 곡물과 토기를 갖게 되었고 물과 함께 곡물을 넣어 끓여 먹었다. 아마도 그게 죽의 기원이 될 것이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 유럽에서도 사실 빵보다는 죽을 먼저 즐겼다. 빵이 대중화되기 전에는 거칠게 빻은 밀가루로 끓인 죽을 즐겨 먹기도 했다. 로마군도 전쟁터에서 빵을 구워 먹을 수 없으니 죽을 대신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임원경제십육지(林園十六志)>에 보면 죽 한 사발을 먹으며 배가 비어 있고 위가 허한 사람에게 곡기를 일어나게 해서 몸을 보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나온다. 불교에서는 죽반(粥飯)이라고 하여 아침에는 죽, 낮에는 밥을 먹는 것이 오래된 습관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임원경제십육지(林園十六志)>에는 매화 꽃잎을 눈 녹인 물에 삶아 흰죽에 넣고 끓이는 매죽(梅粥)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매죽은 매화의 청아한 향취를 즐기는 풍류성 가득한 죽이라 할 수 있는데, 질병을 예방하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어 타락죽이라는 이름으로 임금님 점심 수랏상에 오르기도 했다.

요즘은 우유가 흔한 음식이지만 옛날에는 우유는 궁중에서만 먹는 음식이었다. 타락죽의 타락(駝酪)이란 우유를 가리키는 옛말로 쌀을 곱게 갈아서 물 대신에 우유를 넣어 끓인 무리죽이다. 보통 궁중에서는 10월 초하루부터 정월에 이르기까지 내의원에서 암소의 젖을 짜서 만든 타락죽을 진상했는데 이 죽은 소중방에서 끓이지 않고 내의원에서 준비해 보양식으로 임금님께 올렸다고 한다.

죽을 끓이면 곡식의 양은 약 3배 정도로 늘어나게 된다. 이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음식의 양을 불리고 허기진 배를 효과적으로 채우기 위해 죽을 주로 먹었다. 평균 밥 한 공기로 3인분의 죽을 만들 수 있고. 조금 더 묽게 쑤면 4~5인분까지 늘어난다. 양은 늘어나지만 상대적으로 배도 빨리 꺼지는 게 죽이다. 죽은 끓인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쑨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둘 다 같이 쓰고는 있지만 정확한 표현은 ‘죽을 쑤다’가 맞다. 시험을 망쳤을 때 죽을 썼다고 하는 게 그런 표현이다.

음식은 보통 바로 먹는 게 좋다. 특히 라면이나 자장면처럼 면이 불어나는 건 더 그렇다. 죽도 뜨거울 때 바로 먹어야지 먹지 않고 오래 두면 물기기 마르고 막이 생겨 좋지 않다. 뜨거운 죽은 후후 불어가면서 힘들게 먹지만 식은 죽은 그냥 막 퍼먹는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들을 ‘식은 죽 먹기’라고 표현한다. 죽은 자극이 적고 목 넘김이 수월하다. 그래서 어떤 의사들은 죽의 경우는 음식을 씹어 삼키지 못하기 때문에 몸에 안 좋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죽은 몸에 흡수도 빠르고 소화도 잘 된다. 음식을 소화시키는 데 대사상의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위장 기능이 안 좋아졌을 때에도 좋고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요즘 다이어트 죽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는 분위기다. 죽 관련 브랜드도 엄청난 속도로 늘고 있다. 옛날 먹을 게 없어서 죽을 먹던 시절을 생각하면 죽을 대접하는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말 그대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일제 때에는 산미증식계획으로 인한 쌀 수탈로 양민들이 쌀밥 대신 주식으로 죽을 주로 먹었고 6.25 전쟁 때는 피난민들의 주식이 죽이었다. 죽의 종류를 보면 누룽지죽, 보리죽, 찹쌀죽, 전복죽, 밤죽, 호박죽, 땅콩죽, 소고기죽, 바지락죽, 팥죽, 굴죽, 잣죽, 닭죽, 계란죽, 낙지죽, 야채죽, 콩나물죽, 타락죽, 꿀꿀이죽 등이 있다. 심지어 일본인들은 이렇게 많은 종류의 죽이 있는 우리나라에 와서 원하는 죽을 먹으며 관광을 즐기기도 했다고 한다.

‘죽’의 아이템을 건강식으로 현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일은 그저 아파서 먹었던 죽 한 그릇, 쌀이 없어서 먹었던 죽 한 그릇으로부터 즐거움과 건강을 주는 또 한 영역의 식문화가 될 수 있다.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몸을 따뜻하게 데우는 죽 한 그릇도 그리운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