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부터 가솔린·디젤 차량을 판매할 수 없다.”

자동차 종주국인 독일에 전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슈피겔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독일 연방 상원은 2030년부터 배출가스를 내뿜지 않는 자동차만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결의안을 최근 채택했다.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법제화될 경우 2030년부터 독일에서는 전기차·수소차 등만 등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독일 연방상원은 유럽연합(EU) 전역에 걸쳐 배출가스 없는 차량 이동 강화를 위해 같은 조처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집행위원회에 전달했다.

독일은 카를 벤츠가 1885년 최초로 가솔린 엔진 자동차를 발명한 곳이다.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들의 고향이다.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의 신차 판매 시장(2015년 기준 약 345만대)이기도 하다.

전 세계인의 시선이 독일을 향하고 있는 이유다. 독일의 행보에 따라 글로벌 자동차 시장 생태 지도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 아직 연방정부의 결의안 내용이 공개된 수준에 불과하지만, 이와 관련해 크게 세 가지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시선 1. “실현 불가능한 억지다”

회의적인 의견이다.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사실상 실현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급격하게 산업 지도를 바꿀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 근간을 책임지고 있는 완성차 업체들이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연간 1000만대 가까운 차량을 생산하는 폭스바겐그룹을 비롯해 내연기관차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이 뿌리를 잃을 수도 있다.

‘속도’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상당하다. 2016년 현재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14년의 여유가 있다고 해도 아직 기술력과 상업성 등이 확실하지 않은 곳에 ‘올인’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 독일에서도 이 같은 문제로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비판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도 이 결의안에 대해 교통부 장관이 “말이 안된다”고 일침을 가하는 반면 환경부 장관은 “제동을 걸면 안된다”고 언급하는 등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독일의 경우 하원에 (상원에 비해) 입법권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번 결의에 법적 구속력이 전혀 없는데다 하원에는 의결 입법권 등의 권한이 없기 때문에 실제 ‘내연기관차 아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실제 상당수 주정부에서는 “어차피 실현 안 될 일을 언급해 혼란을 부추기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선 2. “한국 시장은?”

독일에서 해당 결의안이 채택될지 여부를 떠나 한국 자동차 산업의 유연성에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많다.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하고 있는 와중에 ‘우리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차원적으로 생각해도 독일이 전기차에 ‘올인’하게 될 경우 한국은 미래 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잃게 된다. 독일은 100년 넘는 역사를 바탕으로 자동차 산업을 주도해온 나라다. 후발주자인 한국은 상대적으로 기술력·인프라 등에 뒤쳐져있다.

2016년 현재 전기차 기술력은 BYD, 테슬라 등이 선도하고 있지만 독일 업체들의 저력도 만만치 않다. 폭스바겐그룹은 ‘디젤 게이트’ 이후 전기차 관련 로드맵을 세워둔 상태고 메르세데스-벤츠도 최근 서브 브랜드 ‘EQ'를 론칭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BMW도 주행 거리가 대폭 늘어난 i3 94ah를 선보였다.

세계 4대 모터쇼 중 하나인 ‘2016 파리모터쇼’를 봐도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대부분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차를 중심으로 콘셉트카 등을 선보이며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반면 현대차는 고성능 레이싱카, 해치백 신모델 등을 전면에 내세워 전통적인 자동차 업체의 이미지를 구현했다.

이런 상황에 독일이 전기차에 ‘올인’ 한다면 새롭게 열리는 미래 자동차 시장의 주도권을 또 다시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는 현대차가 친환경 브랜드 ‘아이오닉’을 론칭하고 내년께 1회 충전 주행거리가 300km를 넘는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지만,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독일에서 내연기관차를 판매할 수 없다면 해외 시장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이미 브렉시트로 인해 유럽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대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벌어지는 ‘내연기관차 아웃’ 논쟁에 한국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시장 혹은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 어느 정도 수준의 ‘결단’을 내릴 수 있는지 스스로 질문해볼 필요가 있겠다.

시선 3. 전기차, 유일한 대안인가?

독일 연방 상원의 결의안 내용의 핵심은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를 금지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전기차와 수소차가 꼽히고 있다. 하지만 기술력과 상용화 수준 등을 고려했을 때 내연기관차의 대안은 전기차라는 데 이견을 달기 힘든 상황이다.

상원 스스로 ‘미래 자동차 산업 = 전기차’라는 패러다임을 만든 셈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최근 파리협정에서 체결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매번 강화되는 온실가스 저감 정책에 발맞춰 나가기 위해 내연기관차 자체를 금지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당장 유럽은 2021년부터 온실가스 평균 배출량을 95g/km로 강화해 운영하게 된다. 현재 내연기관차 수준에서는 이를 맞추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전기차가 친환경차로서 얼마나 효율적인지 여부를 아직 입증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기차가 가스 배출량이 ‘제로’라는 점에만 집중해 큰 그림을 놓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기차의 연료인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온실 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전력 생산을 위해서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 원자력 등이 사용된다. 신재생에너지만으로 자국에서 사용되는 전기를 모두 감당할 수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 출처 = LIG투자증권

LIG투자증권 신재영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운행단계(TTW, Tank to Wheels)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량 뿐만 아니라, 자원에서 연료화하는 과정(WTT, Well To Tank)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발생량을 합산하는 WTW(Well To Wheels) 과정에 대한 통합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신 연구원은 또 WTW 관점에서 봤을 때 전기차보다 오히려 하이브리드차의 효율성이 더 높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이브리드차의 경우 가격이 내연기관차에 근접할 정도라 보급 확대에 큰 어려움이 없다는 장점도 있다. 대표적인 차량인 도요타 프리우스의 경우 2021년 유럽에서 적용되는 배출가스 규제를 이미 만족하고 있기도 하다.

독일 연방 상원이 제시한 ‘내연기관차 아웃’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게 되는 대목이다. 미래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을 무조건 전기차로 규정하는 시각에도 합리적인 의심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