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 신약 임상시험은 실패가 법칙이고 성공이 예외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약물이나 치료도 임상시험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데카메론>에까지 소개된 전통적 서양 의술인 사혈치료도 유효성 검증에서 실패했다.

필자의 경험을 보자. 독감으로 고열이 나는 3세 미만의 소아들 3~5%가량이 발작을 일으킨다. 미국의 한 소아과 교과서에서는 독감고열을 동반하는 발작의 경우 징후에 따라 2년 정도까지 페노바비탈(Phenobarbital)을 투여하라고 권장했다. 그러나 페노바비탈을 복용하는 성인에게서 부작용이 관찰되고, 동물시험에서 발달 장애 독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전성에 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1982년부터 1988년까지 독감고열로 발작을 일으킨 소아 215명을 페노바비탈군과 위약 대조군으로 나누어 안전성 유효성 임상시험을 시행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페노바비탈은 위약에 비해 발작 재발을 예방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지능발달 장애를 유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놀라운 결과였다. 교과서에까지 소개된 약물이 도움은커녕 오히려 해를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과학자가 동물실험을 비롯해 각종 실험을 거쳐 효능과 안전성을 확신하더라도 신약후보물질이 임상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할 확률은 10% 미만이다. 항암신약의 경우 5% 미만으로 떨어진다.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신약후보물질 임상시험은 10년 이상의 기간과 1조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에서 개발을 시도했던, 좋은 콜레스테롤은 높이고 나쁜 콜레스테롤은 낮추는 꿈의 신약 Torcetrapib은 20년에 걸쳐 2조원을 투자했지만 임상시험 마지막 단계에서 실패했다. 이렇듯 실패의 리스크 때문에 신약 개발은 사업적 결단이 따른다.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임상 개발 단계를 거쳐서 신약으로 승인되는 순간 대박이 기다린다. 길고 힘든 지난(至難)한 과정이기 때문에 도처에 유혹이 기다리고 있다. 임상시험 결과를 좋게 만들고 싶은 마음 때문에 데이터를 조작하거나 없는 환자를 만들어 내고 싶은 유혹도 있을 것이다. 또는 통계분석을 조작하고 싶은 유혹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임상시험 결과를 조작하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중국 대륙에서 발표된 신약 임상시험 결과의 80%가 조작되었다는 최신 언론보도도 있다. 미국에서도 1970~80년대에 임상시험 결과를 조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미국 FDA 직원들과 제약사 직원들이 처벌을 받았다. ‘대박’이라는 유혹 때문에 임상시험은 엄격한 규제 아래 진행된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선진국 위주의 ICH라는 임상시험 관련 국제기구가 창설되었으며 우리나라도 가입했다. 글로벌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경우 미국 일본 또는 유럽연합(EU)의 규제기관이 임상시험 데이터를 감사(監査)한다.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역시 신약 승인에 앞서 국내외 임상기관을 감사한다. 현재 1년 매출 5조를 초과하는 세계적인 항암제 세툭시맙 (Cetuximab)이 임상시험 단계에서 임상시험 계획서(Protocol)대로 시행하지 않은 것이 드러남에 따라 2001년 개발사인 임클론(ImClone)은 신약신청서를 FDA로부터 반려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책임자들이 내부자 정보 유출을 해서 유죄 판결을 받는 일도 있었다. 이와 같이 정부는 신약 임상시험을 엄격한 규제와 감시 감독 아래 두어 소비자들을 보호한다.

임상시험 결과가 좋았음에도 실제 환자에 투여되었을 때 좋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임상시험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을 개연성이 있다. 또는 승인된 신약이 효과는 좋지만 안전성의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약물은 승인이 취소되고 시장에서 퇴출된다. 식약처는 모든 신약에 대해 허가일로부터 6년간 3000명의 환자로부터 안전성 유효성 관찰연구를 하도록 법적으로 요구한다. 이런 법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허가가 취소될 수 있다. 식약처는 또 신약의 유효성 재평가 자료를 요구하고 필요한 경우 새로운 임상시험을 명령하기도 한다.

임상시험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적 실험이라는 인위성이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임상시험 참가자의 인권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엄격한 윤리 규정이 적용된다. 신약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 불특정 다수의 환자들에게 투여되기 때문에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과학적 검증이 보장되어야 하며, 과학적인 방법만이 객관성과 투명성을 보장한다. 임상시험은 두 가지 과학적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 뒤틀림(Bias) 현상을 최소화해야 하며, 즉 신약후보물질이 투여되는 환자군과 위약/대조의약품이 투여되는 환자군이 유사해야 하며, 둘째 규모와 설계가 적절해야 한다. 모두 통계학의 범주에 속한다. 통계학을 전공한 필자가 임상시험 전문가연(然)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