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발화 논란이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1일 판매재개에 돌입하며 나름의 반등을 시도했으나 신제품에도 발화 논란이 불거지며 결국 11일 판매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두고 말았다. 일각에서 발화의 원인이 배터리가 아닐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가운데, 갤럭시노트7은 단종됐다.

자연스럽게 삼성전자 위기론이 고개를 든다. 갤럭시노트7 발화 정국에서 기민한 상황대처능력을 보여줬지만 브랜드 가치가 크게 훼손되어 재도약의 묘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갤럭시노트7, 그리고 이에 따른 미래성장동력 약화적 측면에서 매우 비중있게 다뤄진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신화를 놓치며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전대미문의 위기론이라는 인당수에 몸을 던질까? 하지만 효녀 심청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다시 시작된다.

▲ 출처=삼성전자

인당수에 몸을 던지다
삼성그룹 전체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그리고 삼성전자에서 갤럭시 신화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존재감은 약간의 부침이 있었지만 여전히 강렬하다. 그런 이유로 갤럭시노트7 발화 논란은 곧 삼성그룹 전체의 위기론으로 번질 수 있다. 지배구조적 측면에서 봐도 삼성전자의 입지는 거대한 편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미래, 그리고 삼성전자가 반드시 걸어야 할 비전적 측면에서 큰 그림을 보면 갤럭시노트7 발화 논란은 일정정도 한계가 뚜렷하다. 무슨 뜻일까?

갤럭시노트7 발화 논란의 후폭풍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피해가 예상된다. 먼저 당장의 숫자다. 갤럭시노트7 생산 중단을 두고 이승우 IBK투자증권 연구원이 "삼성전자의 4분기 IM부문 실적은 7조8000억 원 수준이 예상된다"고 전망한 지점에 집중해보자. 대대적인 리콜 및 판매중단 조치에 따라 부품 계열사 및 관련 업종이 얼어붙으며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브랜드 가치 훼손이다. 갤럭시노트7 판매중단 조치가 몇 분기에 거쳐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그 이후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내년 상반기 프리미엄 라인업인 갤럭시S8 출시를 앞당기기 어려운 상태에서 과연 '소비자들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을 믿고 구매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무형의 파급력이지만 당장의 실적보다 더욱 매서운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일단 본질적인 대목에 집중하면, 결국 이러한 부정적 파급력은 온전히 삼성전자가 감당할 수 밖에 없다. 2조 원대의 손실을 감수하며 브랜드 가치 훼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삼성전자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앞으로의 후속대책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아울러 결함에 대한 명확한 원인 파악을 통해 철저한 재발방지약속을 다짐해야 한다.

▲ 출처=삼성전자

위기 후 기회가 온다
갤럭시노트7 논란은 유무형의 막심한 피해를 야기할 전망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앞으로의 대응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삼성전자는 이를 만회하고 수습할 충분한 역량이 있는 기업이다. 비록 상처입은 브랜드 가치 제고를 걱정해야 한다는 부담은 있지만 이 역시 삼성전자의 능력범주에 속해있다.

다음 수순은 무엇일까?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발화 논란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거치며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하드웨어 제조 회사라는 패러다임을 벗어나 스스로를 더 넓은 세상에 던질 수 있는 과감함을 보여야 한다.

다행히 전조가 보여 눈길을 끈다. 먼저 조직적 측면에서의 변화는 스타트업 삼성이다. 일각에서는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만 스타트업 삼성의 천명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변화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스타트업(Start Up) 삼성 컬처혁신을 천명했다. 글로벌 기업에 걸맞는 의식과 더불어 일하는 문화를 혁신하는 대변신에 나섰다. 24일 오후 수원 디지털시티에 있는 디지털연구소(R4)에서 CE부문 윤부근 대표, IM부문 신종균 대표, 경영지원실 이상훈 사장을 비롯해 주요 사업부장, 임직원 등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 선포식을 열었으며 이 과정을 사내방송으로 실시간 중계했다. 핵심은 조직문화의 변화다. 이를 바탕으로 의미있는 인사이트를 끌어낸다는 것이 삼성전자의 최종 목표다.

▲ 스타트업 삼성 선포식. 출처=삼성전자

업계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관리의 삼성'을 벗어나 유연하고 빠른 움직임을 중심에 두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글로벌 기업이 스타트업 방법론을 천명한 지점도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스스로 몸을 낮춰 자신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인정하고, 또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뜻이다.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은 그 자체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과 이재용 부회장의 스타트업 삼성은 닮았으면서도 분명 다르다. 먼저 선포식 현장에 이재용 부회장이 보이지 않았다는 대목이 흥미를 끈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주요 임직원들을 프랑크푸르트로 불러 이 회장 중심의 회의를 주재하는 방식으로 시작됐다면, 이재용 부회장의 스타트업 삼성은 철저하게 임직원 중심이다. 조직의 소통과 자율성을 인정하고 이를 장려하는 이재용 부회장 특유의 조직관리 방법론이 그 배경으로 꼽힌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내적 변화가, 아직 갈 길은 멀더라도 분명 도움이 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사업적 측면은 어떨까. 선택과 집중을 통해 소모적인 외연 확장을 경계하는 대신 내실을 키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먼저 소모적 외연 확장을 지양하는 장면. 방산 및 화학 계열사를 매각한데 이어 최근 프린팅 사업부 분할 매각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11월 1일자로 삼성전자 프린팅 사업부를 분할하고 자회사를 신설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후 1년 내 회사 지분 100%와 관련 해외자산을 HPI에 매각할 예정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프린팅 사업을 HPI에 매각한 후에도 국내에서 당사 브랜드로 프린터 판매를 대행하기로 합의했다는 후문이다. 더불어 삼성전자는 샤프를 비롯한 ASML·시게이트 등 해외 투자자산도 매각하고 있다. 사업 환경의 변화에 맞춰 과거에 투자한 자산을 효율화해 핵심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집중은 무엇일까. 경영적 측면에서는 글로벌 경영이 눈길을 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달 추석연휴 인도를 방문,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만났다. 이 부회장은 모디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삼성은 인도의 'Make in India', 'Digital India' 정책에 적극 부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인도정부와의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인도를 전략거점으로 성장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상하는 인도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적 포석임과 동시에 글로벌 경영을 통해 건재함을 알리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이 전면으로 나서며 삼성전자가 광폭 인수합병에 나서는 지점도 의미심장하다. 소프트웨어 및 가상현실, 인공지능 등 미래성장동력을 빠르게 체화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전면에 나선 후 무려 10건의 인수합병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자. 2014년 8월 인수한 스마트싱스는 사물인터넷 플랫폼 개발적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삼성전자는 이를 바탕으로 가전 경쟁력에 초연결의 가치를 심어줄 수 있는 결정적인 무기를 손에 넣었다는 평가다.

▲ 출처=삼성전자

2014년 8월 미국의 공조회사 콰이어드사이드 인수는 스마트싱스 인수 4일만에 단행된 파격행보의 단면이다. 시스템에어컨 인프라를 확보하는 한편 B2B적 관점에서 삼성전자가 경쟁력을 펼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는 해석이 나온 바 있다. 나아가 스마트홈 구축에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다. 2014년 11월에는 서버용 SSD 소프트업체인 프록시멀데이터를 인수했으며 2015년 11월에는 브라질 문서 출력관리 기업인 심프레스를 품에 안기도 했다.

2015년 2월 인수한 루프페이는 삼성페이의 핵심이 되어 주었다. 삼성전자가 최근 인수합병에 나선 기업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디바이스를 보유한 삼성전자 입장에서 루프페이의 기술력은 범용적 간편결제 시장을 열어준 결정적 배경이었으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으로 특히 관심을 모았다.

▲ 출처=삼성전자

2015년 3월 인수한 예스코일렉트로닉스도 눈길을 끈다. 상업용 디스플레이 경쟁력을 확보해 초연결의 시대에도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기관 IHS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는 글로벌 사이니지 시장에서 수량기준 28.1%의 점유율을 기록해 2009년부터 7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지난해 4분기 무려 28.8%의 점유율을 기록해 2위와의 격차를 2배 이상 벌린 지점이 눈에 들어온다. 사이니지 시장의 '넘사벽'이다. 그 중심에 예스코의 경쟁력도 한몫하고 있다.

2016년 6월 조이언트 인수는 클라우드적 측면에서 적절했다는 평가다. 스토리지 및 서버 등 인프라 운영과 최적화 기술에 강점을 가진 조이언트 인수를 통해 스마트 기기 운용에 있어 클라우드 인프라 저변을 넓히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스토리지 및 서버 등 인프라 운영과 최적화 기술에 강점을 가진 조이언트 인수를 통해 스마트 기기 운용에 있어 클라우드 인프라 저변을 넓히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2016년 6월 애드기어 인수도 의미가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애드기어를 스마트TV의 맞춤형 광고에 활용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데이터 확보 및 전송, 나아가 맞춤형 광고 솔루션을 삼성전자의 스마트TV UI에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스마트TV에서 애드기어를 활용한 다양한 솔루션이 안정궤도에 오르면 추후 스마트폰을 포함한 다양한 기기에서 비슷한 서비스를 런칭할 개연성도 충분하다.

여담이지만 이번 애드기어 인수에는 삼성 글로벌 이노베이션 센터(GIC/Global Innovation Center)가 개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이언트 등 북미 스타트업 인수의 선봉에 GIC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2016년 8월에는 데이코를 인수했다. 데이코는 1965년에 설립된 기업이며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 주택 및 부동산 관련 시장에서 럭셔리 가전 브랜드의 존재감을 자랑하는 곳이다. 현재 미국 생활가전 시장은 연 평균 4% 성장을 해 2020년까지 약 300억 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패키지 판매 가격이 2만 달러 이상인 럭셔리 가전은 주택가치까지 올리는 강점이 있다.

그런 이유로 삼성전자는 데이코 인수를 통해 2만 달러 이상의 럭셔리 패키지 라인업을 확대하는 한편 전문 유통망을 확보하는데 박차를 가한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막강한 전자기술력을 바탕으로 스마트홈의 미래를 그리는 삼성전자의 행보에 더 집중해야 한다. 초연결을 위한 모든 플랫폼을 정교하게 완성하는 삼성전자의 선명한 의도를 봐야 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개발 기업인 비브랩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인공지능 전문가인 다그 키틀로스, 아담 체이어, 크리스 브링험에 의해 2012년에 설립된 비브랩스는 외부 서비스 제공자, 즉 서든파티가 자유롭게 플랫폼에 참여해 각자의 서비스를 자연어 기반의 인공지능 인터페이스에 연결하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향후 인텔리전스 서비스를 구축할 핵심 역량을 내부 자원으로 확보하는 한편 모든 기기와 서비스가 하나로 연결되는 인공지능 기반의 개방형 생태계(Open Ecosystem) 조성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 스마트폰을 노리는 삼성전자의 인공지능 시장 개척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최근 구글과 애플, 아마존 등이 주도하는 새로운 인공지능 시대에 진출하는 것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지난해 6월 삼성벤처투자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미국 스마트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소프트웨어 업체 빈리(Vinli)에 투자하기도 했으며 퀀텀닷 기술을 보유한 미국 나노시스(Nanosys)에도 두 번째 투자를 단행했다. 미국의 헬스케어 업체 웰독(Welldoc)에 투자한 지점도 눈길이 간다. 웨어러블 헬스적 측면에서 양사의 협력이 빠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권오현 부회장은 지난 6월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 본사에서 열린 IoT 정책 포럼(Internet of Things Policy Dialogue)을 통해 “향후 4년간 미국에 약 12억달러를 투자할 방침"이라며 "실리콘밸리에 위치한SSIC(Samsung Strategy & Innovation Center), GIC, SRA(Samsung Research America)가 중심이 되어 기술연구와 스타트업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삼성전자의 미래를 찾는 일종의 '험난한 여정'을 선포한 셈이다.

삼성전자가 가야할 길, 보였다
올해 초 삼성전자 스마트싱스 영국법인이 발표한 '스마트싱스 퓨처 리빙 리포트'는 100년 후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아내어 눈길을 끌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래는 사용자 경험을 바탕으로 초연결의 사물인터넷 시대가 현실이 되며 자동화와 실시간 피드백이 공기처럼 녹아들어간다. 수중도시와 우주도시가 건설되며 인간은 일과 사생활이 무너지는 기술의 극의를 경험한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미래 소통의 플랫폼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삼성전자가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신하는 GE의 길을 걸어야 하는 당위성이 생긴다. 물론 갤럭시노트7 발화 논란은 분명 심각한 일이며 향후 브랜드 가치적 측면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중저가 라인업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는 선에서 스마트 디바이스 확장적 측면의 대단위 플랫폼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 구글은 메이드 바이 구글을 통해 하드웨어 수직계열화를 추진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파편화를 경험한 구글 입장에서 스마트폰 이후의 미래를 그리기 위함이다. 하이엔드 단말에 머물러있는 자사의 운영체제 능력을 모든 생태계로 확장하려는 취지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삼성전자는 어떻게 가야 할까. 사물인터넷 정국에서 운영체제를 발전시키며 이미 존재하는 하드웨어 인프라를 빠르게 연결, 이를 4차 산업혁명의 미래로 끌어내야 한다.

다행히 삼성전자는 길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영역으로 전개되는 인수합병의 단면만 봐도 쉽게 확인이 된다. 이제, 실제적 미래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