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 6시! 6시 질럿 공격이요! 포토캐논 조심해요!”

“팀장님! 히드라 3시 이동이요! 탱크로 입구 막고 시간을 끌어요! 바로 캐리어 갑니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소위 김영란 법이 시작되며 기자들에게도 큰 변화가 생겼다. 의례적으로 저녁에 만나 술을 먹는 시간이 줄어들고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분위기다. 어차피 금액 가이드라인도 있으니 서로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취재원들과 맥주 한 잔 마시며 더치페이하고 자연스럽게 PC방에도 간다. 폭탄주를 돌리며 거나하게 취했던 우리가, 이제는 PC방에 온다.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마우스를 잡고 신나게 놀다 보니 취재원들이 마치 대학교 시절 같이 놀았던 동아리 형 같다.

 

김영란 법이 화제다. 그리고 이견의 여지가 있으나 긍정적인 효과가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사정이지만 어마어마한 접대를 받아본 적은 당연히 없기 때문에 김영란 법을 크게 신경 쓸 상황도 아니고, 오히려 이를 핑계로 소모적인 술자리도 줄이고 서로 마음 편하게 더치페이 하는 분위기가 좋다. 필요한 법이다. 아니, 필요했던 법이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씁쓸한 감정도 치민다. 김영란 법의 취지에는 당연히 공감하고 내심 속으로는 바래왔던 법이지만 정부라는 절대권력의 가이드라인이 마치 지침처럼 내려와 변화무쌍한 상황을 규정하는 지점은, 뭔가 알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무슨 뜻일까. 김영란 법의 등장으로 오래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악습들을 걷어내는 점은 고무적이나 이것을 가이드라인으로 마련해 명문화하는 순간 상황이 묘해진다는 뜻이다.

국민을 공분에 떨게 만들었던 한 교육부 고위 공무원의 ‘개, 돼지’ 발언을 기억하는가. 만약 김영란 법이 있었다면 사석에서 나왔던 교육부 고위 공무원의 발언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우리는 김영란 법의 등장으로 인해 더욱 건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게 되었지만,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직면하게 된다. 자신의 지갑을 털어 민원인을 만나는 공무원과, 취재원을 쫓아다닐 수 있는 기자들이 몇이나 될까. “그게 너희들의 일이잖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현실을 말하자는 것이다.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무엇이 이득인가만 생각하자. 김영란 법 같은 것 없어도 마음껏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거물들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김영란 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법의 취지를 살리면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경계하는 북한식 시스템을 걷어낼 수 있는 디테일한 방법론이 필요하다. 김영란 법의 순기능인 부정부패 일소 기능은 증폭시키고 ‘손발을 묶어두는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약간 다른 말이지만 포털의 뉴스제휴평가 이야기를 하겠다. 어뷰징과 질 낮은 기사를 잡아내겠다는 뉴스제휴평가위원회의 발상은 매우 훌륭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평가위는 밀실평가 및 ‘내 마음대로 심사’를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심지어 저널리즘의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정성평가가 60%에 달한다. 포털 뉴스를 깨끗하게 만들겠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무형의 저널리즘 가치에 무게를 두고 언론사를 줄 세우는 것은 오히려 언로의 탄압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물론 ‘언론은 다 쓰레기’라고 말한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단언하건데, 언론은 더럽고 냄새나는 판이지만 그 안에는 지금도 사람들을 위해, 보통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필사적으로 뛰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모두 부정할 셈인가. 당신에게는 무소불위 최고 기득권 세력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이 역시 순기능 증폭, 부작용 개선의 방식이 필요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부정부패 해소! 정의의 구현!”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자성의 행보가 이어지는 것도 좋지만, 그 자성의 행보가 국민을 위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일까. 우리는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