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초대형 증권사 육성 방안이 사업 구조의 리스크를 높여 증권사의 신용평가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몇 년간 정부의 유도 정책으로 증권사 대형화 추세가 이어져 왔고 지난 8월 금융당국은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방안'을 추가로 발표했다. 자기자본을 확대하는 대형화는 재무위험을 완화시켜주기 때문에 신용 등급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용평가 관점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특히 최근 정부가 유도하는 정책은 수수료 중심의 증권사 수익구조를 대출 중심의 구조로 이동하도록 유도하는 것들이 많은데 이는 리스크 부담도 늘어난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신용평가는 증권사의 신인도 등급을 나타내는데 신인도는 사업 확장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향후 초대형 IB 육성방안에 따른 증권사의 신용등급 평가 변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증권사 평균 자기자본 규모 약 6년간 48.2% 증가

증권사의 평균 자기자본 규모는 2016년 3월말 기준으로 2009년 대비 48.2%가 증가했다. 연평균 6.8% 수준이다. 증권사 합산 자기자본 규모로는 같은 기간 31.7% 증가세를 보였다. 반면 국내 총 증권사 수는 같은 기간 6개가 줄어들었다. 최근 신한금융투자와 한화투자증권이 각각 5000억원,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 중이고 미래에셋대우와 미래에셋증권,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 간 합병도 진행 중이어서 증권업 대형화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증권사들은 평균 자기자본 확대를 위해 유상증자, 인수합병(M&A) 등의 외부자본 확충을 주로 했다. 최근에는 증권사간 M&A를 통한 자기자본확충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2014년 우리투자증권과 NH농협증권이 합병했고 2015년에는 메리츠종금증권과 아이엠투자증권이 합병을 진행했다. 2016년에는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두 건의 M&A가 진행 중이다.

또 하이투자증권의 매각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 외에 M&A 가능성이 있는 회사로는 이베스트투자증권, 골든브릿지증권, SK증권 등이 꼽힌다. 증권 산업이 전반적으로 대형사 중심으로 산업 구조 개편이 이뤄지고 있어서 중소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M&A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 출처=나이스신용평가

증권사 대형화 추세가 이어진 것은 금융 당국의 대형화 유도정책의 영향이 컸다. 최근 수년간 정부는 증권사가 기업금융기능과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도록 하기 위해 자본확충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관련 정책으로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 도입, NCR 개편, 초대형증권사 육성 방안 등을 내놨다.

2017년에 시행 예정인 초대형 증권사 육성 방안은 ▲발행어음 제도 허용(자기자본 4조원 이상) ▲종합투자계좌 허용(자기자본 8조원 이상) ▲기업금융 업무에 대한 건전성(NCR) 규제 완화 ▲정부 금융기관 등과의 협력을 통한 해외 진출 확대 등의 내용을 포함한다. 이 중에서도 발행어음 허용제도와 NCR 규제 완화 정책이 증권사들에 주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증권사 대비 여전히 낮은 자기자본 규모

대형화 추세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글로벌 증권사에 비하면 국내 증권사 자기자본규모는 낮은 편이다. 미래에셋대우와 미래에셋증권이 합병하면 자기자본 규모는 약 6조 7000억원 수준일 것으로 추정되며 나머지 대형증권사는 3~4조원 수준이다.

일본 노무라 증권이 28조원, 중국 중신증권이 25조 6000억원, 말레이시아 CIMB가 11조 7000억원, 미국 골드만삭스가 98조원 수준인 것에 비하면 국내 증권사 자기자본 규모는 현저히 낮은 편이다. 국내 증권사 전체 자기자본 규모만 하더라도 45조원 수준으로 글로벌 1위 기업인 골드만삭스보다도 낮다.

▲ 출처=나이스신용평가

물론 해외 증권사와 국내 증권사 규모를 비교하기에는 경제 규모나 자본시장의 역사에 차이가 있겠지만 그런 부분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자본 규모 차이는 큰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에서는 자본력 차이가 국내 증권사 경쟁력을 제한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홍준표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국내 증권 산업의 경우 단순 중개업 위주의 사업이 많기 때문에 주식 시장 시황에 따라 수익성이 크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해외 증권사와 비교했을 때 종합적으로 기업 금융 서비스 제공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 된다"고 설명했다.

국내 증권 산업의 경우 위탁매매(38.9%)와 자기매매(30.5%)가 주 수익원인데 반해 골드만삭스의 경우 위탁매매가 31%로 가장 높은 수익원이긴 하지만 그 외에도 자산관리(9%), IB(9%), 자기매매(15%) 기업금융(15%), 투자 및 대출(16%) 등 다양한 사업구조가 있다.

글로벌 증권사와 비교했을 때 국내 증권사 자기자본 규모가 여전히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향후 증권사 대형화는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증권업 경쟁이 심화되면서 대형화가 하나의 주요한 전략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증권 산업의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위탁수수료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다. 위탁매매 사업이 주 수익원이지만 국내 주식시장은 장기간 박스권에 갇혀 있는데다 업체 간 경쟁 심화로 수수료가 지속 하락하는 추세여서 증권사들도 신규 사업을 추진하고 경쟁력 유지를 위한 자본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다.

증권사 대형화, 리스크도 수반한다

일반적으로 자기자본이 늘어난다는 점은 신용 등급에 있어서 긍정적인 요소로 평가된다. 특히 유상증자보다는 M&A를 통한 자본 확대가 합병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는 신용 등급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신용 등급을 평가할 때 늘어난 자본이 어디에 투입되는지가 함께 고려된다. 기존 사업 대비 리스크가 높은 곳, 경험이 많지 않은 신규 사업 분야 등에 자본 투입이 증가할 경우에는 리스크 관리, 총자산순이익률(ROA) 등의 재평가가 이뤄지는데 이는 최종 신용등급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홍준표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최근 일부 증권사가 ELS, 우발 채무 등 전통적 증권 사업영역보다 리스크가 높은 사업에 투자를 확대했다"며 "이는 일시적인 수익성 개선을 보였지만 리스크 부담이 증가한데다 일부는 리스크 관리에 문제가 발생해 대규모 영업 손실로 이어지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이스신용평가의 경우 사업 위험 평가가 재무위험 평가보다 최종등급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같은 사례는 오히려 최종신용등급 결정에 부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발표된 정부의 초대형 증권사 육성 방안의 경우 리스크를 확대시킬 수 있는 요인들이 있어 신용 등급 평가에는 다소 부정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발행어음 제도의 경우 증권사 입장에서는 매우 매력적인 제도다.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 한 신규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자금 조달도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수수료 중심의 사업구조를 대출(loan)위주의 사업구조로 변화시키는 것이기에 과거 대비 리스크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대출 업무에 주력하고 있는 은행들과도 경쟁을 해야하는 부분이기에 증권사들이 과연 기업 금융 분야에서 은행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 출처=나이스신용평가

홍 수석 연구원은 "발행어음제도가 종금형CMA와 유사하기 때문에 향후 대형 증권사들이 현재 종금형CMA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메리츠종금증권 사업 구조를 따라갈 가능성이 있다"면서 "메리츠종금증권은 지난해 국내 증권사 중에서는 최고 수준의 당기순이익을 실현하는 등 우수한 영업 수익성을 내는 동시에 올해 3월 기준으로 부동산PF 등 우발채무가 5조 1000억원 규모로 자기자본 대비 296%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이는 국내 증권업 평균인 156.3% 대비 높은 수준이다. 또 기업 여신 규모 역시 자기자본의 134%로 국내 평균 16.9% 대비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과거 종금형CMA를 운영했던 유안타증권와 NH투자증권은 종금계정에서 실행된 원화기업대출 등에서 손실이 발생해 자산건전성 지표가 낮아진 사례를 보인 바 있다. 유안타증권의 경우는 아직도 과거 부실자산에 대한 정리가 진행 중이다. 홍 수석연구원은 "이처럼 고수익의 이면에는 리스크 부담 확대가 뒤 따른다"며 "적절한 리스크 관리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발행어음제도로 기업 여신 확대를 도모한다면 자산건전성 및 자본적정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전성 규제 완화의 경우는 마찬가지로 발행어음처럼 기업 금융 사업을 확대할 기회를 주지만 발행어음보다도 상대적으로 큰 리스크 확대가 수반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2년에도 금융당국이 NCR 계산 시 증권사 채무보증 금액을 거래상대방별 위험값을 고려해 신용위험액으로 포함하도록 제도를 변경한 바 있는데 당시 증권사 우발채무는 급격히 늘어났다. 다만 이번 건전성 규제 완화 정책은 자기자본 3조원 이상 대형사에 한정되기에 전체 증권사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나 증권업 전반적으로 위험 부담액이 늘어날 것은 분명해 보인다.

▲ 출처=나이스신용평가

결국 정부의 증권사 대형화 유도 정책이 증권업계에 새로운 수익 사업 기회를 제공하고 자금 조달도 용이하도록 한다는 장점도 있으면서 동시에 리스크가 낮았던 수수료 위주 사업 구조에서 리스크가 높은 대출 위주 사업 구조로의 전환을 가속화 한다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홍 수석연구원은 "이런 사업 구조 변화가 증권사 위험부담액 확대 추세 심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은행 대비 경쟁 우위 확보 여부, 적절한 리스크 관리 시스템 구축 여부 등의 불확실성도 존재하기 때문에 신용평가 측면에서 초대형 IB 육성 정책은 다소 부정적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