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발화 논란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두고 사태수습에 전사적으로 나서는 한편, 소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업적 가치를 제고하려는 행보까지 보여주고 있다. 경영과 운영의 측면에서 위기와 기회의 극단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분위기다.

엘리엇의 제안, 위기와 기회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정국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준 엘리엇이 다시 움직였다.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자회사인 블레이크 캐피털(Blake Capital)과 포터 캐피털(Potter Capital)은 5일 삼성전자 이사회에 보낸 서신을 통해 삼성전자의 분할과 주주에 대한 특별배당을 요구해 눈길을 끌었다.

10페이지 분량의 제안서에는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누고 지주회사와 삼성물산의 합병을 검토하고 지주사를 나스닥에 상장하는 한편 30조 원의 특별배당을 요구했다. 더불어 독립적 이사회를 구성할 것도 요구했다.

최근까지 이어진 삼성전자의 주주친화 정책의 ‘결정적 배경’이기도 했던 엘리엇이 5일 서신을 통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주주가치 제고다. 현재 엘리엇은 삼성전자 지분 0.62%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엘리엇은 삼성을 둘러싼 지배구조 이슈로 인해 삼성전자의 주식이 무려 48%나 저평가되고 있다는 논리를 폈다. 스마트폰 시장과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지만 “주주의 이익은 적고 회사 관리는 수준 이하”라는 혹평을 남기기도 했다.

1977년 설립되어 현재 약 29조 원의 자금을 굴리고 있는 엘리엇은 주로 회사의 의결권을 확보해 자산의 매각 및 구조조정,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수익을 창출하거나 부도위기의 불량채무를 저렴하게 매입해 높은 가격에 팔아버리는 전략을 구사한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한 것도 큰 틀에서 보면 이러한 전략의 완성을 추구했기 때문으로 이해해야 한다.

삼성전자의 주식 저평가를 이유로 삼성전자를 분할해 지주회사를 꾸리고, 이를 현재 실질적인 삼성의 지주사로 여겨지는 삼성물산과의 합병을 요구하는 대목도 결국 지배구조 개선에 따른 단기간 수익 창출이라는 엘리엇의 전매특허 중 하나다. 그런 이유로 나스닥 상장과 30조 원의 특별 배당금 요구라는 키워드로 해석하면, 단순하게 생각해 엘리엇은 기업을 공격해 배당을 챙기고 떠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에 따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의 지배구조 개편 혼란기를 노리는 나름의 시간차 공격이다. 삼성의 지배구조가 복잡하며 약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있는 행동주의 투자자의 단면이다.

하지만 엘리엇의 이러한 행보가 결론적으로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에, 정확하게 말하면 삼성이 원하는 지배구조 개편에 제격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라는 전제를 두고 삼성전자 분할과 관련된 다양한 시나리오가 이미 등장한 상태에서 엘리엇의 제안은 지금의 삼성 입장에서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엘리엇이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삼성전자 분할에 일종의 명분이 됐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회사가 분할할 경우 분할하는 회사가 보유하는 자사주에 대해 분할된 신설회사의 신주배정을 금지하는 소위 김종인식 상법개정안이 계류되어 있다. 소액주주의 권한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지만 대주주의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는 점에서 삼성은 해당 상법개정안이 통과되기 전 인적분할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야 한다. 이 타이밍에 엘리엇의 서한은 일종의 ‘추진’을 위한 명분이 되어줄 수 있다.

하지만 상법개정안 문제를 차치한다고 해도 삼성이 엘리엇의 의도치 않은 도움을 받아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는 것은 그 자체로 리스크가 높다는 주장이다.

일단 삼성전자를 분할하고 지주회사와 사업회사의 주식을 스와프하는 과정에서 관계사 지분을 확보, 의결권을 부활시키면 일차적 단계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단계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삼성전자 주가는 5일 최고가를 찍으면 170만원에 달하는 반면 삼성물산은 급등했다고 하나 17만 원 수준이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사례처럼 의도적으로 주가를 조절하는 방식은 사실상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분할을 통해 탄생한 삼성전자 지주사와 현재의 지주사격인 삼성물산이 합병하면 산술적으로 이재용 부회장 측은 지분을 20% 안팎으로 끌어올릴 수 있으나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주가의 차이로 인해 합병 후 지배력은 크게 낮아질 전망이다. 이재용 부회장 일가는 삼성물산 지분을 30% 가지고 있으나 삼성전자 지분은 5%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엘리엇은 공격을 했으나 삼성 입장에서는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을 제안받은 셈이다. 하지만 엘리엇의 제안도 삼성 입장에서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의 주가 차이와 삼성전자 분할 후 만들어지는 삼성전자 지주사와 삼성물산의 합병은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일각에서는 엘리엇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 이재용 부회장이 낮은 지분율로 새로운 삼성전자를 장악할 수 있는 경영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의 방식, 주목

결국은 경영능력의 입증이다. 이 지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시장과 업계에 증명해야할 다양한 키포인트가 앞으로의 행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발화 논란으로 벼랑끝에서 회생하고 있지만, 최근 더버지에서 보도한 것처럼 미국에서 새로운 갤럭시노트7이 폭발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등 아직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이러한 악재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엇의 지배구조 개편 서신에 따른 삼성전자, 그 이상의 그룹 전반을 떠받힌 주가 상승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악재를 덮을 호재에 집중하는 시장의 선택이 여전히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재용 부회장은 책임경영을 표명하고 나섰다. 지난달 12일 삼성전자 이사회는 임시 이사회를 열어 이재용 부회장을 등기이사로 선임했으며, 이재용 부회장이 이를 승낙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지난해 12월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인천송도경제자유구역에 위치한 본사에서 글로벌 1위 바이오 의약품 생산기업(CMO)을 노리는 제3공장 건설에 나서고 지난 3월 발표된 스타트업 삼성으로 대표되는 수평적 조직 문화 구축도 모두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전면화와 연결되어 있다. 물론 경기도 평택에 15조6000억원을 들여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에 착수한 것도 비슷한 연장선상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달 15일(현지시각) 인도를 방문,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만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모디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삼성은 인도의 'Make in India', 'Digital India' 정책에 적극 부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인도정부와의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인도를 전략거점으로 성장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갤럭시노트7으로 실추된 브랜드 가치를 살리고 아직 건재함을 알리는 ‘천명’으로 해석된다.

▲ 출처=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반도체 경쟁력도 살아나고 있다. 지난달 27일 키움증권은 기업분석을 통해 D램 사업이 2018년까지 장기 호황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박유악 애널리스트는 PC D램의 공급감소가 불가피하지만 이 역시 수급 개선의 차원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오히려 가격이 상승해 전반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봤다. D램의 패자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고무적이다.

D램과 함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주축을 점하고 있는 낸드플래시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전자상거래사이트 D램익스체인지는 5일 낸드플래시의 eMCP(임베디드 멀티칩 패키지)와 eMMC(임베디드 멀티미디어카드)의 평균판매가격(ASP)이 4분기에 이르러 전 분기 대비 최대 15%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앵드플래시 시장을 장악한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호재다.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이 세계를 호령한다.

HPE에 프린팅 사업을 매각하고 샤프를 비롯한 ASML·시게이트 등 해외 투자자산도 매각하고 있다. 사업 환경의 변화에 맞춰 과거에 투자한 자산을 효율화해 핵심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종합하자면 현재의 삼성전자는 비록 위기가 있었지만,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서 나름의 반등을 시작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최근 경영적 후각이 예민해지고 있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6일 미국 실리콘밸리에 소재한 인공지능 플랫폼 기업인 비브 랩스를 인수한 지점이 흥미롭다. 비브는 외부 서비스 제공자, 즉 서든파티가 자유롭게 플랫폼에 참여해 각자의 서비스를 자연어 기반의 인공지능 인터페이스에 연결하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하나의 화두가 아닌, 이를 개방형 생태계로 이해해 총체적 프레임을 짠다는 뜻이다.

비브의 인수는 인공지능이라는 화두를 넘어 스타트업 인수합병에 나서는 삼성전자의 미래를 보여주는 개념도 담겨있다. 2014년 8월 스마트싱스를 시작으로 프린터온, 루프페이, 조이언트, 심지어 북미 프리미엄 가전업체 데이코까지 인수한 삼성전자는 주력은 내적 경쟁력으로 키우고, 부족한 대목은 외부의 수혈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본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최근에는 삼성SDS와 멀어지며 세일즈포스(salesforce)와 클라우드 기반 영업관리지원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소식이 업계에 알려지기도 했는데, 이도 외부의 수혈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본능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크게 보면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개편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결국 엘리엇의 서한으로 촉발된 삼성전자 지배구조 개편은 새로운 시나리오가 아니며, 삼성 입장에서는 일종의 호재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가 가져올 파급력은 다채로울 전망이다. 다양한 시도가 있겠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능력이 최악의 경우 낮은 지분을 확보한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펼쳐질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고 해도 지금까지 이재용 부회장이 보여준 ‘삼성 플랜’의 지속성에도 의미있는 변곡점이 되어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