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석유수출국기구(OPEC)을 비롯한 산유국들이 8년 만에 감산에 합의한 후 국제유가는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물론 미국의 원유재고가 5주 연속 감소한 영향도 있다.

다만 시장은 이러한 상승세가 일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이라크 등 이해가 엇갈리는 회원국들이 감산 합의를 실행에 옮기는 것도 쉽지 않으며 ▲비(非)OPEC 최대 산유국인 러시아도 비협조 의사를 밝혔고 ▲미국에서도 셰일오일 의 생산회복과 함께 대기 물량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9월말 산유국 회담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WTI. 출처=네이버

감산합의보다 ‘스윙 공급자’셰일업체가 유가 결정할 것

감산 합의소식이 전해진 후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비앤피 파리바(BNP Paribas)는 성명을 통해 “이번 감산합의 소식은 원유시장 펀더멘털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라며 시장은 2017년 하반기에야 균형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이미 세계적으로 원유수요 전망치가 낮아지고 있으며 ▲이번합의로 원유가격이 장기적인 상승흐름에 진입한다면, 2년 넘게 저유가로 고전한 셰일업체들이 생산량 증가를 노릴 것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주춤한 원유소비 증가율. 출처=한국투자증권

무엇보다 유가의 하한과 상한선은 유가에 따라 생산량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능력이 있는 ‘스윙 공급자(swing supplier)’인 미국셰일업체들의 생산재개 여부에 달려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미국 셰일업체들의 상황은 호전되고 있다. 유가 급락으로 2014년 10월 이후 꾸준히 감소세를 보이던 미국 원유 시추장비(Rig)수는 유가가 상승세를 보이며 지난 5월 13일부터 반등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증가는 미국 산유량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유가와 미국 원유 생산의 관계. 출처=한국투자증권

텍사스 지역에서 두 번째로 큰 셰일오일 생산업체인 데본에너지(Devon Energy)는 올 초에 비해 부채비율이 45%감소한 반면 생산은 45%증가했다. 저유가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성과를 낸 배경은 생산비용의 감소다. 저유가 기간 동안 수많은 셰일업체들이 파산한 것은 생산단가가 높았기 때문이다.

셰일업체, 눈에 띄는 부채감소와 생산 증가. 출처=Devon energy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우드 맥킨지(Wood Mackenzie)의 사이먼 플라워(Simon Flowers)는 “앞으로 미국 셰일 오일이 가장 저렴한 원유 생산비용을 실현할 것”이라며 “기존의 수압 파쇄법 외에 심층지역 개발 등에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셰일 오일의 배럴당 평균 생산 비용은 작년 2분기 이후부터 30~40% 가까이 감소한 반면 다른 원유 생산 비용은 10%가량 하락했다.

생산비용 감소로 지속적인 생산량 증가가 예상된다. 출처=Devon energy

제프 커리 골드만삭스 상품 조사(commodity research) 부문 대표도 5일(현지시간) 블룸버그(Bloomberg)와의 인터뷰에서 “셰일 오일 시추업자들이 시장에 돌아오고 있으며, 고유가 때 투자한 시추 시설 물량들도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많은 물량이 시장에 새로 풀려 공급과잉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OPEC의 패턴, 2개월 감산 후 6개월 증산

커리 대표는 이러한 공급 과잉 상황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셰일 외에도 나이지리아, 리비아 등도 원유 생산 물량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실제 1990년 이후 OPEC 감산 발표 시 2개월 가량은 감산을 함. 그러나 직후 6개월은 연속적으로 감산 폭 이상의 증산을 단행했다.

과거 감산 합의 후 2개월 감산 후 6개월 증산한 OPEC의 패턴. 출처=SK증권

SK증권 손지우 연구원은 “게임이론에 근거해 보더라도, 이란이 지속 증산을 예고한 상황에서 사우디 등이 감산해준다면 ‘남 좋은 일 해주는’것”이라며 “이란은 시장점유율과 가격 상승을 모두 향유하는 반면 사우디는 산유량의 하락으로 가격 상승 수혜를 입을 수 없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즉 “여러 정황을 동시에 감안해서 볼 때 이번 감산이 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제한적일 가능성이 높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OPEC최대 산유국, 러시아도 감산 동참하지 않겠다고 발표

여기에 러시아의 동참은 기대하지 말라는 의견이 3일(현지시간) 제기됐다. 유가 하락에도 러시아 원유 산업은 타격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로날드 스미스 씨티그룹 러시아원유부문 수석 애널리스트는 이날 FT에 실은 칼럼을 통해 "러시아는 앞으로 최소 5년간 계속 증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지난달 러시아의 산유량은 20만배럴 더 늘어난 하루 평균 1118만배럴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1989년 이후 러시아가 기록한 최대 산출량이다.

비(非)OPEC 최대 산유국 러시아가 변수. 출처=한국투자증권

현재 러시아의 원유기업들은 세전 기준 큰 이윤율을 기록하고 있다. 러시아의 원유 생산비용이 높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배럴당 20달러 이하 수준의 비용으로 생산하고 있다. 러시아의 세금체계와 루블화가 유가하락에도 버틸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블화는 유가와 연동돼있어 유동적으로 원유기업들의 수익을 보장하고 있다. 다만 대부분은 러시아 정부가 세금으로 거둬 들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러시아는 다른 산유국들과 달리 유가 하락에도 원유 시추장비 수를 오히려 늘릴 수 있었다.  현 상황에서 큰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오는 2020년까지 러시아는 하루 평균 1150만배럴을 생산해 낼 전망이다. OPEC의 감산 행렬에 러시아가 참여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이는 이유다.

WSJ “유가 올해 말 평균 50달러 이하, 내년 55달러 선에서 등락”

위 요인들로 미루어 볼 때, 최근의 유가 상승세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투자은행 1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말까지 평균 50달러 이하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 서부텍사스유는 평균 54달러 선에서, 브렌트유는 배럴당 평균 56달러 선에서 균형 가격이 형성될 것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