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 me the money’ 게임 도중에 이렇게 입력하니 미네랄과 가스가 잔뜩 생긴다. ‘black sheep wall’이라고 입력하면 암흑에 휩싸였던 전장 모든 부분이 훤히 보인다. ‘power overwhelming’이라고 치면 우리 편 유닛과 건물이 무적 상태가 된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치트키(Cheat Key)들이다. 치트키를 입력하면 아무리 어려운 미션이라도 손쉽게 풀어나갈 수 있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와 경쟁하는 멀티플레이 모드에서는 치트키 사용이 불가능하다. 스타크래프트뿐만 아니라 개발자들은 종종 게임에 치트키를 숨겨두곤 한다.

게임 한류, 앵그리버드 만나다

국내 게임 업계에서 흥행 치트키로 여기는 두 글자가 있다. IP(지적재산권)가 그것이다. 마치 유행어처럼 널리 사용되고 있는 용어다. 과거부터 IP 침해와 보호 문제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했다. 이제는 IP를 적극 활용해 수익 극대화 방안을 모색하자는 쪽으로 사고의 패러다임이 전환됐다.

IP 활용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유명 IP를 기반으로 신작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IP 홀더는 IP를 제공해 로열티 수익을 올리고, 개발사는 유명 IP를 십분 활용한 신작으로 흥행을 노린다. ‘카카오프렌즈’ IP를 활용해 만든 모바일 게임들(프렌즈런·프렌즈팝·프렌즈사천성 등)이 대표 사례다. 최근 넷마블게임즈가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리니지2 레볼루션’ 역시 그런 경우다.

▲ 출처=카카오

IP라는 열쇠가 있으면 영화는 게임이 되고, 웹툰은 드라마가 되고, 애니메이션은 캐릭터 상품이 된다. 분야를 뛰어넘는 시도가 얼마든 가능하다. IP 활용이라는 화두가 게임 업계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콘텐츠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경쟁력 있는 슈퍼 IP는 한둘이 아니다. 포켓몬의 경우는 어떨까. 위치 기반 모바일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GO’는 IP 활용 게임 성공 사례로 꼽힌다. 신드롬에 가까운 흥행으로 개발사인 미국 나이앤틱은 물론 포켓몬컴퍼니·닌텐도 등 IP 관계사들은 큰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 출처=나이언틱

국내 게임사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슈퍼 IP 중 하나는 ‘앵그리버드’다. 핀란드 로비오엔터테인먼트가 창안해낸 게임이자 IP다. 국내 일부 게임사는 로비오와 계약을 맺고 앵그리버드 IP를 활용해 모바일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모두 연내 출시를 계획 중인 만큼 조만간 ‘한국산 앵그리버드’를 만나볼 수 있겠다.

조이시티는 올해 5월 로비오와 계약을 맺었다. 기존 모바일 보드게임 흥행작 ‘주사위의 신’에 앵그리버드 IP를 입혀 ‘앵그리버드 다이스’를 개발 중이다. NHN엔터테인먼트의 개발 자회사인 NHN스튜디오629는 지난 1월 계약을 맺고 퍼즐게임 ‘우파루팡’에 앵그리버드 IP를 입힌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큰 시장인 한국을 공략하려면 믿음직스러운 로컬 개발사와 파트너십을 맺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NHN스튜디오629는 특히 로비오와 비슷한 비전과 생각을 가지고 있어 함께 하게 됐습니다. NHN스튜디오629의 아시아 국가 서비스 경험 또한 아시아 시장을 더 적극적으로 공략하겠다는 로비오의 전략과 일치합니다.” 윌헴 타트 로비오 게임사업 총괄의 말이다.

▲ 출처=조이시티

앵그리버드는 분명 글로벌 흥행을 예감케 하는 슈퍼 IP다. 기존 기록부터가 어마어마하다. 앵그리버드 시리즈는 지금까지 100개가 넘는 나라 앱마켓에서 1위를 달성했다. 앵그리버드 IP 게임은 지금도 액티브 유저가 월 1억5000만명 수준이다. 북남미·유럽·아시아 골고루 유저 분포를 보인다. 시리즈 누적 다운로드는 30억건 이상인 걸로 알려졌다. 국내 IP 중엔 찾아보기 힘든 볼륨이다. 게임 한류의 꿈도 앵그리버드와 함께라면 어렵지 않을 것만 같다.

글로벌 흥행 '치트키' 맞을까

그런데 사실 로비오는 지난 2013년부터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앵그리버드 시리즈의 인기에 힘입어 여러 분야로 공격적인 IP 확장을 시도했지만 IP 자체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았다. 시리즈 신작은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기 일쑤였다. 결국 로비오는 지난해 1300만유로(약 171억원)의 적자를 내고 말았다. 부랴부랴 CEO를 교체하고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직원 30%가 회사를 떠나야 했다.

반전을 모색하고 있기는 하다. 올해 개봉한 3D 애니메이션 ‘앵그리버드 더 무비’가 기대 이상의 흥행을 거두면서 기회를 잡았다. 로비오는 다시 공격적인 IP 확장을 시도 중이다. 전 세계 300개가 넘는 파트너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이들은 앵그리버드 IP로 상품을 양산해낼 예정이다. 로비오는 계약에 따른 로열티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막대한 수익을 거머쥘 수도 있겠지만 리스크가 따르는 전략이다. IP 과잉 확장을 도모할 경우 오히려 IP 자체의 파워가 줄어드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닌텐도가 폐쇄적인 파트너 전략을 취하며 슈퍼마리오 IP를 보호·관리했던 이유다. 그러니 앵그리버드 IP와 로비오의 모습은 아직까지 위태롭게 다가온다.

역으로 생각하면 국내 게임사가 개발 중인 앵그리버드 게임이 로비오의 부활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다만 이미 엄청나게 많은 앵그리버드 게임이 시중에 나와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앵그리버드 IP 내부 경쟁도 치열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앵그리버드 IP를 절대적인 흥행 치트키로 보긴 어렵다.

▲ 출처=로비오엔터테인먼트

국내 게임사가 해외 유명 IP를 활용해 만든 게임이 글로벌 흥행을 거둘 경우, 이것이 게임 한류 사례로 기억될 것이냐의 문제도 남아있다. 한국 게임이나 고유 IP로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보다는 앵그리버드 신화의 일부가 되진 않을까. 물론 로비오와 함께 핵심 조연으로서 돈 방석에 앉을 수는 있겠다.

이는 앵그리버드라는 유명 스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제작해주는 일과도 비슷하게 여길 수 있다. 분명 꾸준히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면서 수익을 창출해내는 토종 슈퍼 IP를 창안해내는 일과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글로벌 게임 시장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한 장기 IP 전략도 우리 업계에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