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저성장으로 인한 경제 쓰나미와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은 전세계 모든 나라의 퇴직연금제도에 일대 변화를 몰고 왔다.

세계의 각 나라들이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제도를 변경하고 국민 각자가 자신의 노후자산을 준비할 수 있도록 퇴직연금 관련 제도를 수정,정비하고 나섰다.

전통적 퇴직연금 제도 중 DB형(확정급여형)은 근로자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으나 적립금 운용과 퇴직연금 수급에 대한 모든 책임을 기업이 지기 때문에 적립금 운용수익률이 임금상승률보다 낮은 경우 기업의 부담이 커진다.

반면 DC형(확정기여형)은  기업의 부담을 분산시킬 수 있는 이점은 있으나 운용수익이 저조하여 저금리시대를 이길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상품이 안 된다. 또한 자산배분 및 위험관리 등을 근로자 개인의 책임으로 퇴직금을 운용하기 때문에 개인별 투자성과에 따라 퇴직시 퇴직급여의 수준이 줄어들 수 있다.

세계적인 저금리현상은 퇴직연금의 당사자인 기업과 근로자에게 공히 급여부담과 수익률 부담을 줄이면서 공평한 방법으로 노후자산을 준비할 수 있도록 퇴직연금 관련 제도를 수정,정비하고 있다.

일찌기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는 선진국의 하이브리드형 퇴직연금 제도의 핵심 운영원칙은 기업이나 근로자에게 일방적인 부담을 지우지않고 리스크와 비용은 분담하고 수익은 공유하는 것이다.

리스크와 이익을 공유하는 하이브리드형 퇴직연금제도의 예는 네덜란드의 ‘집단형(Collective) DC’제도와 네덜란드와 비슷한 형태로 운용하는 영국의 ‘Defined Ambition(DA)’제도, 일본의 ‘리스크분담형 DB’제도와 호주의 슈퍼 애뉴에이션(Super Annuation) 등이 대표적인 모델이다.

▲ (자료: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지식비타민(2016-51호) 재인용)

♦ 네덜란드, ‘집단형DC 퇴직연금’ - 리스크 분산- 비용 절감

네덜란드의 ‘집단형DC 퇴직연금’은 대부분의 퇴직자 연금소득에 퇴직연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근로자를 위한 제도이며 법적으로는 DB형으로, 회계상으로는 DC형로 분류되는 혼합형 제도로 볼 수 있다.

집단형 DC퇴직연금은 연금가입 근로자의 개인 계정을 개설하지 않고 한 기업에 근무하는 전체 근로자집단을 하나로 운영한다.

이처럼 근로자를 한 집단으로 편입한 점에서는 DB형과 유사한 점이 있지만 퇴직급여 수준이 적립금 운용성과에 따라 수령할 때는 퇴직급여가 많이 달라질 수 있는 점은 DC형과 비슷하다.

퇴직적립금의 운용성과가 저조하여 퇴직자산 적립비율이 낮아질 경우 각 적립비율에 해당하는 산식에 따라 조정률과 퇴직급여 수준은 변동되며 퇴직 시에는 연금자산 풀(Pool)에서 연금이 지급된다.

집단형 DC의 가장 큰 장점은 적립금 운용리스크는 근로자가 부담하지만 집단명의로 운용되어 리스크가 근로자집단으로 분산되고 운용비용은 절감되는 효과이다. 아울러 젊은 현역 근로자 가입자의 자산인 추가 적립되는 수급 단계의 자산이 함께 운용되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 기대가 가능하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영국과 일본에서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퇴직연금제도는 네덜란드의 집단형 DC 제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자료: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지식비타민(2016-51호) 재인용)

♦ 영국, ‘Shared Risk Scheme’  - 리스크 공유

영국 노동연금부가 운용하는 퇴직연금제도의 본래 명칭은 ‘Defined Ambition(DA)’형이었다.그러나 새로 도입하는 제도에 ‘Shared Risk Scheme’ 문구를 넣어 리스크 공유 취지를 명백하게 표시한 제도로 명명했다. 이 제도 역시 DB형과 DC형의 중간 성격을 띈 제도이다.

영국의 퇴직연금시장도 DB형 퇴직연금 운영에 따른 기업들의 부담은 가중되고 반면에 DC형 가입자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어 퇴직소득 자체에 대한 불확실성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영국정부는 근로자나 기업이 일방적으로 퇴직연금 운용리스크를 부담하는 현상을 완화하고 국민의 노후생활을 보장하는 안전 퇴직자산 보장 차원에서 DB형과 DC형의 장점을 결합한 유연한 형태의 새 연금제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영국 노동연금부는 지난 2013년 개혁안을 통해 DB형이 가진 기업 부담 경감의 장점과 DC형이 가진 가입자의 리스크 경감 목표를 충족하는 유연하고 중립적 장점을 가진 새 연금제도로 'DA(Defined Ambition)’를 제시했다.

새 개혁안 DA에는 근로자의 평균 수명 등을 감안한 DB형의 유연성과 DC형에 원금을 보존한 원리금합계 보장 등의 요소를 추가한 ‘집단형 DC’ 도입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연금법 개정에서 DB형, DC형과 함께 DA라는 용어 대신 리스크 공유 취지를 명확하게 표시한 ‘Shared Risk Scheme’을 퇴직연금 3종류로 분류했다.

한편 퇴직연금의 구체적인 운영방법은 네덜란드의 ‘집단형 DC’와 같은 방식을 채택하여 운용하고 있다.

▲ (자료: KB금융경영연구소 지식비타민 (2016-51호) 재인용)

◆ 일본 , '기업과 개인 리스크분담형 DB'

일본 정부는 이미 지난 2002년과 2014년에 기업이 퇴직연금을 실시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하이브리드형 퇴직연금으로 투자시장에서 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해 ‘지수연동형 CB(Cash Balance)'와 ‘실적연동형 CB(Cash Balance)'를 도입하여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저금리의 영향은 기존 제도로는 근로자의 관리능력이 부족한 경우 퇴직금의 원금을 까먹는 투자손실 현상이 노출되었다. 이에 일본은 DC형 우위의 제도를 보완하는 ‘리스크분담형 DB’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일본재흥(再興)전략 개정판’에서 금융시장 활성화 방안으로 DB형 퇴직연금이 부담하는 운용 리스크를 기업과 근로자가 서로 분담하는 비용분담형 하이브리드 퇴직연금제 도입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에 의하면 새로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리스크분담형 DB형퇴직연금’의 특징은 노사간 합의를 통해 사전에 결정한 ‘리스크 대응 부금’을 적립하고 적립한 부금을 기업이 일괄적으로 운영하는 점이다.

‘리스크 대응 부금’은 안정적인 퇴직연금(DB형) 운용을 위해 미래에 예상되는 재정 악화를 상정한 적립 부족 리스크를 사전에 계상하여 노사 합의에 따라 추가로 적립하는 부금이다.

일본의 경우 회계법상 미적립 퇴직금이 발생할 경우 일정률의 법정퇴직적립금을 기업에서 의무적으로 매년 적립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기존의 DB형은 평상시에는 퇴직연금 급부를 초과하는 부금 적립이 인정되지 않으며 연금재정이 악화되었을 때 추가 출연을 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그러나 연금재정 상태는 경기 상황과 연동되기 때문에 불경기로 인한 기업 실적이 부진한 경우에는 연금 추가 출연을 요구하는 사례가 증가한다.

▲ (자료: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지식비타민(2016-51호) 재인용)

♦호주, 'Super Annuation (슈퍼 에뉴에이션)'

호주는 1992년 퇴직연금을 도입한 이래 연평균 12%씩 성장하며 호주 금융 발전을 이끄는 견인차가 됐다. 퇴직연금 자산은 호주 자산운용 시장에서 75%를 차지하고 있다.

호주의 퇴직연금제도는 사업자가 근로자 소득의 9%를 강제 적립하는 슈퍼애뉴이션을 도입하고 있다. 이 제도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사후관리 체계를 확립하고 기금형 제도로 체계를 이루고 있다.

호주의 퇴직연금은 기업에 재직하는 근로자는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준강제성을 띄고 중도인출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지를 가하여 노후자산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

또한 사용자와 가입자 주도의 사후관리체계에 대한 법적인 기틀을 마련하고 근로자의 운용 참여를 높여 독립적인 전문가에게 운용을 맡겨 운용성과를 크게 높이고 있다.

호주의 인구는 한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지만 퇴직연금 가입자 수는 1400만명으로 한국의 600만명 대비 2.4배이며, 가입률은 100%에 가깝다.

퇴직연금의 자산규모는 한국의 126조원 대비 13.4배인 1700조원에 이른다. 운용상품도 대부분 실적배당형 상품인 DC형 투자상품에 가입하고 있다.

호주 퇴직연금의 투자자산구성(포트폴리오)은 주식 51%, 부동산 10%, 채권 14% 등에 편입되어 자산운용 역량이 수익률 제고에 알맞도록 짜여져 있다.

호주의 퇴직연금 관리운용은 수십년간 안정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인프라 투자에 주로 집중하고 있다. 도로, 항만, 항공 등에 투자하는 인프라 투자는 수십 년간 장기계약으로 연평균 6~8% 수준의 수익을 추구한다.

이런 투자 역량은 수익률 제고로 연결되어 지난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9.5%로 우리나라(2015년기준 2.5%)의 3.8배에 달한다.

또한 호주의 퇴직연금 제도는 가입은 준강제성을 띄고 있으나 노후연금으로 수령하게 하는 유인책이 제도에 녹아있다. 처음 가입할 때 가입자는 5가지 종류의 연금중 필요와 사정에 의해 적당한 연금을 선택하여 소득인출형 상품을 선택하면 연금으로의 전환 및 중도에 생활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다.

세계의 여러 국가들이 저금리-고령화 등에 따른 시장의 급격한 변동성에 대응하며 각 나라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퇴직연금제도 운영에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편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정인 연구위원은 '해외 각국의 하이브리드형 퇴직연금 도입 동향' 리포트에서 “기업과 근로자 한 쪽으로 리스크가 편중된 기존의 DB형과 DC형 퇴직연금의 중간적 형태인 하이브리드형 퇴직연금은 집단화의 장점을 살리는 방식과 기업과 근로자 간 의 리스크를 분담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울러 집단화를 통한 운영은 개인이 자산 운용을 하는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고 전문적인 자산관리를 받을 수 있으며, 규모의 경제로 인한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또한 집단화는 젊은 재직자의 자산과 수급단계의 자산을 함께 운영하여 장기투자 를 통해 결과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등 세대간 투자리스크와 사망률 공유 등을 통해 장수리스크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제도가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