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과전문 문성병원 김창형 과장

필자 가끔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꽤 좋아지고, 평소보다 흥이 나기도 하고, 사람들과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철없던 대학생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셨던 적도 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이제는 주 1회 이상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마시지를 못한다. 다음날 숙취로 인해 집중력이 흐려지는 게 무서워서다.

50대 남자 환자가 야간에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다. 식은땀을 많이 흘리며 몸 전체를 부들부들 떨면서 응급실로 내원했다. 병력 청취를 해보니 매일 소주 2~3병 이상씩 마시던 사람이었다. 여러 가지 기능 검사와 병력 청취상 진단은 알콜성 진전섬망으로 어렵지 않았으나 문제는 치료다. 급성기 치료는 충분한 수액공급 및 안정제 투여, 비타민 공급 등이고, 급성기 치료가 끝나면 당연히 금주해야 한다. 급성기 치료는 다행히 잘 마무리되어 환자가 안정되었지만, 금주를 교육하고 다짐하는 작업은 상당히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다. 그 환자는 시청 공무원이었고 업무상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어쩔 수 없이 매일 술을 마셔야 했다고 한다.

의학적인 치료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잘 마무리되었지만, 필자보다 나이가 많은 환자에게 앞으로 술을 절대 마시면 안 된다고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주로 필자가 접근하는 방법은 2가지다. “술 말고도 찾아보면 재미있는 것이 많습니다.”, “당신이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매일 만나는 술친구들 중에 병원비 한 푼 보태주는 분은 없을 겁니다.”

구구절절 여러 방법을 써봤지만, 현재 필자가 가장 효과적이라 생각하는 말은 이 두 가지다. 대부분은 술친구들 중에 병원비 보태주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말에 상당히 공감한다. 그 환자는 결국 금주에 성공했고 현재는 외래에서 웃으면서 만나는 행복한 결말을 보였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나이 또래의 다른 남자 환자는 양 팔과 다리 저림 및 통증 호소로 내원하여 입원치료하게 되었다. 이 환자는 야간에 술집을 운영하며 매일 술을 많이 마신다고 했다. 진단 과정을 거쳐 최종으로 알코올성 말초 신경병증으로 진단하고 투약 치료를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알코올성 말초 신경병증은 약물로 통증을 조절하지만, 쉽게 잘 조절되는 병이 아니다. 알코올 분해 산물이 말초 신경에 많은 손상을 준 이후이기 때문에 약을 끊으면 증상이 재발한다. 또한 당뇨 또는 다른 원인으로 인한 말초 신경병과 달리 통증이 아주 심한 것도 특징이다.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 전기에 감전된 듯한 통증 등 환자들이 표현하는 통증의 양상만 들어도 대략 짐작이 된다.

이 환자 역시 차츰 차츰 약의 단계와 종류를 조정하며 긴 시간에 걸쳐 증상은 어느 정도 호전을 보였다. 그렇지만 야간에 몰래 병실에 술을 사들고 와서 계속 마시면서 결국 강제 퇴원 조치되는 불행한 결말을 보였다. 외래에서 만나니 당연히 신경병성 통증 역시 재발했고 통증으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했다. 금주를 해야 약을 적정하게 조정할 수 있다고 필자가 충분히 설명했고 본인도 알고는 있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술을 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필자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한계에 부딪힌다. 그래도 이렇게 외래에서 필자와 면담을 하고 진료를 받고 돌아가면 며칠 동안은 술을 안 마시게 된다고 하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랄까.

생각보다 알코올과 관련된 신경과 질환은 다양하다. 앞서 얘기한 알코올성 진전섬망, 알코올성 말초 신경병증 이외에도 알코올성 치매, 베르니케 뇌병증(인지장애, 실조증, 배뇨장애 증상을 특징적으로 보이는 병), 알코올로 인한 자율신경계 장애, 수면장애, 두통 등이 있다. 그리고 장기간의 과음은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간경화, 위궤양 등 다른 내과적인 합병증도 일으킨다. 술을 끊기 위한 구체적인 약물치료 및 상담은 정신과 영역이지만, 폐쇄 병동 입원을 꺼린다든지, 다른 기저질환 치료를 같이 하기 위한 목적 등으로 신경과에서도 아주 흔하게 알코올 의존 또는 중독 환자를 접할 수 있다. 가끔은 허공이나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금주의 필요성에 대한 필자의 설명을 못들은 척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체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사조차도 그 환자의 생활습관 교정을 포기한다면, 일종의 방임죄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어 필자 혼자 양심을 꺼내 생각하기도 한다.

술은 분명 삶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만고의 진리가 과유불급이듯, 질환에 있어서 술도 그러하다. 과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에 대해서 거창하게 언급하지 않더라도 분명한 사실은, 과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중증 질환은 개인 및 가정에 엄청난 불행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더구나 알코올로 인해 발생하는 신경과 질환은 되돌릴 수 없는 점이 많아서 개인적으로는 더욱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