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여배우이며 감독인 안젤리나 졸리는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나의 의학적 선택’이란 글에서 자신이 왜 유방과 난소를 제거했는지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유전자 검사에서 유방암과 난소암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BRICA1 유전자 결함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진단한 의사는 유방암과 난소암이 발생할 확률이 각기 87%와 50%이라고 진단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10년 넘게 암 투병을 하다가 56세의 나이에 조기 사망했다. 그녀는 자신도 어머니와 같이 조기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 유방과 난소를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는 슬픔을 그녀의 6명 자녀들이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37세의 젊은 나이에 과감히 유방과 난소를 절제해 버렸다.

안젤리나 졸리의 이야기를 접하면 누구나 젊고 건강한 시절에 유전자 검사를 받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건강검진만으로도 자신의 건강상태를 잘 알 수 있다고 보통 생각하지만 DNA 테스트를 받아보지 않고서는 정확한 건강상태를 장담할 수가 없다. 특히 노후에 닥칠 질병의 위험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를 받아 보면 미래의 질병 가능성까지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나쁜 유전적 형질까지도 알 수 있게 된다.

인체는 5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세포 속에는 세포핵이 있고 그 속엔 23쌍의 유전체가 가득 채워져 있다. 유전체들은 유전자들의 집합체인데 유전자 수로는 약 2만개가 된다. 유전자는 DNA 분자들이 길게 이어진 분자다발이다. DNA 분자는 아데닌, 티아닌, 시토신, 구아닌이라 불리는 염기들이 서로 쌍을 이루며 다양한 순서로 배열되어 있는 생체정보인데 유전자 정보라 부른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는 같은 형태의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염기들의 배열순서에 따라서 식물인 바나나가 될 수 있고 동물인 염소도 될 수 있으며 원숭이 또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인간과 침팬지는 유전자의 98.5%가 동일하고 사람들 간에는 99.5%가 동일하다.

 

인체 유전자 분석비용이 100달러대로 낮아진다

인간게놈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의 모든 유전체 서열을 처음 분석한 시점이 2003년이다. 20개 대학이 13년 동안 30억달러를 들여서 이뤄낸 성과다. 그 후 컴퓨터 처리속도가 빨라지고 유전자 서열변화를 감지하는 센서 기술이 발전하면서 1000달러면 모든 유전자 서열을 분석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머지않아 100달러의 비용만으로도 인간의 게놈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 DNA는 생명체의 일생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고 RNA는 유전자 코드를 전달하고 변환하는 역할을 한다. 분석기술이 발달하면서 유전자 정보를 단순히 밝혀내는 일뿐만 아니라 생명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생물학적 데이터를 분석하여 개인별 유전 특성을 분석할 수 있다. 이 정보는 가까운 미래에 닥칠 질병을 예견하고 정밀한 개인맞춤의약을 개발하는 정보로 활용할 수 있다.

유전자 정보는 특정 단백질을 만드는 일종의 처방전이다. 인체는 유전 정보에 의해 만들어진 단백질들에 의해 모든 형질이 결정된다. 즉, 사람의 머리카락 색깔, 피부의 점들, 암을 발생시킬 위험성 등 인체의 모든 것을 유전 정보가 결정한다. 유전 정보는 선대로부터 후대로 유전되므로 선친이 좋지 않은 질병으로 사망했다면 후손들도 같은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자신의 유전 정보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안젤리나 졸리는 다행히도 자신의 치명적인 유전자 결함을 조기에 발견하고 회피할 수 있는 조치를 과감히 취했지만, 아직까지는 자신의 유전자 지도를 점검해본 사람이 매우 드물다. 최근엔 유전자 서열분석 비용이 저렴해지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유전 정보를 분석해 보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유전자 분석으로 질병회피방법을 찾는다

개인의 유전 정보 분석기관으로 가장 잘 알려진 기업은 23앤미(23andme)이다.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구강 면봉 채취 키트로 타액을 채취해서 보내주면 가계분석(99달러)은 물론이고 질병에 취약한 건강정보(199)도 서비스해준다. 아이슬란드의 디코드제니틱스(deCODE genetics)는 50만명 이상의 유전 정보를 보유하고 일반적 질병들에 걸릴 유전적 위험인자들을 분석해준다(1100달러). ‘Gene by Gene’는 특정 유전자 검사, 염색체 마이크로 서열, 전체 게놈 서열분석 등으로 친자 확인, 쌍둥이 여부 확인, 가족관계 여부 등을 분석해 주고 임상적으로 활용가능한 개인질병 정보도 저렴한 비용(195~950달러)으로 제공한다. 영국의 지니프라넷(Geneplanet)은 개인 맞춤 유전자 분석을 기반으로 질병 예방 및 체중 감소법을 알려주는 서비스(499유로)를 제공한다. 디엔에이 안세스트리(DNA Ancestry)는 저가(99달러)에 가족이력을 조사해 주는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기업으로는 디엔에이링크와 테라젠이텍스 등이 있다. SK케미칼과 유한양행 등 제약사들도 이들과 손잡고 개인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제공한다. 비용은 30만원부터 시작하며 검사 항목에 따라서 증가한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간암, 폐암, 식도암, 위암, 대장암, 췌장암, 담낭암, 갑상선암, 자궁내막암, 난소암, 유방암 등 암 유발가능성과 항암제(이리노테칸), 항암제(메르캅토퓨린),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혈소판응집억제제, 항응고제(와파린), 고혈압치료제(카르베틸롤), 혈청지질강하제(Statin), C형간염 치료제 등의 치료약물에 대한 대사 부작용 등을 검사해준다.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으면 해당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점검하게 된다. 설령 유전적 질환이 발견되고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 유전적 형질을 갖고 있다 해도 그것을 수정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예상되는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서 생활 습관을 고쳐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게놈의 유전자 서열을 알아내는 일과 생명체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사실 유전자에 문제가 있다 해도 이를 수정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만큼 어려웠다. 그런데 2005년에 박테리아들의 자연면역시스템에서 CRISPR/Cas9 유전자 가위를 발견했다. 마치 가위처럼 유전자의 일부를 잘라 내어서 다른 위치에 삽입해 붙이는 이 기술은, 바이러스 유전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해봄으로써 유전자 편집기술로 정착되었다. 유전자를 편집한다는 측면에서 인류는 지금 생명과학과 의약분야의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할 수 있다. CRISPR/Cas9 유전자 편집기술은 질병은 물론이고 다양한 유전자 결함을 수정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CRISPR/Cas9 유전자 가위로 수정란의 게놈에 존재하는 유전적 오류를 수정할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유전자 변형이 비교적 안전하게 유도될 수 있다. 하지만 수정란이나 줄기세포 주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편집은 개인의 형질변환에 그치지 않고 후대로 유전되므로 사회와 비즈니스에 미치는 충격은 깊고도 넓다. 근본적으로 윤리적 문제를 점검해야 하는 이유이다.

 

유전자 편집도 디지털 조작으로 손쉬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조사기관들은 유전자 편집 시장이 2019년까지 약 35억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케미칼월드(Chemical World)>에 게재된 한 논문에서 유전자 편집은 이미 과학이 아니라 커다란 비즈니스 대상이라고 논할 정도다. 효과적으로 DNA 서열을 편집하고 수정하는 기술이 보편화되면 전문가들은 틈새영역을 많이 발굴할 것 같다. 예를 들면 기후변화에 강인한 특수 품종의 식물을 만드는 유전자 편집기술이 가능하다. 농화학업체로 급부상한 듀퐁은 이미 가뭄에 강한 옥수수나 밀 품종을 유전자 편집방식으로 개발하여 재배하고 있다. 농생물 산업전문가들은 유전자 편집기술이 농업생산과 농가수익에 새로운 혁명을 몰고 온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제약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노바티스는 유전자 편집 전문 스타트업과 함께 유전자를 편집하여 면역세포, 혈액줄기세포 등을 만들어 새로운 약품 개발에 응용하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생물학의 디지털화 기술은 자연에 없던 식물이나 동물들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 디지털생물학은 복잡한 유전자 편집도 디지털 조작으로 손쉽게 만든다. 인간의 의도에 맞춰 자연에 없던 식물을 탄생시키거나 동물의 종을 개량하는 일을 서슴없이 할 가능성이 높다.

생물의 형질 변화는 분자 수준에 머물지 않고 전체 생태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므로 윤리적 문제를 깊이 검토해야 한다. 유전자 수정으로 인하여 미처 생각지 못한 생태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편집은 항상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치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최근에는 IT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가 암세포 문제를 10년 내에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암 세포를 컴퓨터 시스템의 버그(Bug)처럼 인식하고 잘못된 DNA 코드를 건강한 세포로 재프로그래밍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주장한다. 이미 세계 최고의 연구자들을 모아 연구팀을 만들었다. 세포의 문제를 컴퓨터 엔지니어들의 아이디어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이 생뚱맞지만 이미 생물학이 디지털화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