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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인 남편과 해학적인 아내
10년지기 부부의 조각사랑

결혼 10주년을 맞은 부부가 처음으로 한 갤러리에서 같이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권치규(42)·김경민(37) 조각가 부부는 집과 작업실을 오가며 하루 24시간을 같이 지내는 동료이자 경쟁자로 그리고 부부로 산 지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들 부부의 작품세계는 사뭇 다르다.
남편 권치규 조각가가 집과 나무를 이용해 자연과 문명을 추상적으로 표현해 문명 속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전달한다면, 아내 김경민 조각가는 현대 일상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재언 미술평론가는 “김경민 작가의 등장은 엄숙주의 조각계에 발랄하고 참신한 도전이었다. 마치 삽화나 동화를 보는 것 같은 경쾌하고 산뜻한 장면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고 평한다. 그는 이어 권치규 작가에 대해 “수다스럽고 현란한 수사보다는 과묵하면서도 강력한 단조로운 구조가 눈에 띈다”며 “조각가로서 드물게 탐구와 전시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고 설명한다.
지난 11월28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만난 남편 권치규 작가는 차분한 말솜씨로 작품 하나하나에 애정을 과시했다.
권 작가의 작품은 1층과 3층에 김 작가의 작품은 1층과 2층에서 만날 수 있다.
무려 3개월 동안 한 작품에 매달려 선보인 작품 <욕망>(사진 4)은 집구조를 다소 변형적으로 등장시켰다. 3개월 내내 플라스틱 표면을 사포로 매끄럽게 갈고 한줄 한줄 주름을 가는 노력 끝에 모습을 드러낸 만큼 애착이 크다. 평면도상으로 거의 평면화된 마름모꼴의 구조를 띠며 작가 특유의 주름질 방법에 의한 투시를 결합했다.
이 작품은 1층 전시관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크다. 작품 안에 LED 조명을 설치해 집 위에 나무와 의자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표현해 자연과 문명의 현상을 대비시켜 양면성을 보여준다. 집의 한쪽 벽으로부터 시작된 형태는 주름을 따라 반대편으로 가면 나무의 형상으로 바뀌어 있다.
권치규 작가는 “집이라는 문명(욕망)의 실재를 원근법적으로 투시할 때 결국 거기에는 자연 혹은 인간이라는 본질적 문제가 나타나게 되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작품”이라며 “문명 속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3층에 전시된 권 작가의 작품을 짝지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문명과 자연이 만나 현실이 되듯 그의 작품은 비움의 미학에서 보여지는 인간상을 엿볼 수 있다.

전시 3일 만에 작품 도난 당하기도
그는 인간의 애정에 대한 욕망을 표현한 욕망 시리즈의 한 작품이 전시 3일 만에 도난당한 것에 섭섭함을 금치 못했다.
아내 김경민 작가가 애착을 표하는 <돼지엄마>(사진 2)는 실제 이들 가족 구성원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아내 김 작가가 등에 남편 권 작가와 1남2녀의 자녀를 나란히 업고 있는 모습의 <돼지엄마>는 남편까지 모두 4명을 뒷바라지하는 주부의 어려움을 압축해 표현했다.
그러나 실상은 발랄하게 웃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서 가족이 삶의 짐이 아닌 행복의 매개체로 그리고 있다.
<운전 중>이란 작품은 자녀를 양육하고 가사를 책임지면서 작가로서 활동하는 여성의 바쁜 출근길을 표현했다. 한손으론 운전대를, 한손으론 세상 밖에서는 잘 하기 어려운 코를 후비는 모습을 해학적으로 표현해 김경민 작가의 해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김 작가의 매력은 평범한 일상생활을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 짓게 만드는 데 있다.
서로의 작품 스타일은 다르지만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나 구상에 대해서는 서로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이때만큼은 경쟁 조각가가 아닌 부부로 돌아서는 대목이다.
특히 서로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만큼은 꼭 지킨다고 한다. 오랫동안 같이 작품활동을 하면서 터득한 서로에 대한 배려라고.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고갈되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두 부부는 다른 조각가들과 함께 한잔의 술을 기울이며 스트레스를 풀고 작품에 대한 신선한 아이디어도 얻는다고 한다.
결혼 10년차인 이들 부부는 아직도 서로를 ‘오빠’, ‘경민아’라고 칭한다. 여보, 당신이라는 호칭보다는 아직은 친구 같은 설렘을 간직하며 서로의 작업 스타일을 배려하는 부부의 모습에서 이들의 작품세계를 느낄 수 있었다.
올해 결혼 10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가족 행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회 준비로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권 작가. 이번 전시회가 끝나면 자녀들과 함께 다섯 식구가 함께 여행을 떠날 생각이라고 귀띔한다.
글 유은정 기자 (apple@asiaeconomy.co.kr)
사진 노진환 기자 (myfixer@ermedia.net)

사진설명
10년지기 부부 권치규·김경민 조각전이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12월 9일까지 열린다.
1 김경민 작 | 습관
2 김경민 작 | 돼지엄마
3 권치규 작 | Life-directivity
4 권치규 작 | 욕망

유은정 기자 apple@asia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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