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코뿔소가 온다> 미셸 부커 지음, 이주만 옮김, 비즈니스북스 펴냄

“홍길동!” 출근길 인파를 헤치며 걷다가도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무의식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폭탄이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순식간에 엎드리거나 도피할 장소를 찾는다. 뇌는 그 많던 소음 속에서도 자신과 직결된 단어를 골라 판단한 다음 연관된 반사 행동을 지시한다. 이른바 ‘선택적 인지’다. 이처럼 평상시 우리가 느끼지 못할 지라도 뇌는 본능적으로 기민하게 대응한다.

멀리서 2t 체중의 회색 코뿔소가 등장한다. 쿵쿵 지축을 흔들며 다가온다. 벌판에 선 사람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쉬이 눈에 띄고, 귀로 훤히 들리며, 발로도 감지된다. 그러나, 이 거대한 짐승의 접근마저 눈치채지 못할 때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물론 여기서 코뿔소란 사회나 개인 삶의 위기나 위험을 비유한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코뿔소 즉 주변의 사건 사고 대부분은 사전에 경고 신호를 낸다. 위기의 크기에 비례해 경고음도 크다. 그럼에도 명백한 경고가 무시되거나 애써 외면될 수 있다. ‘블랙 스완(검은백조)’ 즉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예측 능력 밖의 위기’와는 다른 상황이다.

평소 위기 대비를 강조하던 수많은 기업의 CEO들이 왜 강렬한 위험 신호를 내뿜는 현실 속 위기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저자는 심리적인 요인과 외부적인 요인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인간 본성과 제도가 현상을 유지하고 장밋빛 미래를 선호하도록 설계돼 있다는 얘기다.

일상에서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미적거리며 문제를 회피한다. 전 세계 경제를 응급 상황에 빠트릴 금융 위기나 기업의 사활이 걸린 위기 앞에서도 인간의 본능은 달라지지 않는다. 사회 시스템도 한몫한다. 단기적인 성과만을 부추기는 경제적 유인책이 경제와 정치 제도를 지탱하고 있다. 위협 요소가 커지기 전에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야 하지만 단기 성과에 매달리다 보니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사람의 ‘의도적 낙관’과 사회의 유인책이 결합될 경우 눈앞의 위기를 전면 부정하고 싶은 충동이 증폭된다. 이런 이유로 회색 코뿔소는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개인과 기업이 마주할 위기가 더 이상 개별적 위기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은 세상이 통째로 뒤바뀌려고 하고 있다.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으로 이루어지는 차세대 산업혁명, 즉 제4차 산업혁명이 급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산업 구조는 물론 사회, 경제, 문화까지 모든 면에서 격변이 예고되고 있다. 이미 우리는 노키아, 야후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차례차례 회색 코뿔소에 짓밟히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결론은 하나다.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위기를 미리 인지하면서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책에는 다양한 회색 코뿔소들이 나온다. 일상 속 위기와 위험들이다. 또한 편향된 인지로 인한 오류와 이에 대처하는 전략이 제시된다. 위기를 기회로 극복한 사례들도 나온다.

전반적으로 매우 흥미롭다. 책 속에 이런 구절도 있다. “그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려면 신호의 상태나 강도 못지않게 그 신호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 즉 ‘위기를 인정하는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경주 지진 사태에 대처하는 우리 재난당국의 허둥지둥이 떠올랐다. 그들부터 일독하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