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이 자~알 지났습니다. 명절이 되면 며느님들 힘드셔서 홈쇼핑 구매의욕이 높아진다고 합니다만, 아 요즘은 남자도 힘들답니다. 저희 집안은 전통적인 차례상을 차리고 제를 올리는 큰집은 아닙니다만 모처럼 일가친척들, 자식들이 다 모이는 만큼 음식 장만은 풍성하게 합니다. 보통 이 경우 며느리들의 고생이 제일 크리라 생각됩니다. 저의 아내 역시 말하지 않아도 명절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테고요. 다행히 저희 집안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함께’라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서 전을 부치고 설거지를 하고, 심부름을 하는 등의 일은 보조셰프(?)인 제가 담당하게 됩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주도적으로 치료할 땐 몰랐는데, 어정쩡하게 주방 근처에서 서성거리다 보면 조금 잉여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잠시지만 자존감이 낮아진 듯도 하고요. 주방 일을 하찮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제가 참 소질이 없다는 것을 느껴 작아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한테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의사로서 환자들의 피부질환을 고치는 일. 그중에서도 특히 여드름 치료는 정말 자신이 있답니다. 10년을 넘게 환자들을 치료하다 보니, 정말 다양한 환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중에서도 주방을 서성이다 보니 문득 얼마 전 찾아온 ‘김 셰프’ 생각이 났습니다. 김 셰프는 애칭으로 제 오랜 환자이자 친구입니다. 나이는 저보다 한참 어린 조카뻘 되는 청년이지만 그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와 의지를 높이 사고 있습니다.

사실 환자와 의사로 만난 인연이 이렇게 애틋해지기는 쉽지 않은데요. 몇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김 셰프는 ‘취업준비생’이라는 절박함 속에서도 ‘여드름’을 더 큰 고민으로 꼽을 정도로 다소 심각한 여드름 피부였습니다. 흔히 여드름 치료로 내원한 다른 환자들처럼 김 셰프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고, 치료와 재발을 반복하면서 지칠 대로 지쳐있던 상태였죠. 저는 김 셰프에게 이야기했어요. 여드름은 언젠가 사라진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 몸에 부담을 주지 않고 치료를 진행할 수 있는지와 흉터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고요. 그리고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했어요.

여드름 치료는 단순히 증상을 개선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물론 미래의 ‘재발’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과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치료 효과는 크지 않습니다. 환자 스스로 생활 속에서 노력해줘야 하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김 셰프는 청춘의 여러 유혹 속에서도 저와의 약속을 잘 지켰습니다. 치료를 받으면서 술, 담배는 물론 여드름을 악화시킬 음식도 조절해가며 무던히 따라줬지요. 이게 말로는 쉬울 것 같지만, 여드름 치료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얼마나 어려운지 아실 거예요.

여드름이 심각했던 만큼 치료는 다소 오래 걸렸지만, 김 셰프는 완주했고 원하는 직장에 당당히 취업해 셰프의 꿈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당당한 요리섹시남, ‘요섹남’이 되어서 말이죠. 아, 그리고 추석을 앞두고 모처럼 고향에 내려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최근에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자랑과 함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왔습니다. 저는 김 셰프의 치료 과정을 지켜보면서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저를 믿고 따라준 김 셰프와 저 자신에게도요. 한의사로서의 제 소신과 선택이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들은 이렇게 종종 찾아옵니다. 부디 김 셰프가 꽃구름 위를 걷는 아름다운 인생이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