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무관) / 출처 = 아시아나항공

자율주행, 친환경 등 자동차 업계에 변화의 물결이 이는 가운데 항공기 산업을 잘 살피면 자동차 시장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자동차와 ‘다른 듯 닮은’ 항공기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지니는 ‘힌트’를 찾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예상치 못한 이슈들을 만났을 경우 다른 산업을 답습해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자동차 시장, 변혁에 직면하다

21일 LG경제연구원이 발간한 <항공기 산업을 통해 본 자동차 시장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자동차 산업은 현재 안팎으로 대대적인 변혁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제품 측면에서는 자율주행(Autonomous Driving), 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s),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 스마트카(Smart Car) 등 지능화와 동시에 전기차·수소차로 대표되는 동력원의 변화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시장 측면에서는 전기화·지능화 기술을 앞세운 테슬라, 구글, 애플 등이 기존 자동차 업체들과 새로운 경쟁 구도를 그리고 있다.

이 같은 변화에는 새로운 면모도 있지만 과거 항공기·선박 등 다른 운송 수단을 제조하는 산업이 겪었던 양상과 비슷한 면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기술적 영향을 많이 준 항공기 시장의 경험과 선례를 통해 새로운 시각에서 자동차 시장의 미래 이슈를 점검해 볼 수 있다는 게 LG경제연구원 측의 설명이다.

자동차와 항공기에 비슷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의 고객군은 버스·트럭·특장차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개인이다. 반면 항공기는 대형 항공사나 군대 등 정부를 주고객으로 둔다. 땅 위를 달리는(2차원) 자동차와 달리 항공기는 3차원 공간에서 운용되므로 날개, 프로펠러, 제트 엔진 등이 추가로 들어간다. 핵심 기술도 자동차는 엔진인 반면 항공기는 소프트웨어(OS)다.

그렇지만 다른 듯 닮은 점도 많다. 두 산업 모두 100여년간 역사를 거치면서 시장이 성숙하고 기술이 발전하며 유사성도 보여왔다. 보잉, 에어버스 등 소수 거대 기업들로 통합되는 ‘과점화’가 자동차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첨단 기술이 대거 적용되며 부품 수가 계속 늘고 있다는 점도 공통 분모다. 효율성·경제성 향상을 위해 경량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도 닮았다.

▲ 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무관) / 출처 = BMW코리아

자동차에서 재현되는 항공기 분야의 경험

상황이 이렇자 항공기 분야가 전장화 과정에서 겪었던 변화가 자동차에서 재현 될 가능성이 커지는 중이다.

우선 주행 관련 센서의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대형 비행기에는 비행 기능에 관련된 수많은 센서들이 사용되고 있다. 기상 레이더, 공중충돌방지장치(Traffic Collision Avoidance System, TCAS), 대지접근 경보장치(Ground Proximity Warning System, GPWS) 등 각종 계측 장비에서부터 무선 통신 장비, FCS 등 다양하다. 군용기에는 고도(Elevation Angle) 측정이 가능한 3D 레이더 등 보다 높은 수준의 항공전자장비가 탑재되므로 부착된 센서의 종류도 더 많다.

현재 양산되는 자동차에 부착된 주행 기능 관련 센서들은 엔진, 조향, 브레이크 장치 등 구동에 관련된 부품들에 국한돼있다. 레이더 등 계측 장비의 탑재 여부에서부터 비행기와는 큰 차이를 보이므로 주행 관련 센서의 비중도 비행기의 수준에 비해 그만큼 낮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많은 업체들이 개발 중인 자동차에는 ADAS, 자율주행 기능에 필수적인 2D 레이더(Radar)와 라이다(Lidar), 카메라, GPS 등 위치·주행 환경 계측용 센서들과 모터, 배터리, 인버터 등 전기 파워트레인에 필요한 전력 제어용 센서들이 대거 들어가고 있다.

자율주행 기능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전기 파워트레인을 비롯한 각종 전자장비의 비중이 커질수록 주행 관련 센서의 비중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항공기 분야의 경험이 자동차 시장에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소프트웨어의 중요도 역시 동반 상승 중이다. FCS가 비행기의 성능과 안전을 좌우하는 만큼, 항공기 산업에서는 FCS용 소프트웨어가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주행 관련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자율주행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자동차용 소프트웨어의 중요도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항공기 산업의 경험을 통해 자동차 시장의 이슈를 짚어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자율주행자동차,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 등 현재 개발되는 다양한 기술들이 동시에 상용화되기 시작하면 누가 시장을 주도할 것인지에 이목이 쏠린다. 아직까지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이 관심을 받다 보니 관련 기업이 주도할 것으로 보는가 하면, 전기 구동 파워트레인 업체가 더 낫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기존 자동차 업체의 경쟁력도 무시하기 힘들다.

이를 항공기 시장 경험에서 들여다보면 비슷한 면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항공기(비행기) 시장의 주도권은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 보잉(Boeing), 에어버스(Airbus) 등 제조사가 가지고 있다. 제조사가 보유한 역량은 풍부한 사용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FCS 개발 기술력과 항공기 설계·조립 역량 등이다.

제트 엔진은 GE, 롤스 로이스(Rolls Royce) 등 엔진 전문 업체로부터 조달하고 있다. 엔진이 시장 주도권의 기반이 되지는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조립 역량 역시 항공기 정비업체가 보유하고 있어 결정적인 요소라 하기 힘들다. 항공기 산업에서는 통합 제어 OS와 설계 능력을 동시에 갖춘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는 있는 셈이다. 자동차 시장에서도 통합 제어 OS와 설계 능력을 동시에 갖춘 기업이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새로운 사업 모델이 나타날 가능성도 농후하다. 자동차 시장의 변화는 자율주행 기능과 전기 구동 파워트레인 관련 업체들에게 새로운 사업 영역을 제공하고 있다. 센서, 모터, 배터리 등 부품 제작업체나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대거 시장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반면 사업모델은 구태의연한 판매나 유지보수 서비스 등에 국한돼 있다.

▲ 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무관) / 출처 = 대한항공

그러나 항공기 시장을 보면 새로운 사업모델도 개발할 여지가 커 보인다. 항공 산업에서는 오래 전부터 리스(Lease) 거래가 활성화돼 왔다. 항공사 입장에서 보면, 고가의 항공기 구매에 따른 대규모 비용 지출을 줄일 수 있고, 사용 시간 만큼 빌려 쓰는 것이 구매하는 것보다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리스의 대상도 항공기와 항공기용 엔진으로 분리된다.

만일 자동차 시장에서도 동력원의 외주화가 일반화된다면 전기 파워트레인 업체가 차종의 개발 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파워트레인의 교체를 고려한 구조 설계도 가능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리스 사업 추진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전기 구동 파워트레인의 리스 사업은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파워트레인의 가동 데이터를 차종별, 용도별, 사용 지역별로 특화된 파워 트레인 개발도 가능해지고, 운용 데이터를 활용한 기타 사업도 개발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블랙박스의 ‘미래’도 항공 산업에서 경험할 수 있다. 인간이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자율주행자동차의 사고에서는 책임 소재가 지금보다도 더 중요한 이슈가 된다. 사고의 책임이 탑승자, 차량 제작업체, 기술 개발업체 중 누구에게 있는지 규명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사용되는 블랙박스는 자동차 업체가 아니라 사용자가 직접 구매해서 장착하는 튜닝 제품에 불과하다. 자동차의 전·후방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기능만 갖추고 있어 정보의 한계가 크다. 자동차의 주행 데이터 기록 장치인 EDR과 분리되어 있어 자동차 자체의 오작동 여부에 대해서는 정보 제공이 불가능하다.

항공기의 블랙박스는 비행기록장치(Flight Data Recorder, FDR)와 조종석음성기록장치(Cockpit Voice Recorder, CVR)로 구성돼 당시의 상황을 정교하게 재현할 수 있다. 블랙 박스 자체도 견고하게 만들어지고, 위치 송신 기능도 들어 있어 사고가 발생해도 쉽게 파손되지 않는다. 비교적 찾기도 쉽게 돼 있다.

이러한 비행기의 블랙박스를 응용해서 자동차 내부의 음성을 기록하고 EDR보다 더 다양한 주행 데이터를 저장하며, 자율주행자동차에 달린 카메라 센서를 결합해 외부 주행 환경까지 기록하게 하면 자율주행자동차에 필요한 블랙박스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의무 장착이 법제화되면 자율주행자동차 업체가 직접 장착하므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동차 자체의 오류 여부를 직접 입증해야 하는 부담도 한결 덜 수 있을지도 모른다.

LG경제연구원 진석용 책임연구원은 “자동차 시장의 큰 변혁은 이제 시작되고 있다”며 “자율주행자동차의 상용화 속도가 얼마나 빨라질지 쉽게 단정짓기 어렵고 최근의 디젤 엔진 문제가 각국의 규제와 소비자의 인식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도 쉽게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자동차 시장에서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이슈가 계속 생길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며 “그럴 때마다 해결의 실마리를 자동차 업계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항공기 등 다른 산업에서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