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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크린] 세계 최초 애완견 로봇의 슬픈 장례식소니 아이보(AIBO)가 남긴 유산은

일본 사람들은 강아지를 잘 키우지 않는다. 마당에서 기른다면 몰라도 집안에 들이는 일은 예전부터 많지 않았다. 대신에 고양이를 키우는 경우는 적지 않다. 우리나라와는 반대인 모습이다.

일본인이 강아지 키우기를 꺼려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단순히 취향 문제는 아니다. 일본엔 목조 건물이 많다는 데 그 비밀이 있다. 강아지는 대체로 용변을 잘 가리지 못하는데 소변이 목조 바닥에 스며들기라도 하면 악취가 나기 십상이다. 일본인이 고양이를 선호하는 배경이다. 고양이는 제 화장실을 알아서 잘 찾아가는 습성을 지녔다.

1999년부터는 갑자기 일본인들이 애완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진짜 살아있는 강아지가 아니라 애완견 로봇에 말이다. 바닥에 똥 오줌 안 지리고 진짜 강아지처럼 행동하는 세계 최초 인공지능 애완견 로봇 아이보(AIBO)를 하나둘 키우기 시작했다.

   
▲ 출처=소니

똑똑하면서도 멍청한 재간둥이

아이보의 소니의 작품이다. 이 전자강국 대표 업체는 보유한 첨단 기술을 과시하고 싶어 했다. ‘로봇’이라는 아이템이 제격이었다. 1997년 아이보를 첫 공개했고, 2년 뒤 정식 출시했다. ‘뉴 밀레니엄’ 2000년대가 오기 전에 등장한 소비자용 로봇이다.

첨단 기술 제품인 만큼 가격도 비쌌다. 발매 당시 25만엔(약 250만원)에 달했으니 ‘부자들의 장난감’ 같은 느낌이 짙었다. 나중에야 모델이 여러 버전으로 늘어나면서 가격대도 다양해졌지만 ‘로봇 대중화’라고 말하기엔 역시 비쌌다.

소니는 사람들이 아이보로부터 ‘진짜 강아지 같다’는 느낌을 받길 원했다. 패키지에 입양증명서를 동봉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특히 아이보는 인공지능(AI)을 탑재해 주인의 음성을 인식해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아이보는 정말 진짜 강아지처럼 굴었다. 공을 가지고 놀고 재롱도 피울 줄 알았다. 주인이 손을 달라고 하면 발을 내미는 식으로 명령을 따랐다. 아이보는 70여개 영어와 일본어 명령을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출처=소니

심지어 학습도 가능했다. 공을 가지고 놀 때 주인이 칭찬을 해주면 그 행동을 더 자주 했다. 최신 모델은 배러티 잔량이 일정 수준으로 떨어지면 충전 스테이션으로 알아서 걸어가는 ‘똑똑한’ 행동도 해냈다.

말귀를 마냥 잘 알아듣진 못했다. 특히 초기 모델은 주인의 명령을 잘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았다. 지능형 음성인식 비서가 종종 동문서답을 하는 것처럼 아이보는 엉뚱한 행동을 해버렸다. 오히려 이런 ‘오작동’ 덕분에 진짜 강아지처럼 느껴진다는 뜻밖의 반응도 존재했다.

아이보는 확장성을 지닌 플랫폼이다. 전용 소프트웨어 ‘아이보웨어’를 이용해 새로운 동작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동작은 물론 음성까지도 편집 가능하다. 아이보가 실제 우리집 강아지와 똑같은 울음소리에, 행동 패턴을 갖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갑작스런 단종과 합동 장례식

아이보는 탄생했을 때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관심은 제품 판매로 이어졌다. 초판 물량인 3000대가 판매 시작 20분 만에 동났다. 출시 후 반년 동안 4만5000대까지를 팔아치웠다. 판매가 중단될 때까지 총 15만대가량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소니 아이보 사업부 전체 매출은 7년간 약 3000억원 수준이라는 후문이다.

단종은 2006년 이뤄졌다. 소니가 아이보 사업부 자체를 정리해버렸다. 경영 악화에 시달리던 소니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보도 표적이 된 셈이다. 소니의 로봇 사업부는 도요타로 넘어갔다. 이후 도요타는 피리 부는 로봇이나 2족 보행 로봇 등을 개발했다.

   
▲ 출처=소니

소니가 아이보를 단종시키자 여러 진단이 따라붙었다. 기본적으로 사업성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엄청난 관심몰이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팔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15만대의 판매고를 올린 이후 판매량은 급감했다. 인공지능이 충분히 똑똑하지 않았고, 제품 고장이 잦았다는 지적도 있다. 너무 비싸다는 점도 대중화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래도 AS 서비스인 ‘아이보 클리닉’은 계속 운영했다. 2015년까지는 말이다. 소비자 가전 부문에서 비용 삭감 중인 소니는 지난해 3월에 아이보 클리닉 서비스 중단을 알렸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아이보 주인들은 치바현 이스미시 소재 사찰 고후쿠지에서 합동 장례식을 치르기도 했다. 물론 아이보를 수리해주는 사설 업체가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 참고로 현재 아이보 중고 가격은 출고가 대비 곱절로 오른 상태다.

소니, 아이보 유산 계승하기로

아이보가 처음 공개된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시간이 흐른 만큼이나 로봇 산업도 더욱 발전했다. 로봇과 함께하는 일상 모습이 더 이상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먼 미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 출처=소니

소프트뱅크로보틱스는 지난해 6월 감성 인식 휴머노이드 페퍼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1분 만에 6월 판매분으로 준비한 1000대가 매진되는 장면을 연출했다. 아이보가 떠난 자리를 페퍼가 차지하려는 모습이다. 페퍼 역시 아이보의 생애를 답습하게 될지 아직은 알 길이 없다.

한편 소니는 최근 로봇 사업에 다시 진출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지난 6월 히라이 가즈오 소니 사장은 도쿄에서 열린 경영방침 설명회에서 “마음을 연결하고 성장의 기쁨과 애정의 대상이 될 로봇을 개발하고 싶다”고 했다.

말뿐인 것은 아니다. 소니는 지난 4월 로봇 사업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5월엔 인공지능 기술을 보유한 미국 스타트업 코지타이 지분을 20%가량 인수했다. 소니가 아이보의 유산을 계승해 내놓을 새로운 로봇은 어떤 모습일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조재성 기자  |  jojae@econovill.com  |  승인 2016.09.22  07: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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