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디즈니 크루즈

초저출산 국가에서 노동력 빈곤 국가로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데 이렇다 할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아빠 육아가 해답’이라는 미봉책까지 나온다. 아빠가 육아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남자도 가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이야기는 전혀 새롭지 않은 화제인 데다가 자칫 탁상공론에 그치기 쉽다. 제도적인 장치보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인 아빠들의 마음이고, 그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일단 정부가 내놓은 처방은 이렇다. 내년 7월부터 직장에 다니는 남성이 둘째를 낳고 육아 휴직에 들어가면 석 달 치 급여를 최대 월 20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 점점 더 많은 아빠들이 육아 휴직을 선언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남성 육아 휴직자는 2013년 1790명, 2014년 3421명, 2015년 4872명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전체 육아 휴직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5.6%로 여전히 저조한 수준이다. 이는 남성들이 육아 휴직을 망설이는 이유가 경제적 문제만은 아님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아빠들의 육아 휴직이 보편화되어 있는 유럽에서는 일하는 아내를 대신해 수개월간 홈파파 생활을 하는 아빠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빠들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만한 물리적인 여유를 갖기가 쉽지 않다. 그러고 보면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이 태어났을 당시 내 신분은 프리랜서고 개인사업자였다. 바꿔 말하면 회사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 덕에 출산 휴가를 마치고 직장에 복귀한 아내보다 긴 시간, 세심하게 아이를 살필 수 있었다. 가사가 그렇듯 육아도 의외로 체질에 맞았다. 급기야 아빠의 신분으로 육아 일기를 쓰고 잡지에 연재한 것도 모자라 책으로 묶어 펴내기까지 냈다. 역시 내가 좋아서, 내가 원해서 할 때 결과도 좋다.

평소 아빠가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엄마보다 적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실제 아이가 태어난 이후 적극적인 자세로 육아에 참여했다.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 아이 키우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잠시 취업을 미루고 자진해서 홈파파가 되었다. 집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1~2년 정도는 아기와 함께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한 건데 지금 돌이켜보면 꽤 과감한 판단이었다. 물론 같이 사는 어머니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덕분에 아내는 제때 직장에 복귀해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당시 하라는 취업은 하지 않고 육아에 정성을 쏟는 나를 의아하게 보기보다는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훨씬 더 많았다. 야근에 주말 근무까지 불사하는 마당에 ‘육아 휴직’의 ‘육’자도 꺼내기 힘든 친구들이었으리라.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나의 경우, 집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다시 취업을 할 수도 있는 직업적 특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뭉뚱그려서 ‘아빠 육아가 해답’이니 하는 표현을 쓰는 것은 그리 적절하지 않다.

직장에 다니는 아빠들은 상상하기 힘든, 홈파파만의 가장 큰 행복은 평일에 아이와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일이다. 어디 그뿐인가. 엄마가 금기시하는 피자와 아이스크림도 몰래 사주고, 아이와 나의 공통 관심사인 자동차의 원리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주기도 한다. 함께 보고 싶은 영화를 위해 주말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하고 이따금 아이에게서 날 닮은 구석을 발견할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아이가 아빠를 슈퍼맨 보듯이 봐줄 때의 황송함, 엄마보다 아빠인 내가 우는 아이를 더 잘 달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짜릿함은 또 어떻고? 아빠가 된 후 여건이 된다면 약간의 기회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아이가 어릴 때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는 것이 아이는 물론 아빠 자신에게도 좋다. 육아 자체가 힘들긴 하지만, 아이와의 시간을 통해 얻는 것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아이와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될 뿐만 아니라 아이가 처음으로 뒤집고, 앉고, 걷고, 말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물론 과욕에는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여건이 허락하는 선에서 일을 줄이고 3세 이전의 중요한 성장 시기에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엄마와 비슷한 수준으로 늘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가사에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던 아빠들은 육아에도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시켜서 하는 건 누구나 하기 싫다. 애나 어른이나 똑같다. 하물며 ‘남의 편’이라는 남편은 오죽할까? 이렇게 비교해볼 수도 있다. ‘아빠! 어디가?’부터 ‘아버지와 나’까지 아빠 육아를 콘셉트로 한 예능 프로그램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 ‘나도 하고 싶다’에서 ‘나도 한 번 해볼까’까지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저출산의 책임을 육아에 참여하지 않은 아빠 탓으로 돌리는 정부의 발표는 (애석하게도) 그 효과가 미비하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아빠들의 마음을 돌리는 게 좋을까? 답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