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간 정부 경제정책의 실패를 너무나 많이 목격해왔다.

대한민국 정부가 유독 전략을 못 짰다기 보다는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정보혁명 시대에는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정책은 숙명적으로 항상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 제조업 시대에는 5개년 정책을 정하면 5년 동안 그 타겟을 향해 전국민이 일사분란하게 달려가면 되었다. 지난 반세기 한국경제는 정책적 드라이브로 리딩하며 나름의 성과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지난 성공의 관성은 오늘날 우리의 변화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

정보혁명의 성숙단계로 진입하는 지금 시대는 제조업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제조업 시대에는 5개년 정책을 정하면 5년동안 그 타겟을 향해 일사분란하게 달려가면 되었다. 정보혁명 시대의 타겟은 시시각각 큰 폭으로 움직인다.

움직이는 타겟(Moving target)을 겨냥하려면 속도와 유연성이 필수적인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 대한민국의 시스템은 도저히 시대적 트렌드에 부합하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 애초에 제조업에 최적화된 시스템 자체는 현 시대에 뒷북만 울릴 신세인 것이다.

움직이는 타겟을 겨냥하려면 거대한 조류를 읽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동향에도 실시간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핵심은 위험부담(risk taking)을 할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정부의 시스템은 위험전가의 무한루프이지 위험을 부담하면서 미래를 전망하고 국가의 경제전략을 제시할 주체가 없다. 아니,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도 필요 없다. 자꾸 템포 엇갈리는 목소리를 정부에서 강력하게 내다보니 민간의 창조력마저도 억눌리거나 망가지고(spoil) 있다. 그때마다 진정한 창조를 만들어낼 청년창업가들은 길을 잃고 방황한다. 갑갑함에 대한민국을 떠나려 한다. 미래는 암울해진다. 이것이 작금에 이뤄지고 있는 악순환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이제 정부는 산업적 전략 수립의 역할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산업부, 미래부의 역할 중 중점육성 산업을 고민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대대적으로 축소하고 그만큼의 예산을 복지로 돌려야 한다.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 어설픈 보조금, 지원정책은 대학교수님이나 보조금 장사하는 짝퉁 창업가에게 흘러갈 뿐 우리의 미래를 위한 창조와는 큰 연관이 없다는 것을. 수십억 예산 증발한 4대강 로봇물고기는 창피하고 대표적 사례다.

"청년창업 육성의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청년들에게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여유를 주는것이다. 우리네 청년들에게 희망은 사치가 된지 오래다.

공무원 시험준비와 스펙쌓기에 올인하는 청년을 바라보면서 제조업시대를 살아온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패기가 없고 나약하다”고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 청년들의 문제가 아니다.

2%대 성장의 시대, 취직도 결혼도 포기할 수 밖에 없고, 영원히 일해도 집하나 장만할 수 없을 것 같은 희망 없는 현실은 대한민국의 구조적이고 시스템적인 문제이고, 이를 해결해야 할 주체는 청년이 아니라 오히려 기성세대의 몫인 것이다.

교육, 의료, 주거, 육아에 대한 답이 없는 청년들에게 인류를 깜짝 놀라게할 창조와 혁신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기대 아닐까? 사회적 안전판인 복지를 강화해주어야 성공확률 낮은 위험천만한 시도를 마음 놓고 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불거지는 어린이집 아동학대의 문제 또한 시스템의 문제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애초 보육교사의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고된 강도로 내모는 시스템의 문제인 것이다. 보육교사 1인당 아동수를 20명대(만3세는 18명, 만 4세 이상은 23명까지 정원 편성 가능)로 허용하는 정책은 이미 정상적인 돌봄이 이뤄질 수 없는 여건을 예견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복지는 시스템적인 문제를 한다발 안고 있고, 이런 문제의 결과물은 청년들이 짊어지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을 박차고 나오는 청년 창업가들은 정말 다양한 위기에 봉착한다. 그 중 압권은 민간 금융기관뿐 아니라 정부기관이 제공해주는 창업지원자금에도 훈장처럼 달려있는 연대보증 조건인데, 회사가 망하면 자신도 연대보증의 굴레에 빠지고 신용불량자가 되어 재기를 위해 수년의 청춘을 허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청년창업가에서 한 순간에 청년신불자로 전락할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도전정신이 없다고 탓하기엔 현실이 너무나 무섭다.

청년들의 도전은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청년들의 실패는 소중한 경험과 성숙을 위한 단련이란 측면에서 우리 사회에 무형자산으로 자리잡는다. 순수하게 사회적 비용인 정부 정책의 실패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실패할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청년이어야 하는 것이다. 청년의 도전과 실패는 당연한 귀결일 수 있으므로 실패를 탓하고 짐을 지울 것이 아니라 합리적 기준을 통해 부담을 사회가 함께 질 시스템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실리콘벨리의 도전정신이 우리네 청년들에게 없다고 푸념할 것이 아니라 도전을 위한 안전망을 제공해주어야 혁신적 아이디어를 품은 청년들이 우후죽순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 왜 마크주커버그, 일론머스크가 없을까 한탄하지 말고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빈번하게 헛다리를 짚어왔고, 실패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와 안정망을 제공해주고 있는가를 돌아보면 답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