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서울 종로 한복판에 100년된 음식점이 있다는 것은 시민의 입장에서 매우 뿌듯한 일이다. 종로 바닥을 휩쓸던 김두한씨가 멋지게 정장을 입고 찾아왔던 이곳.
바로 이문설렁탕집이다.

긴 장마로 오랜만에 든 햇빛이 이젠 낯설기까지 하다. 눈부시도록 내리쬐는 햇볕을 맞으며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종로 핏자헛 골목에 진입, 오랜 맛집들이 연이어 보인다. 맥도널드 주차장 뒷편으로 가니 지난 4월 이전한 이문설렁탕의 새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902년 개업해 3대에 걸쳐 100년 넘게 영업 중인 서울시 요식업 허가 1호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음식점인 이문설렁탕. 유원석 여사에 이어 지금은 그 자제인 전성호 사장(66)이 운영하고 있다. 취재 전부터 안타까움을 부른 것은 100년 넘게 이어온 운치있는 목조식 건물이 종로 일대 재개발로 인해 철거를 눈 앞에 두고 있다는 것.

재개발로 인해 이전했다는 플래카드가 붙여진 100년 넘은 역사의 가옥을 보고있노라니 새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옛것을 다 허물어뜨리면 과연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전통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안타까움이 몰려온다.

이문설렁탕의 12시 점심시간. 그야말로 전쟁이다. 미어터지는 사람들로 설렁탕을 정신없이 주문을 받는 매니저 및 주방 사람들을 보니 말조차 걸기 힘든 분위기다. 잠시 한숨을 돌리고 손님들을 바라본다. 룸을 포함해 약 136개의 좌석에 빼곡히 들어있는 손님들. 50% 이상은 할머니 할아버지다. 나머지는 주변의 회사원들과 가족들.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행색이 요란한 일본인 젊은 친구들. 나중에 알고보니 일본의 젊은 친구들도 블로그를 통해 이곳을 찾아왔다고 한다.

100년이 넘는 오랜 전통을 갖고있다보니 이곳을 찾은 손님들도 쟁쟁하다.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 문인 최남선과 이광수, 종로의 협객 김두한 등 이곳에서 조용히 설렁탕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고 돌아간 손님들만 하더라도 근현대사의 역사를 기록한 인물들이라 왠지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듯한 기분에 빠진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100년 된 그 건물에서 먹었으면 더 기분이 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두며 한창 맛있게 설렁탕 한 그릇을 비우고 있는 가족에게 말을 걸었다. 용인에서 이곳을 찾았다는 김미라(62) 할머니와 아들 내외가 조용히 설렁탕을 먹고 있었다. 할머니는 이 곳을 찾은 지 벌써 40년이 되어간다고 한다.

20대 처녀시절부터 이곳을 찾았다는 그녀는 아들과 며느리도 결혼하기 10년 전인 연애 초기부터 이곳에 데려와 정을 쌓았다며 웃는다. 국물이 개운해서 자꾸 찾게 된다는 김 할머니는 특히 겉절이 김치맛이 시원해서 그 맛에 자꾸 이곳을 찾게 된다고.

이문설렁탕집의 설렁탕 맛은 호불호가 분명하게 나뉜다. 이유는 기름기를 쫙 뺀 국물 맛 때문이다. 마치 평양냉면같이 기름기의 고소함보다는 담백함쪽에 가까운데 기름기를 쫙 빼다보니 국물이 맹맹하다는 의견이 있다.

설렁탕은 과거 서민들이 즐겨먹던 음식이라 적은 재료를 갖고 물을 많이 부어 끓이므로 곰탕에 비해 기름기는 적고 맛이 묽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이곳의 살림을 맡고 있는 황영상(49) 매니저는 “물론 서민음식의 대표격으로 설렁탕이 손꼽히지만 일부러 고기에 비해 물을 많이 넣고 끓여 맹맹한 것이 아니라 담백한 맛을 주기 위해 따로 기름을 빼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주변 재개발로 인해 곧 철거예정인 100년 전통의 이문설렁탕 옛집.[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그는 덧붙여 “사실 주방 사람들이 가장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 설렁탕 같은 국물로 맛을 내는 탕 요리” 라고 한다. 다른 음식은 조미료, 양념 등을 더해 맛을 내지만 설렁탕 같이 사골을 우려내 맛을 내는 요리는 끓인 시간이나 화력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고기 자체의 맛을 내야 하는 아주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 이곳은 소뼈와 고기, 머리고기, 내장 등 여러가지 부위를 넣고 18시간 이상 고아서 우려낸 국물을 제공한다.

설렁탕이 서민요리다 보니 한우 사골로만 끓이고 싶지만 단가가 높아지기 때문에 호주산 고기를 쓴다는 그는 그래도 옛날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특히 이문설렁탕집처럼 한우의 비장인 지라를 쓰는 곳은 많지 않다고 말을 한다. 혈액의 성분을 걸러주는 지라 역시 개인의 호불호가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고소하고 담백했다.

직접 설렁탕 맛을 봤을 때 첫 느낌은 뭐라 할까. 마치 담백하고 고소한 숭늉맛 같다 할까? 기름기를 많이 빼다보니 슝늉처럼 느껴질 정도로 묽은 느낌도 들었는데 싫지 않았다. 깔끔하게 목으로 넘어가는 국물의 느낌이 매우 개운하다. 뒤이어 이어지는 구수한 국물의 향은 더더욱 맛을 돋웠고 특히 국물이 충분한 겉절이 김치와 깍두기 국물은 자칫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설렁탕의 맛을 한층 맛깔스럽게 했다.

개인적으로 몸이 허하다 느껴질 때마다 찾는 음식이 설렁탕이다. 최근 더위 때문에 몸이 허하다는 느낌을 받아선지 왠지 이곳에100년의 오랜 기운을 받아온 듯한 기분을 맛본다. 그건 아마 오랜 시간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지 모른다.
위치 : 종각역 피자헛 골목으로 직진, 맥도널드 주차장
문의 : 02-733-6526

최원영 기자 uni354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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