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최일선에 등장했다.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와병중인 가운데 2년 동안 거대 기업 삼성을 훌륭하게 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12일 등기이사로 선임되어 이재용 체제의 진짜 서막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회장직 승진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부회장은 10월 임시주주총회에서 이사로 선임되면 당일부터 등기이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 출처=삼성전자

2014년 5월부터 시작되다

이 회장의 갑작스런 와병 후 사실상 삼성의 선장을 맡게 된 이재용 부회장은 소탈함과 실사구시에 입각한 경영방식으로 재계에 신선함을 안겼다는 평가다. 전세기를 사용하지 않고 필요이상의 의전을 없애는 등 경영 일반에 나름의 변신을 이끌었다. 이는 '자신의 눈으로 현장에서 보고 느끼겠다'는 의미다.

지난 3월 발표된 스타트업 삼성이 극적이다. 조직문화의 변화를 바탕으로 현장을 중요시하는 이재용 부회장의 의중이 적절하게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7월 임직원들의 집단지성 플랫폼인 모자이크(MOSAIC)에서 벌어진 온라인 대토론회를 통해 1200건의 제안과 댓글을 모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삼성을 위한 각자의 의견을 모았다. 삼성 특유의 강한 ‘승부근성(Winning Spirit)’을 살리자는 의지다.

여기에 수평적 문화구축, 직급 단순화, 수평적 호칭, 선발형 승격, 성과형 보상의 4가지 방향을 골자로 하는 글로벌 인사혁신 로드맵을 수립했으며 '관리의 삼성'을 벗어나 유연하고 빠른 움직임을 중심에 두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과 이재용 부회장의 스타트업 삼성은 닮았으면서도 분명 다르다. 먼저 선포식 현장에 이재용 부회장이 보이지 않았다는 대목이 흥미를 끈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주요 임직원들을 프랑크푸르트로 불러 이 회장 중심의 회의를 주재하는 방식으로 시작됐다면, 이재용 부회장의 스타트업 삼성은 철저하게 임직원 중심이다. 큰 그림의 주도권을 부여하는 방식이 다르다.

▲ 출처=삼성전자

조직개편에서도 이재용 부회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지난해 12월 삼성전자 전장사업팀 신설하는 한편 주력 사업인 VD사업부에 ‘AV사업팀’을 신설하고 무선사업부에도 ‘Mobile Enhancing팀’을 설치했으며 지원조직의 효율화를 기치로 현장자원의 경쟁력 집중을 꾀하기도 했다. 글로벌마케팅실을 글로벌마케팅센터로 축소하고 경영지원실을 기획팀·재경팀·지원팀·인사팀 산하 조직으로 축소했다. 현장을 강조하는 실사구시형 경영의 단면이다.

선택과 집중도 이재용 부회장을 설명하는 전매특허다. 방산 및 화학분야를 과감하게 분리해 ‘가장 잘 하는 것’에 집중한 대목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12일 이사회를 통해 구체적 안건으로 결의된 프린팅 사업부 매각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이사회에서 프린팅솔루션 사업을 미국 HPI에, 사업부문 일체를 포괄양도하는 방식으로 매각하기로 결의했다.

바이오 사업 진출도 비슷한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해 12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천송도경제자유구역에 위치한 본사에서 글로벌 1위 바이오 의약품 생산기업(CMO)을 노리는 제3공장의 기공식을 열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 제품을 수주받아 생산하는 회사며 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 시밀러를 연구하거나 개발 및 판매하는 회사다. 바이오로직스는 삼성물산의 자회사며 바이오에피스는 손자회사다. 이 지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바이오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열망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사업의 큰 그림을 그리겠다고 천명했다.

경영적 측면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승부수라고 보는 분석도 있다. 이는 반도체를 핵심으로 삼아 도약했던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승부수와 닮았다. 삼성전자가 1983년 64K D램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이후 1992년 글로벌 D램 시장 석권, 2002년 낸드플래시 시장 장악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반도체 시장의 가능성에 주목했던 이건희 회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의 승부수가 반도체라면, 이재용 부회장의 승부수는 바이오라는 해석이다. 이는 성과를 내야 하는 콘트롤 타워의 숙명과 그 궤를 함께 한다.

경기도 평택에 세계 최대 반도체 라인 기공에 나선 대목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경기도 평택에 15조6000억원을 들여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에 착수했으며 이는 단일 반도체 생산라인으로 사상 최대다. 현재 삼성전자는 이미 화성 반도체 공장 16라인 일부를 낸드 생산용으로 전환한 상태다. 올해 연말 3D 낸드플래시 라인이가동될 전망이다.

글로벌 경영도 빠르게 진행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애플의 팀 쿡 CEO와 마이크로소프트 사티아 나델라 CEO를 연이어 만나 특허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를 마련했으며,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와 연이어 회동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하기도 했다. 오라클과의 협력도 비슷한 연장선상이다. 최근에는 이탈리아의 자동차 제조 기업인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의 지주회사인 엑소르 사외이사 자격으로 유럽을 찾기도 했다.

경영승계 공식화...삼성, 시동 걸었다

2년전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면에 나서자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는 차근차근 진행된 분위기다. 지난해 5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된 지점이 단적인 사례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1982년 5월 동방사회복지재단으로 설립되어 1991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됐으며 저소득층 가정을 위한 지원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과 삼성노블카운티를 운영하고 있으며 삼성생명이 재단 운영 자금을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장은 삼성생명의 최대주주인 이건희 회장이 맡아왔다.

삼성문화재단도 호암미술관, 플라토 등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생명공익재단과 마찬가지로 최근까지 이건희 회장이 이사장을 맡아왔다. 이 지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맡았던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된 것은 결국 그룹 경영승계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메르스 사태 당시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서울병원에서 환자 관리의 책임을 두고 대국민 사과를 한 지점도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일선 등장을 의미한다는 시각도 있다.

결론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2년 동안 무난하게 삼성을 끌어오고 있었으며, 더욱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실험에도 성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삼성전자는 사상 초유의 갤럭시노트7 폭발 논란에 휘말리며 휘청이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은 결국 ‘어려운 시기, 위기를 정면돌파하고 경영승계를 공식화 한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등기이사로 선임된다는 것은 곧 책임경영을 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등기이사, 이사회 의장에 이름을 올린 최태원 SK회장과 LG전자 이사회 의장, LG화학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린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의 행보가 나름 의미있는 이유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이번 이사회결정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보여줄 진짜 미래를 마주하게 됐다.

한편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에 대해 “급변하는 IT산업환경 속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 중장기 성장동력 확보 등 장기적 안목을 바탕으로 한 전략적 의사결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 지고 있다”며 “이재용 부회장이 이사회 일원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맡을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해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추천을 추진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사회는 “이재용 부회장이 COO(최고운영책임자)로서 수년간 경험을 쌓았으며 이건희 회장 와병 2년동안 경영자로서의 역량과 자질을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앞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이사에 선임되면 삼성전자 이사회의 구성원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