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발화논란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지난달 말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갤럭시노트7 폭발 이슈는 최초 '해프닝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으나 단시간에 동시다발적 폭발 현상이 감지되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이후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한 삼성전자는 통신사 공급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바탕으로 9월 2일 전격적인 리콜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리콜과 동시에 판매중단 조치가 내려진 갤럭시노트7은 하반기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기대주에서 단숨에 최악의 스마트폰으로 낙인이 찍히고 있다. 그 과정에서 LG전자의 V20과 애플의 아이폰7이 전격적으로 발표되는 한편, 미국 정부기구가 기기 폭발 논란에 휘말린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를 두고 “전원을 끄고 사용하지 말아라”며 사실상 사용 중단 권고에 나서기도 했다. 국내 국토교통부도 비슷한 권고를 내리기도 했으며 세계 주요 항공사는 갤럭시노트7 기내 반입을 금지하기도 했다.

▲ 출처=뽐뿌

갤럭시노트7, 천국에서 지옥으로
시장조사기관 애틀러스리서치앤컨설팅에 따르면 8월 4주(8월 18일~24일) 오프라인 기준 스마트폰 주간 판매량은 48만1000대로 집계되어 전주와 비교해 15만6000대가 늘었다. 통신사의 직판을 제외한 대리점을 통한 개통물량만을 집계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판매량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중심에는 갤럭시노트7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갤럭시노트7 판매는 전체 스마트폰 판매량의 47.2%(SK텔레콤 21.8%, LG유플러스 12.9%, KT 12.5%)에 달하는 22만7000대로 집계되어 19주 연속 1위를 지키던 갤럭시S7을 밀어냈다.

최강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홍채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신기술과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정체성을 동시에 확보한 갤럭시노트7은 초기 공급물량도 제대로 채우지 못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업계에 따르면 갤럭시노트7의 예약물량만 40만대에 달했다.

▲ 출처=삼성전자

헬게이트(지옥문)가 열리기 시작한 것은 8월 24일 커뮤니티 사이트인 뽐뿌에 올라온 몇 장의 사진이 발단이다. A씨는 갤럭시노트7을 충전한 상태로 잠이 들었다가 기기가 스파크를 일으키는 바람에 잠에서 깼으며, 이는 갤럭시노트7을 수령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설명을 올렸다. 하지만 당시에는 '해프닝'일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기도 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제품을 수거해 그 즉시 조사하고 있으며, 적절한 보상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9월 1일 갤럭시노트7 공급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업계는 당혹감에 휘말렸다. 해프닝으로 보기에는 국내외에서 벌어진 갤럭시노트7 폭발 사례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임원진 및 실무진들이 구미공장에 내려가 원인을 규명하기 시작했으며 리콜을 포함한 다양한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이 고개를 들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으며, 고심을 거듭하는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국내는 물론 북미 시장 공급도 중단됐으며, 예정되었던 유럽 시장 출시도 잠정 연기된 사실이 알려진 것도 이 즈음이다.

그리고 9월 2일, 삼성전자는 일각의 예상보다 빨리 태평로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불거진 갤럭시노트7 발화에 대한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고동진 무선사업부 부장(사장)은 기자회견에서 “갤럭시노트7을 아껴준 많은 사람들에게 죄송하다”며 “일부 제품에서 배터리 문제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나아가 “염려를 끼치게 되어 대단히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더불어 “지난 1일 기준으로 국내외 총 35건이 서비스센터를 통해 접수되었으며 100만대 중 24대가 불량인 수준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시장에 풀린 250만대 수준의 갤럭시노트7을 전면적으로 리콜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후로는 전격전이다. 삼성전자는 주말에도 서비스 센터를 가동해 갤럭시노트7 리콜 수순에 돌입했으며 통신사와 협력해 보상정책도 내놨다.

당시만해도 삼성전자의 위기관리 능력은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였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갤럭시노트7의 브랜드 효과를 무난하게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기도 했다. 하지만 9일(현지시각) 미국 정부기구가 나서 갤럭시노트7을 '사용하지 마라'고 권고하며 상황은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다.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는 성명을 발표해 갤럭시노트7 내부의 리튬이온 배터리가 과열되어 폭발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관련 안전사고를 자신들의 홈페이지로 신고하라고 당부했다. 삼성전자 미주법인 삼성일렉트로닉스아메리카(SEA)도 즉시 성명을 발표, 갤럭시노트7 이용자들에게 전원을 끄고 사용을 중지하라고 요청했다. 미국 언론을 통해 갤럭시노트7 폭발로 창고와 차량이 전소된 사실이 보도될 무렵이다.

국내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다.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을 사용하는 국내 소비자에게도 그 즉시 사용을 중지하고 가까운 삼성 서비스 센터를 방문해 필요한 조치를 받으라고 삼성전자 뉴스룸을 통해 권고했다. 현재 서비스 센터와 매장에서 대여폰을 제공하고 있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도 "갤럭시노트7 전원을 끄라"고 권고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에서 출시된 갤럭시노트7에 들어간 ATL의 배터리가 문제가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교환 전량을 ATL에서 받은 배터리를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홍콩 케세이퍼시픽항공 등 세계 주요 항공사는 갤럭시노트7 기내 이용을 아예 금지하고 나섰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갤럭시노트7, 조롱거리로?
갤럭시노트7 폭발 논란이 거세지자 마치 기다렸다는듯 '조롱'이 쏟아지고 있다. 테러리스트 스마트폰이라는 설명과 함께 아랍 테러리스트와 갤럭시노트7을 합성한 인종차별주의적 이미지가 떠도는가 하면 일본의 인기만화 '데스노트'에서 모티브를 따 갤럭시노트7을 '데스노트7'으로 부르기도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갤럭시노트7을 탑재한 오큘러스 기기를 사용하는 사진에는 '삼성전자의 천조국 대장 암살 미수'라는 설명이 붙었으며 강력한 방수기능을 자랑하는 갤럭시노트7에 대해서는 '폭발할까봐 방수기능을 넣은 것'이라는 조롱이 이어졌다. 심지어 선택탑재된 정부3.0앱에 책임을 돌리며 '종북주의자가 갤럭시노트7을 사용하면 정부가 폭발시키는 것'이라는 허황된 음모론도 판친다. 지난해 삼성전자에 합류해 삼성전자 모바일AP인 엑시노스 개발에 나섰던 짐 켈러 AMD 부사장 겸 최고 설계자가 애플의 칩 설계에도 관여했다는 점을 말하며 "애플의 음모"라는 어이없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두터운 방호복을 입은 군인이 로봇과 함께 갤럭시노트7을 분해하는 장면과 갤럭시노트7을 폭탄으로 합성한 게임짤, "전화가 펑 터질 것만 같아"라는 가사를 노래하는 걸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가 최근 삼성전자와 특허분쟁을 벌이고 있는 화웨이 스마트폰 모델이었다는 점과 연결한 '음모소설'도 넘실거린다.

대부분 악질적인 장난이며, 일고의 가치가 없는 패러디지만 그 내면에는 갤럭시노트7에 대한 조롱을 넘어 분노의 감정이 넘실거린다는 말이 나온다.

▲ 출처=게임 스크린 샷

"말려들고 있다"
갤럭시노트7 논란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이를 사이에 둔 각자의 '복마전'도 치열하게 벌어져 눈길을 끈다. 갤럭시노트7을 중심으로 특정 의도를 가진 몇몇 진영의 수 싸움이 거세게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먼저 삼성전자의 경우 최초 논란 이후 리콜 선언에 이르기까지 '전격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정도로 빠르고 적절한 대응을 보여줬지만 그 자체가 '찬사를 받을 일인가?'라는 의문도 고개를 든다. 1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피해를 무릅쓰고 배터리 교환과 같은 소극적 대응이 아닌 기기 교체라는 초강수를 발표해 고무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으나 '당연히 해야할 책무'라는 지적도 만만치않다. 이러한 주장은 '여론전이 과하다'는 논리와 연결되기도 한다.

갤럭시노트7 점검을 받기 위해 서비스 센터로 직접 가야하는 불편도 삼성전자가 감내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리콜 자체에 대한 비판도 있다. 사태가 심각한 만큼 정부 차원의 대응이 이뤄져야 하지만 삼성전자가 다소 소극적으로 임했다는 말도 나온다. 국가기술표준원에 제출한 보고서의 내용이 부실하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현재 국가기술표준원은 지난 9일 제품 수거 등에 삼성전자의 리콜 계획서를 제출받았으며, 해당 계획서에는 기자회견 당시 알려진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소비자 잡지 컨슈머리포트가 3일(현지시각) "갤럭시노트7 리콜이 공식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고 주장한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CPSC를 거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리콜이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CPSC가 9일(현지시각) 별도의 성명을 발표하고 삼성전자 미주법인 삼성일렉트로닉스아메리카(SEA)도 나서며 수면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대목이다.

이러한 지적은 리콜 사태를 두고 삼성전자가 '통 큰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반드시 해야할 일을 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에 배경을 둔다. 물론 삼성전자가 의도적으로 이러한 여론전을 펼친 증거는 전혀 없다. 삼성전자가 사태해결에 있어 무조건적인 투명함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이러한 주장은 아이폰7와의 맞대결을 피하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갤럭시노트7을 무리하게 출시했다는 비판과 연결되기도 한다.

갤럭시노트7 논란을 계기로 미국을 중심으로 강력한 '견제'가 감지되는 지점도 짚어야 한다. 업계에서는 CPSC의 성명과 전날 알려진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권고를 예의주시하고있다. 당연한 주장이지만 그 이면에는 강력한 보호 무역주의 기조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대선정국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노골적인 보호 무역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클린턴은 부자증세, 트럼프는 부자감세를 외치며 두 후보는 모든 현안에 있어 전방위적으로 충돌하고 있으나 보호 무역주의에서는 절묘한 합창을 보여주고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반대에 두 후보 모두 지지를 보내는 장면이 극적이다. 개방적인 통상정책이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블루칼라 노동자의 표심을 얻기 위해서다.

특히 트럼프 후보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두고 "깨진 협정"이라며 날을 세우고 있으며 아예 공화당은 자유무역협정이 적절하게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지 못하는 경우 거부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정강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힐러리 후보도 비슷하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는 트럼프 후보와 달리 이미 발효된 협정은 지지한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의 일자리와 임금 인상에 도움이 될 경우에만 새로운 무역협정을 승인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최근 한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묘한 여운을 남긴 한미 세탁기 반덤핑 분쟁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삼성과 LG가 미국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아 세탁기를 할인해 판매하자 불거진 본 분쟁에서 미국은 반덤핑 제재 및 표적덤핑까지 불사했다. 표적덤핑은 물량이 아닌 특정 시기와 지역에서 판매된 물량에 덤핑 마진을 산정하고 제로잉은 수출 기업이 의도적으로 내수가격보다 높게 수출해도 이를 0으로 계산하는 방식이다. 주로 반덤핑 관세를 올릴 때 사용되는 수법이다.

다행히 지난 3월 WTO 소위원회는 한국의 손을 들어주었고 9월 8일 분쟁 상소심 최종 판정을 통해 한국이 웃었으나 이는 미국의 강해지는 보호 무역주의를 암시하는 극적인 장치로 여겨진다.

다시 갤럭시노트7 분쟁으로 돌아오면, 현재 애플이 아이폰7까지 출시했다는 점도 짚어야 한다. 결국 미국 정부의 갤럭시노트7 때리기는 주권 국가의 당연한 정책으로 풀이되지만 그 이면에는 보호 무역주의 기조에 따라 '갤럭시노트7 때리기'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회자되는 것이 2006년 소니 배터리 사태와 2009년 도요타 급발진 리콜이다. 당시 소니는 델에서 제공받은 배터리를 탑재한 노트북이 폭발해 960만대 이상의 물량을 리콜했으며 결국 리튬이온 배터리 분야의 선두에서 내려와 올해 7월 사업부를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도요타는 급발진 논란에 휘말려 900만대 이상의 리콜을 단행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도요타 아키오 사장이 미국 의회 청문회에 불려가 사과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다양한 시나리오가 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 가장 고무적인 시나리오는 리콜을 빠르게 추진하고 판매 재개에 나서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로드맵이다. 리콜로 확보된 물량을 리퍼폰 등으로 돌리는 일에 세밀한 핸들링으로 일관하며 하반기 갤럭시노트7 브랜드 가치를 되살리면 더할 나위가 없다.

문제는 갤럭시노트7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최악의 상황이 닥칠 경우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부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은 일단 낮지만 그 이상의 충격파도 분명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만약 그 충격파가 브랜드 가치라는 무형의 인프라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삼성전자 전반의 경쟁력도 급격히 휘청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