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대 말, 일본의 실력자 오다 노부나가가 열을 올린 것은 다구(茶具) 수집이었다. 시골 영주에서 시작해 강자들을 제거하며 일본 최고의 실력자가 된 노부나가는 ‘시골 출신 괴짜’라는 주변의 규정에 늘 콤플렉스를 느꼈다. 그래서 그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로 예술을 활용했다. 그림에서는 가노 에이토쿠, 다도에서는 센노 리큐, 정원 건축에서는 코보리 엔슈 같은 명장(名匠)들이 활동했다.

그런데 이토록 노부나가가 열심히 예술 투자에 열을 올린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자신의 ‘전략적 정체성’을 표방할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문화는 일종의 상징이자 언어다. 말 이외의 표현으로 자신의 사상 그리고 행동 양식을 매우 적절하게 표방할 수 있는 전략적 도구다. 노부나가는 자신이 통일한 일본을 말 위에서 다스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절절히 깨닫고 옛날 일본을 지배했던 문신 귀족을 본받았다. 물론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노부나가의 문화적 학습과 예술 투자 기풍은 ‘아즈치 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라는 전성기를 일궈냈다. 역사 속에서 하나의 ‘시대’로 규정된다는 것은 엄청난 업적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노부나가는 문화를 하나의 전략으로 삼았다. 그리고 자신의 목표에 부합할 수 있는 예술가들과 꾸준한 교류를 통해 생태계를 발전시켰다.

이따금 필자는 ‘펀드레이저를 연결해 주면 좋겠다’, ‘기업들이 예술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역으로 질문하게 되는 대목이 있다. ‘당신들에게 후원 또는 투자를 하면서 기업이 얻는 것이 무엇인가?’ 의외로 수많은 예술단체들이 간과하는 이슈이기도 하다.

자신이 갖고 있는 문화적 상품 가치와 철학에 심취한 나머지 그들을 도와줌으로써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자원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 놓고는 홍보팀이나 총무팀 담당자에게 매몰찬 ‘거절’ 내지는 ‘예산 삭감’을 당하고 돌아와 하는 이야기가 ‘역시 우리 기업들은 문화 마인드가 떨어진다’는 푸념이다. 공공기관에 가면 더하다. 대부분의 정부 지원금은 출연금이 아니라 국고보조금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특정 시점에 맞춰 제안서와 기획서를 바탕으로 신청하지 않으면 거절당하는 게 당연하다. 어떻게든 ‘당신들과 우리는 목표가 맞다’고 설득하는 자세가 없이는 10원 한 장 얻기 어려운 게 외부 지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기업이나 정부 조직들의 두뇌 회로는 매우 단순하다. 회사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 같으면 투자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하는 것뿐이다. 문화기획자 내지는 단체 운영자가 이 기조를 넘어서서 ‘좀 더 고차원적인 판단을 위해 사회공헌 차원에서 작품을 사라’ 내지는 ‘훌륭한 오케스트라를 후원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서로 목적이 다르고, 가진 철학이 다른 상태에서 싱크를 맞추려는 노력이 없다면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

이제는 문화 투자에도 전략 개념이 필요하다. 작품이 갖고 있는 속성, 단체가 지니고 있는 역량이 회사의 이념이나 전략적 목표와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정밀한 분석과 테스트가 절실하다. 그리고 유·무형의 성과가 연계될 수 있는 지점을 잘 이어서 ‘그들의 언어’로 문화에 대한 투자가 합리적인 것임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이나 투자자 입장에서도 마인드 개선이 필요하다. 짧은 호흡이 아니라 긴 흐름으로 문화예술의 변화를 주목하고, 그들이 자연스럽게 창작물을 낼 수 있도록 기다려 줘야 한다. 단기 성과가 아니라 장기적인 생태계 지속성의 관점에서 문화 투자 전략에 접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