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혁신활동을 추진해온 한 기업이 최근 프로젝트를 요청해왔다. 새로운 혁신동력을 갖추기 위한 총체적 혁신 재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급속한 국내경영환경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딜레마에 빠진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이 지속해온 혁신활동체계가 오히려 고정된 틀로 작용, 혁신활동의 추진력은 약화되고 성과는 미약해져 혁신의 제도와 절차만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다.

그동안 우리나라 기업들은 과거 해외 우수기업의 혁신 성공사례를 그대로 모방하기만 해도 나름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수준의 혁신역량과 경영수준에 도달하게 되면서 해외에는 전례가 없는 고유한 문제들에 맞닥뜨리게 됐다. 한국 경영환경에 맞는 새로운 기업혁신역량이 필요해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업혁신역량이란 다른 기업에서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독창적이고 고유한 새로운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이를 경영성과로 귀결시켜 궁극적으로 ‘차별적 경쟁우위’를 갖는 역량을 뜻한다. 누군가를 배우고 모방해서는 얻을 수 없는 ‘한국형 혁신활동’말이다. 한국 고유의, 우리 기업만의 혁신활동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관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첫째, 기업의 혁신문제를 해결할 때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문제 해결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기업의 경쟁력은 각기 다른 두 개의 큰 프로세스로 구성된다. 하나는 시장의 관점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기획, 창출하고 이를 시장에 전달하는 가치사슬이라 불리는 경영프로세스다. 또 다른 하나는 기획된 제품과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프로세스다. 이 두 개의 프로세스가 얼마나 잘 융합되고 조화로운지에 따라 기업의 경쟁력이 결정된다. 경영프로세스에서는 시장의 니즈를 파악하고 새로운 제품을 기획, 설계하며 효율적인 제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여기서 해결할 과제를 ‘탐색형 과제’라 한다. 새로운 표준과 기준을 만들고 향상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제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품 기획, 연구소, 엔지니어 등 기업의 사무직 직원들이 주체가 된다. 또 다른 과제는 생산 프로세스에서 발생한다. 제품의 제조와 서비스는 표준과 기준, 매뉴얼에 따라 운영되는데 이러한 기준과 표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어긋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로 ‘발생형 과제들’이라 한다. 이 과제는 제조와 서비스를 책임지는 현장직원들에 의해 해결해야 한다. 두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들의 해결 방식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혁신기법은 지켜야 할 법전이 아니라 활용할 수 있는 도구며 이 또한 개선의 대상이다. 혁신기법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혁신을 추진하는 목적이 되면, 기업의 왕성한 혁신활동이 정체하게 된다. 정해진 절차와 방법을 기업 내에 확산시키는 것만으로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혁신의 궁극적 목적은 경쟁사와 차별화된 시장 경쟁력이다. 이러한 차별적 경쟁력은 특정한 혁신기법을 얼마나 잘 정착시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새로운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지, 경영과정과 성과에 있어서 얼마나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성과를 창출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셋째, 혁신체계를 문제해결의 절차와 성과에 대한 보상뿐 아니라 다양한 혁신 구성요소 간의 균형과 일관성이라는 전체적 관점에서의 이해가 필요하다. 구성원들이 지속적으로 과제를 도출하고 해결하는 활동은 혁신의 성공적인 모습이 아니라, 혁신을 위한 절대적 필요조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합리적인 문제해결 절차는 물론, 혁신 목표에 대한 구성원의 공감과 활동 전반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장애요인 제거, 성과에 대한 인정과 바람직한 실패에 대한 격려 등 제도와 시스템이 혁신실행력을 지지해주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혁신을 성공하지 못하는 기업은 있어도 혁신을 추구하지 않는 기업은 없다. 지구 중력을 벗어나기 위한 우주왕복선만큼이나 강한 추진력으로 기존의 혁신 관성을 벗어나자. 미래는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