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라미카 리뉴얼 프로젝트에 참여한 산업 디자이너 콘스탄틴 그리치치. 출처=라도

라도의 세라미카가 20여 년 만에 새로운 얼굴로 돌아왔다. 직선형 디자인과 하이테크 세라믹 소재가 특징인 라도의 아이코닉 워치가 콘스탄틴 그리치치(Konstantin Grcic)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 것.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인 콘스탄틴 그리치치는 모로소, 비트라, 카시나, 무지 등 시장을 선도하는 브랜드들의 가구와 조명, 액세서리 및 가정 용품을 디자인했고, 그의 많은 제품들은 황금콤파스상, IF 디자인 어워드 등 명망 있는 국제 디자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기술과 소재에 대한 열정이 높기로 유명한 그가 라도의 세라미카 리뉴얼 프로젝트를 맡게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시계전문웹진 <타임피스 서울투베이징>이 콘스탄틴 그리치치에게 이번 프로젝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직접 들어봤다.

 

당신에게 시간(또는 시계)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시간을 굉장히 의미 있게 생각한다. 시간은 규율인 동시에 감각적이고 때론 우아하기도 하다. 적절한 타이밍은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항상 이 사실을 의식하고 있다. 내 기억으론 여섯 살 때 처음으로 시계를 착용한 이후 지금까지 쭉 손목시계와 함께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계를 차고, 잠자리에 들기 전 시계를 푸는 게 일상이다.

라도는 혁신적인 소재를 잘 다루기로 유명하다. 디자이너로서 소재가 작업에 미치는 영향이 궁금하다.
소재는 디자인의 핵심 요소다. 올바른 소재 선택이 제품의 성능과 수명을 좌우한다. 때론 제품을 어떤 방법으로 제작할지 소재에 따라 결정하기도 한다. 비록 내가 소재 전문가는 아니지만 다양한 소재들에 대해 최대한 많이 이해하고자 항상 관심을 갖고 있다. 각 소재가 지닌 장점이나 제약들을 비롯해 그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더욱 효율적으로 디자인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재를 현명하고 실속 있게 사용하는 건 좋은 디자인이 탄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라도의 세라미카 리뉴얼 프로젝트에 동참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 라도 팀을 만났을 때 굉장히 긍정적인 분위기가 오고 갔다. 호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쌓인 견고한 관계는 모든 컬래버레이션 작업이 성공하기 위한 기틀이다. 모든 스위스 시계 브랜드와의 작업이 나에겐 독특한 경험이 되겠지만 라도는 고유의 하이테크 세라믹 기술을 도입했다는 점이 매우 특별하게 다가왔다. 바로 이 점에 매료되었다.

▲ 콘스탄틴 그리치치가 세라미카 리디자인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출처=라도

이번 프로젝트를 맡기 전, 라도와 관련한 추억이 있다고 들었다.
커리어를 막 시작하던 무렵, 독일 보그(Vogue)지와 함께 시계 홍보 사진 촬영을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계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보그의 아트 디렉터가 나에게 라도의 블랙 세라미카를 착용하길 권했다. 아마 보그 아카이브 어딘가에 젊은 시절의 나와 세라미카의 첫 만남을 기록한 사진이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건 그로부터 20년 후 라도에게 세라미카 리뉴얼 프로젝트를 제안받았다는 사실이다.

세라미카를 새롭게 디자인하기 위한 영감은 어디서 받았는가?
클래식한 모델을 다시 디자인한다는 것은 항상 어려운 작업이다. 디자이너로서 원본의 전통을 손상해선 안된다는 책임이 주어지기 때문. 세라미카의 오리지널 모델은 지금 봐도 매우 훌륭한 모양새다. 그 아이코닉하면서도 순수한 매력이 새로운 디자인의 영감이 되었다.

▲ 701점 한정의 세라미카 시그니처 모델. 출처=라도

새롭게 탄생한 세라미카 컬렉션 중 콘스탄틴 그리치치의 시그니처 모델이 특별한 이유는?
기존의 세라미카는 반짝이는 유광 케이스가 특징인 반면, 시그니처 모델엔 매트한 질감의 무광 케이스를 장착해 보다 파워풀한 느낌을 전한다. 파일럿 워치에서 영감을 받은 대담하고 또렷한 다이얼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 시그니처 모델의 직관적이고 명확한 디자인은 가독성을 높여줘 시간 엄수를 위한 시계의 역할을 잘 반영했다고 생각한다.

이 시계는 701점 한정이다. 이 숫자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라도는 700점의 시계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하나는 나 자신을 위해 추가한 것이다.

이번이 시계 브랜드와의 첫 번째 협업인가?
그렇다. 시계 업계, 특히 전통과 정통을 강조하는 스위스 메이드 시계는 나와 같은 외부인에게 매우 폐쇄적이다. 물론 전문가들끼리 업계 내부에서 전문 지식을 공유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자동차 업계도 비슷한 양상이다. 하지만 참신하고 공정한 마인드를 가진 디자이너에게 이러한 업계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양측 모두에게 잠재적인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도가 나에게 멋진 기회를 제공해준 셈이다.

▲ 콘스탄틴 그리치치의 세라미카 디자인 스케치. 출처=라도

세라미카 리뉴얼 프로젝트 중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가장 큰 난관은 크기였다. 손목시계는 가구나 조명 등 내가 평소 디자인하는 것들보다 훨씬 작기 때문. 시계는 의자나 다른 제품처럼 1:1 배율로 작업할 수 없고, 시계의 가장 작은 요소나 비율 등을 확인하려면 컴퓨터로 시계의 크기를 10 배까지 확대해야 했다. 알다시피 시계는 0.2mm 또는 0.25mm처럼 작은 차이가 만들어내는 디테일의 미학이다. 이러한 미묘한 차이를 식별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지만 동시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나는 오랜 시간 디자인 업계에 종사하면서 오직 손가락 두 개로 2mm, 3mm, 4mm를 측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0.05mm의 치수는 가늠하기 무척 어려웠다. 마치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기분이었다.

세라미카의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
라도 팀을 처음 만난 건 3년 전이었다. 그때부터 초기 디자인 콘셉트를 구상하는 데 4~5개월이 걸렸고, 그 뒤로는 개발에 집중했다. 시계의 모든 디테일을 매우 세밀한 단계로 검토했다. 신제품 개발에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기계식 시계의 구조가 복잡하고 섬세하다는 의미일 것. 긴 시간 동안 수많은 단계를 거쳐 마침내 새로운 세라미카를 착용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라도와 함께 일한 소감은?
라도는 매우 전문적인 영역인 시계 산업에 속해 있다. 이런 회사와 함께 일할 때 좋은 점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매우 집중적이고 전문적이다. 특히 라도에겐 독보적인 하이테크 세라믹 기술이 있다. 세라믹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최첨단 소재 중 하나다. 그리고 라도는 오랜 기간 세라믹을 가지고 작업해 왔다. 실제로 라도 시계 대부분은 금속이 아닌 하이테크 세라믹 소재다. 하이테크 세라믹 시계는 스테인리스 스틸 워치보다 가볍고 단단하다. 또한 세라믹 가루를 염료와 섞어서 다양한 컬러를 표현할 수도 있다. 광택을 내서 유리처럼 마무리하거나 세라미카 컬렉션의 시그니처 모델처럼 무광으로 연출할 수도 있다.

 

▶ 지구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계 집결지 [타임피스 서울투베이징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