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에는 홍길동의 무예가 과장되어 도술까지 부리는 것으로 표현되었지만, 실제 도술은 못해도 무공으로는 그 누구도 두렵지 않은 홍길동이다. 일행들 역시 내로라하는 무예를 자랑하는 활빈당 식구들이다. 어차피 고생 끝에 도착한 섬이니 이곳을 정복해서 둥지를 틀기로 마음먹고 나라 이름도 섬 이름을 따서 ‘율도국(聿島國)’으로 명명한 후 안주할 곳을 찾아서 대대적으로 이동하는데, 그곳에서 고려인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에게 들은 것은, 이곳은 고려 땅이지만 육지로부터 떨어진 섬이라 조정으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정이 간섭을 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섬이라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마도는 섬 전체의 90%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돌산이다. 식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배를 타고 부산으로 해산물이나 대마도의 특산품인 산호 등을 가지고 가서 식량과 바꿔오는 수밖에 달리 연명할 수가 없다. 조정의 입장에서는 굳이 대마도에 가지 않아도 대마도 주민들이 식량을 위해서 교역을 하러 올 때 교역세를 거둬들이면 된다. 백성들의 안위는 뒷전이고, 그저 세금만 거둬들이면 된다는 정치인들의 생각 그대로였다.

그런 사정을 전해들은 홍길동은 굳이 먼 곳을 찾을 것이 아니라 이곳 대마도를 자신들의 이상향 국가로 만들기로 결심을 한다. 그냥 맨눈으로 보아도 홍길동 일행이 범상치 않음을 알게 된 주민들은 순순히 일행에 합류하였다. 나라 이름은 어떤 연유에서든지 기왕에 선포한 대로 율도국으로 결정한 후 차츰 영역을 넓혀서 대마도 전체를 아우르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이 고려 본토에서 겪은 설움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그곳에 살던 주민들과 어우러져 불평등이라는 단어의 ‘불’자를 영원히 제거한 이상향의 국가를 건설하고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추론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단순한 추론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를 동반한 추론이었다. 홍길동 일행이 해류의 흐름에 의해서 활빈당의 본산인 함경도에서 대마도에 도착했다는 것이 바로 과학적인 근거다.

우리나라 동해를 흐르는 해류는, 쿠로시오해류가 일본 규슈의 먼 서남방에서 갈라져서 한줄기는 일본 남쪽을 거쳐 홋카이도 남쪽으로 향하고, 한 줄기는 대마도를 거쳐서 우리 한반도 동쪽을 따라서 북으로 향하는 동한해류를 형성한다. 그리고 역으로는 북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북한해류가 한반도 동해를 따라서 흘러내려와 속초 앞바다 정도에서 교류된다. 결국 동해를 따라서 다시 오던 길을 반복해서 흘러내려가는 것이다. 이런 해류의 흐름을 감안하면, 함경도에서 배를 띄우고 해류에 맡기면 당연히 대마도로 향하게 되어 있다.

울릉도나 오키나와가 아닐 것이라는 가설은 바로 이 해류의 흐름에 의해서 분석된 이론이다. 그리고 홍길동이 오키나와에 율도국을 세웠다고 하는 설은 홍길동이 연산군 시대 사람이라고 하는데, 오키나와는 1429년부터 1879년까지 그들 고유의 언어와 문자가 있는 민족인 류큐족의 류큐 왕국이었다. 즉, 연산군 시대 이전부터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오키나와는 류큐 왕국이었다. 이 왕국은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에도 등장하는 유구국이다. 시대적인 오류가 있다.

물론 해류에 의한 분석 하나가 맞는 이론이라고 해서 전체 주장이 맞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당시의 해양 기술 등을 감안할 때는 율도국이 대마도에 세워졌다는 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마도에 율도국을 세운 홍길동은 비단 고려인들만이 아니라 일본으로부터 죄를 짓고 도망쳐온 일본인들도 받아들여준다. 자신들이 비록 의적이라지만 고려에서 보자면 엄연히 도적질을 한 것이니, 죄는 죄인 만큼 도망치며 생활하던 아픈 기억을 잊지 못했다. 그리고 도망쳐온 일본인들 역시 무언가 자신들 못지않은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자비심을 버리지 않았다. 자신들이 나라를 세운 근본 목적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기에 현재 살고 있는 이 땅에서만 싸움질이나 도적질같이 자신들 나름대로 정한 죄를 짓지 않고 열심히 일하겠다는 약조를 하면 누구든지 받아들여주었다.

홍길동이 율도국을 세우고 나라가 틀을 잡아가면서 대마도는 태평성대를 이루게 된다. 그 누구도 죄짓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홍길동 일행이 아무리 관리를 잘 한다고 해도 악의 싹은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트기 마련이다.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선하게 살라고 주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그 자유의지를 최초로 사용한 것은 창조주께서 유일하게 취하지 말라고 금지한 과일인 선악과, 즉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눈을 열어주는 과일을 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악을 악으로 구분하지 못하는 욕심을 갖게 되었고, 그로 인한 비극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