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경배 회장. 출처: 아모레퍼시픽그룹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1990년대 물건이 너무 안 팔려서 힘든 시기를 겪었을 때가 있었다. 어려울 때 일수록 무기가 될 수 있는 강한 상품을 만들어보고자 계속된 연구 끝에 세계 최초로 순수 비타민A인 레티놀을 안정화시킨 주름개선 기능성 화장품 ‘아이오페 레티놀 2500’가 탄생했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어려운 시기에도 기술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다.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자인 고(故) 서성환 선대회장은 “과학기술의 발전 없이는 사회를 발전시킬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1954년 화장품 업계 최초로 연구실을 설립한 아모레퍼시픽은 연구원들이 계속해서 기술개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이에 1966년 세계 최초 한방화장품 ‘ABC 인삼크림’을, 1989년에는 세계 최초의 녹차 화장품 ‘미로’가 탄생했다. 2004년 세계 최초의 피부노화 개선 희귀 진세노사이드화장품 원료 ‘효소처리 홍삼사포닌’ 개발, 2008년 전 세계 여성들의 화장법을 바꿔놓은 ‘아이오페 에어쿠션’까지 혁신적인 제품을 계속해서 쏟아낼 수 있었던 이유다.

아울러 ‘태평양장학문화재단’(1973년), ‘태평양학원’(1978년), ‘태평양복지재단’(1982년)을 잇달아 설립하며 인재양성을 통해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활동도 지속해왔다.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자인 고(故) 서성환 선대회장은 “장사꾼의 기본은 신용과 정성이다. 좋은 물건을 만들어 팔면 누구라도 와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어머니 고(故) 윤독정 여사에게 많은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서경배 회장 역시 그 영향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혁신적인 제품들을 선보이면서 아모레퍼시픽을 매출 5조6600억원(작년 기준)의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기술력으로 승부를 본 ‘성공한 장사꾼’이 이제는 사회에 환원을 통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실천에 나선 모습이다.

지난 1일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이사장이라는 직함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사재 3000억원을 출연해 ‘서경배 과학재단’을 설립, 화장품 사업과 무관하게 순수 생명과학 분야에서 연구하는 신진 과학자를 지원하기 위한 공익재단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빌 게이츠 재단도, 록펠러 재단도 모두 자신의 이름을 걸었습니다. 잘못하면 이름에 먹칠하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지고 재단을 운영하겠습니다. 노벨상을 기대하는 건 사실입니다. 재단을 통해 세계에 길이 남을 연구 성과를 거두는 젊은 과학자가 배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영광의 순간에 같은 자리에 서 있고 싶습니다.”

‘서경배 과학재단’은 생명과학 분야의 신진 과학자를 발굴해 기초과학 발전에 이바지할 계획이다. 매년 젊은 과학자 3∼5명을 선발해 과제 1개당 최대 25억원(5년 기준)의 연구비를 지원한다. 서 회장은 “이제 우리도 새로운 과학자를 지원해서 30년 후에는 뭔가 달라지는 것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바람을 전했다.

“한국도 이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성장했고, 재단에서 지원을 받은 과학자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그런 순간에 같은 자리에 있게 된다면 영광이겠죠. 노벨과학상을 받는 한국인 과학자가 나오기까지 20년, 30년이 걸리더라도 지원하겠습니다.”

한국은 아직까지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 적이 없다. ‘과학을 포기하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서 회장이 실천하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몇 십년 뒤에 노벨상이라는 영광의 순간에 그가 함께 하는 자리를 마련하게 될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