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이 관객 수 1100만명을 돌파하면서 올해도 ‘천만 영화’가 나왔다. 2003년 개봉한 <실미도> 이후 17번째다. 인구 5000만명의 나라에서 1000만명이 보는 영화가 거의 매년, 그것도 여러 편씩 나온다는 건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일이다. 소설가 정지돈은 ‘한국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는 글에서 예리하게 묻는다. “한 나라에서 1000만명이 넘는 인구가 동원되는 일이 (영화 외에) 뭐가 있을까?” 답은 선거. 인구의 5분의 1을 불러 모으는 영화는 그 자체로 정치적 현상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독일 출신의 천재 극작가이자 연극 연출가다. 최고 수준의 독일어 시인이자 연극사에 독창적인 이론을 남긴 연극 이론가이기도 하다. 20세기 초반 문화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세계적인 도시였던 베를린에서 청년 브레히트는 빠르게 명성을 쌓았지만, 이내 ‘신발보다 더 자주 나라를 바꾸며’ 15년간 긴 망명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독일 정부가 나치에 비판적인 이 공산주의자에게 불순분자 스티커를 붙였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 역시 불온서적으로 금지되었다.

연극인답다고 할까. 브레히트에게 당시 독일은 하나의 ‘연극적 상황’으로 다가왔다. 히틀러의 연설 장면을 보고는 탄식했다. “매우 흥미로운 연극이다!” 실제로 히틀러는 전문 배우에게 연기 훈련을 받았으며, 무대에 오르듯 대중 앞에 섰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 뛰어난 배우가 관객의 감정을 휘어잡듯 독일 민족을 히틀러 자신의 감정에 동화시켜 단일한 집단으로 묶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어 ‘파쇼’(Fascio)에는 ‘묶음’이나 ‘결속’과 같은 뜻이 있다. 감정을 매개로 하나로 엉키는 건 파시즘(Fascism)의 본질이다.

나치를 향한 그의 적대감은 자신의 연극 이론과도 묘하게 중첩된다. 브레히트는 소위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에 비판적이었다. <시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핵심을 감정이입과 카타르시스(정화)에서 찾는다. 비극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피할 수 없는 처절한 운명에 내던져진다. 관객은 그들에 깊이 동화되어 함께 분노하고 절망하고 참회한다. 그 결과 관객 내면의 감정적 찌꺼기들, 운명에 대한 두려움이나 인간을 향한 연민과 같은 감정이 정화된다는 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었다.

브레히트는 그러한 감정이입이 관객을 수동화하고, 연극을 보수화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르크스를 따라 말한다. “단순히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극장에 적용시키”는 것이 연극의 목적이라고. 연극은 혁명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관객이 세계를 주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알려져 있는 것은 그것이 알려져 있다는 이유로 제대로 인식되지 못한다”는 헤겔의 생각을 받아들인다.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보여주기, 생소화 효과(Verfremdungs Effekt)가 고안된 것이다.

익숙함 속에 무뎌진 현실의 모순을 낯설게 감각하는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연극. 세계를 냉철하게 비판하는 주체로서의 관객.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객이 극에 ‘몰입’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브레히트는 조명을 밝혀 무대 장치를 의도적으로 노출하고, 극의 줄거리를 미리 통지하고, 일부러 극을 중단시키거나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걸도록 했다. 모두 감정이입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종종 결말을 짓지 않고 극을 끝내곤 했는데, 관객이 스스로 판단하길 원해서였다. 그는 관객에 감동을 주는 대신 그들과 대화하길 원했다.

<국제시장>, <변호인>, <연평해전>, <광해>, <인천상륙작전>, <베테랑>, <덕혜옹주>, <터널> 등. 언젠가부터 정치적 영화가 범람한다. 장 뤽 고다르는 “정치에 대한 영화가 있고 정치적인 영화가 있다”고 했다. 저 영화들은 정치적 사안을 직·간접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정치에 대한 영화’이자 생산과 소비의 방식이 정치적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저 영화들은 현실을 낯설게 재현하는가? 아니면 익숙한 코드를 포퓰리즘적으로 반복할 뿐인가? 관객을 주체화하는가? 아니면 애국심이든 분노든 강렬한 감정으로 몰아넣는가? 영화가 정치적인 게 뭐가 문제인가. 진짜 문제는 이것이다. 어떤 정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