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사진 = 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자동차 제조사 폭스바겐이 업계 안팎의 존경을 받았던 시절이 있다. 동종업계에서는 지속가능경영 선두주자로 꼽혔다. 배출가스 조작사건이 이후 힐난의 대상으로 추락했다. 천문학적인 과징금, 시장점유율 하락, 브랜드 가치 폭락 등 창사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존슨앤존슨은 치명적인 스캔들에 휘말렸던 시기가 있다.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며 사후처리에 발 벗고 나선 결과 소비자들의 지지와 높은 매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사로잡게 됐다. 폭스바겐과 존슨앤존슨은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지만 전혀 다른 입장을 맞게 됐다.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진실성이 두 기업의 성패를 갈라놓았다.

 

폭스바겐, 미국 제외 소비자 배상 ‘모르쇠’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조작의 대가를 글로벌 시장에서 치르고 있다. 작년 15억8000만유로(약 1조9655억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역대 최악의 실적이다. 지난해 차량 판매는 1000만대로 2% 감소했다. 매출은 5.4% 늘어난 2133억유로(약 265조3473억원)였다. 배상과 차량 재매입에 필요한 충당금이 치명타가 됐다. 충당금은 전년도 67억유로(약 8조3348억원)에서 169억유로(약 21조237억원)로 급증했다.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파문은 작년 9월 불거졌다. 당시 미국환경보건국은 폭스바겐 차량에 배출가스 조작을 위한 소프트웨어가 불법적으로 장착됐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폭스바겐은 조작 사실을 시인하고 미국 당국의 조사에 응했다.

배출가스 조작 사건 전까지 폭스바겐은 지속가능경영으로 명성이 높았다. 스위스 투자기관 로베코샘과 S&P 다우존스는 작년 10월 폭스바겐을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 지수(DJSI)에서 제외시켰다. DJSI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평가하는 지수다. 매년 시가총액 기준 글로벌 상위 2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로베코 샘과 S&P 다우존스가 사회·윤리·환경적 가치를 평가한다. 평가 결과 상위 10% 기업을 그해 DJSI 회원사로 선정한다.

폭스바겐은 지난 1999년부터 2004년까지, 2007년부터 2015년까지 13년 동안 지수에 편입됐었다. 작년 초에는 자동차업체 가운데 지속가능경영 능력이 뛰어난 곳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DJSI 위원회는 퇴출 성명서를 통해 결과적으로 폭스바겐은 더 이상 자동차·부품 업계의 리더가 아니라고 꼬집었다.

DJSI에서 퇴출된 기업은 폭스바겐뿐만이 아니다. 작년 3월 브라질 국영 에너지기업 페트로브라스는 광범위한 부패와 사기 혐의가 드러난 후 제외됐다. 일본의 도시바는 지난 2000년부터 지수에 편입됐었다. 최고경영자(CEO)의 사임까지 불러온 대규모 회계 조작 사건으로 작년 7월 지수에서 탈락됐다.

배출가스 조작 사건이 터진 직후 국내 시장 분위기는 글로벌 시장과 사뭇 달랐다. 지난해 11월 폭스바겐코리아는 4500여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수입차 시장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전달인 10월 판매고가 1000대 밑으로 하락하자 1800만원 할인 등 대대적인 할인 공세를 펼친 결과다. 같은 기간 폭스바겐은 미국과 일본에서도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했지만 판매고는 각각 24.7%, 31.8% 떨어졌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폭스바겐이 국내 소비자에게 약속한 배상금은 없다. 반면 미국 소비자들은 집단 소송을 통해 147억달러(약 16조4140억원)를 피해 배상금으로 지급받게 됐다.

폭스바겐이 배기가스 조작 소프트웨어가 탑재됐다고 밝힌 차량은 전 세계적으로 1100만대에 달한다.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제외하면 문제 차량은 1040만대로 추산된다. 폭스바겐은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서는 보상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을 포함한 호주, 아일랜드 등 소비자들도 뒤늦게 집단소송에 나섰다. 4400여명의 한국 소비자들은 폭스바겐과 계열사 아우디에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호주, 브라질, 캐나다,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에서 집단소송이나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각국 변호사들은 미국 소송 사례를 참고하고 있다.

존슨앤존슨, 임직원 가족 건강까지 책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CSR 역량을 발휘해 재기에 성공한 기업도 있다. 지난 1982년 미국 시카고, 존슨앤존슨의 진통제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8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타이레놀은 존슨앤존슨의 주력 상품이었다. 미국 시장 점유율 35%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판매고를 보였다. 미연방당국은 사건 조사에 나섰고 누군가 소매 단계에서 일부 캡슐형 타이레놀에 독극물을 첨가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시카고 지역에 배포된 제품만 수거할 것을 존슨앤존슨에 권고했다.

존슨앤존슨은 한 발 더 나아갔다. 타이레놀의 생산과 홍보를 중단하고 미국 전역에서 시판되고 있던 제품을 수거했다. 이미 판매된 타이레놀 캡슐은 알약으로 교환해줬다. 이 회사는 핫라인을 설치하고 언론과 소비자의 문의에 신속하게 응대했다. 직접적인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후속조치에 나선 것이다.

해당 사건 이후 존슨앤존슨은 미국 소비자에게 가장 사랑받는 기업 중 한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국제 컨설팅 업체 레퓨테이션인스티튜트가 최근 발표한 신뢰받는 10대 기업 목록에도 이름을 올렸다. 올해 <포춘> 500대 기업 순위에서는 39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은 700억달러(약 78조1200억원), 영업이익은 154억달러(약 17조1864억원)를 올렸다.

이 회사는 최근 CSR 역량을 임직원 건강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임직원의 건강상태가 개선되면 회사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임직원과 함께 임직원의 가족 건강까지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정신건강관리 지원 ▲건강증진 프로그램 ▲위생·유독물질관리 등 작업환경 개선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HIV/AIDS) 프로그램 ▲업무환경에 대한 인체공학 연구 등이 시행되고 있다. 이는 존슨앤존슨 설립 후 단기적으로 가장 높은 효과를 만들어낸 투자로 알려졌다. 신약 개발에 투자해 거둔 투자대비수익률(ROI)보다 높았다. 임직원의 생산성과 근속연수도 함께 올라갔다는 게 존슨앤존슨 측의 설명이다.

지속가능경영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양사의 운명이 달라진 셈이다. 전문가들은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병훈 카이스트 명예 교수는 “폭스바겐은 자동차 업계에서 DJSI 세계 1위였다. 사회공헌이나 많은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면서도 “‘배출가스 조작’은 자기 책임영역부터 제대로 하지 않고 다른 ‘착해 보이는 일’을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사회공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기업은 무엇보다 진정성이 중요하다”며 “자기가 야기시킨 부정적 행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내부 시스템이 돼있지 않으면 다른 ‘착한 일’들도 결국 진정성을 잃게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