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경영’이라는 말이 생색내기용으로 사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명절이나 연말연시마다 임직원들은 소외계층을 방문해 각종 선물과 지원금을 건넸다. 현장 사진은 지속가능경영을 실천했다는 설명과 함께 각 언론사로 배포됐다.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까닭이다.

2016년 현재까지 이 같은 행태를 답습하는 곳도 있다. 속내가 보이는 자선활동에 찬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도리어 핀잔이 쏟아지기도 한다. 관전 포인트는 얼마를 투자했는지에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로 옮겨갔다. 지속가능경영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기 한층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점은 국내외 기업들의 반응이다. 과거에 비해 적극적인 모습이다. 까다로워지는 평가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담당자들의 고심은 깊어진다. 전문가들은 지속가능경영을 최고의 차별화 전략으로 꼽는다. 일회성 홍보수단에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전략으로 접근법도 달라졌다.

 

지속가능경영, 자선, CSR 그리고 CSV

지속가능경영은 사회공헌·자선·기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공유가치창출(CSV), 사회적 기업 참여·지원 등 크게 4개 영역으로 나뉜다. 초기 기업들은 자선활동을 통해 시민사회와 유대를 맺었다.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자원봉사로 사회적 요구를 충족했다. 기부재단 수는 유행처럼 늘어갔지만 윤리경영에 대한 우려는 여전했다.

기부에서 한 단계 발전한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등장한다. 규범과 윤리를 준수하고 지역공동체 일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도록 요구된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준수’에 가깝다. 마이클 포터 교수는 지난 2011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를 통해 CSV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CSR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눈앞의 이익보다 환경보호나 공정무역 같은 분문에 힘썼다. CSR은 얼마 못 가 한계를 드러냈다. 피해는 줄일 수 있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역부족이었다.

CSV(Creating Shared Value)가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배경이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면서 경제적 이익을 함께 추구한다. 사회문제에서 니즈를 포착하는 신개념 수익사업 모델인 셈이다. 실제로 아마존, 구글, 홀푸드마켓, CJ그룹 등 국내외 기업들이 공유가치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다. 자선과 CSR이 파이를 나누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CSV는 파이를 키우는 윈-윈 전략이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기업의 영향력도 강해졌다. 지난해 매출액 기준 상위 5대 기업은 삼성전자 약 200조원, 현대자동차 약 91조원, 한국전력 약 58조원, 포스코 약 58조원, LG전자 약 56조원으로 추산된다. 해당 기업들의 총 매출은 약 463조원. 이는 올해 우리나라 총 예산 386조원을 상회하는 금액이다. 기업이 공공기관보다 사회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개연성이 커졌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압박이 매출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 소비자는 소비 활동을 통해 특정 기업에 힘을 실어주거나 견제를 가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 유권자와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점은 유권자는 주로 선거 기간에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소비자는 상시 가능하다. 지난 2012년 애플은 전자제품 환경평가시스템(EPEAT) 녹색인증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었다. 이후 미국 소비자를 중심으로 불매운동 움직임이 일자 “우리는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이라며 태도를 전환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지속가능경영 성과를 담고 있지만 배경지식이 없다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비전문가 입장에서 각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수준을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다우존스, 레퓨테이션인스티튜트 등이 매년 발표하는 지표를 참고하면 손쉽게 판단할 수 있다.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는 환경 등 지속가능성 측면을 반영한 글로벌 기업 평가 지수다. DJSI는 사회공헌과 기부를 위해 얼마를 지출했는지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이 어떤 전략에 따라 사회공헌을 실행했는지를 본다. 이로 인해 긍정적 효과를 달성했는지 조명한다.

다우존슨, 기업별 CSR 평가 내역 공개

‘DJSI월드’는 전 세계 약 2500개(시가총액 기준) 기업을 분석해 상위 10% 남짓을 편입시킨다. 아시아퍼시픽 지역 600대 기업을 조사해 상위 20%를 편입시키는 ‘DJSI아시아퍼시픽’과 국내 200대 기업 중 상위 30%가 편입되는 ‘DJSI코리아’도 있다. DJSI코리아는 지난 2008년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국가 단위 DJSI 지수로 한국생산성본부가 평가에 참여하고 있다.

‘2016 DJSI’에서 포스코, SK텔레콤 등 21개 국내 기업이 DJSI월드에 이름을 올렸다. DJSI아시아 퍼시픽에는 LG화학,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 등 38개사, DJSI코리아에는 아모레퍼시픽, 대림산업, 삼성엔지니어링 등 45개사가 선정됐다.

국제 컨설팅 업체 레퓨테이션인스티튜트는 매년 CSR 100대 기업을 선정한다. 작년 공개한 ‘2015년 CSR 100대 기업’의 경우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15개국에서 3개월 동안 6만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졌다. 조사국에는 한국도 포함돼 있었다. 평가에는 각 기업의 운영 건전성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고려됐다. 평가 내용은 100점 만점으로 환산됐다.

1위는 75.40점으로 구글이 차지했다. 구글은 2014년에 이어 2관왕에 올랐다. BMW는 73.36점으로 2위, 월트디즈니는 73.35점으로 3위를 기록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자동차 제조사 다임러, 레고, 애플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삼성전자는 68.83점으로 20위, LG는 64.47점으로 94위를 기록했다.

전문가들마다 지속가능경영 대중화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내놨다. 지속가능경영이 기업활동에 주요 덕목이 될 거라는 데는 모두 동의했다.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는 “지속가능경영 이슈의 가장 중요한 배후인 사회의 성숙도와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과 (기업들의) 글로벌화 가속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휘창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에 앞다퉈 나서는 모습에 대해 “기업에 대한 사회적 압력과 요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는 유럽, 미국 등과 달리 압축성장을 이뤄냈다”며 “불안정한 경제 시스템으로 소비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해외시장 대비 경영자나 기업 신뢰도가 낮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