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어느 평범한 여름날이었다. 그날도 여념 없이 월급쟁이 치과의사 신분으로 환자를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발치를 한 환자가 갑자기 내원했다. 오른쪽 아래 사랑니를 뺀 부위가 너무 아프고 부었다고 했다. 차트와 기억을 곰곰이 되짚어 봤지만 이를 빼는 과정 중에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무난히 마취를 하고 무난히 사랑니를 뺐던 기억밖에 없었다.

모든 일이 순리대로 흘러가면 좋으련만 꼭 그런 법은 없다. 사랑니 발치 후 정상적인 치유 과정을 거쳐 나았으면 좋으련만 이 환자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인해 이를 뺀 자리에 감염이 발생했고, 이것이 염증을 일으켜 얼굴에 화농 및 통증을 발생시킨 것이다. 몇몇 추정되는 원인으로는 피로, 면역력 저하, 음주, 흡연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이미 증상이 발생한 상황에서는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환자에게 오한과 열은 없는지 문진하고 부은 부위를 확인했다. 다행히 오한과 발열은 없었다. 보통 얼굴이 부어서 오면 위 볼 쪽이나 아래 볼 쪽이 붓는다. 염증으로 생긴 농이 인체의 방어기전에 의하여 국소적으로 갇혀 그 위치에 주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를 농양이라고 한다. 농양의 경우 해당 부위 잇몸이나 잇몸 아래 부위가 부어 있다. 이 경우 부어 있는 부위를 촉진하고 종창감이 느껴지는 부위에 수술용 칼을 이용해 배농을 위한 칼집을 내주면 된다. 화농성 여드름이 노랗게 한껏 부풀어 올랐을 때 터트리면 농이 나오듯이, 적절한 부위에 수술도를 절도 있게 찔러 넣으면 고름이 줄줄 흘러나온다. 하지만 이 환자의 경우 아래 턱 쪽이 부어서 왔다. 구강거울을 가지고 환자의 볼을 제치고 아래 사랑니를 뽑은 부위를 살펴보았다. 구강 내에는 부어올라 종창감이 느껴지는 곳이 없었다.

이 환자의 경우 사랑니를 뺀 자리에서 생긴 감염이 국소화되지 못하고 산불이 번지듯 조직 내의 공간을 타고 퍼져나간 것이다. 그래서 사랑니를 뺀 부위와 그 주변이 아닌 턱 아래쪽에 염증과 농이 생긴 것이다. 이것을 발치 후 봉와직염이라고 부른다.

봉와직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단어일 것이다. 군대에 다녀온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말이다. 외상이나 벌레에 의해 감염되거나 종양이나 모낭염 같은 피부감염이 진피와 피하조직에 침범하여 급성 화농성 염증을 일으킨 것이다. 주로 다리에 잘 생기는데, 고된 훈련과 군화로 인해 무좀이나 짓무른 곳에 감염이 되어 군인들에게 종종 생기곤 한다. 이것이 안면부에 나타나기도 하는데 주로 치아로부터 유발된 감염으로 인해서 발생하곤 한다.

발치와 봉와직염으로 진단은 내렸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농양과 달리 봉와직염은 1차 의료 기관에서 치료하기 곤란했기 때문이다. 구외 절재로 배농을 해야 하고 배농관을 삽입해야 하는데 필자는 경험도 없었고 배농관도 없었다. 또한 항생제 주사를 놓아야 하는데 치과의원에는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 급성염증이 더 광범위하게 퍼져 나간다면 구강저와 양쪽 턱 아래 공간에 심한 부종을 일으키는 루드비히앙기나(Ludwig’s Angina)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루드비히앙기나는 히포크라테스 때부터 알려진 질환으로 턱 아래 부위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봉와직염을 말한다. 항생제가 발명되기 전에는 치사율이 50%에 이를 정도로 굉장히 위험한 질환이었다. 주된 증상은 턱 아래 부위가 개구리의 턱 밑이 부풀어 오른 것처럼 심한 종창을 보이고 혀 아래 구강저가 부풀어 올라 혀가 두 개처럼 보이는 이중설 현상이다. 이와 더불어 호흡 곤란, 발열, 기력저하를 보인다. 이 질환에 이환되면 바로 입원한 뒤 전신마취 하에 배농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질환이다. 물론 요즘은 이 질환으로 죽는 경우는 거의 없다.

환자에게 현재의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발치 외에 간단한 드레싱 및 항생제 처방을 했다. 그리고 상급기관으로 전원을 하기 위한 진료의뢰서를 작성해준 뒤 치과 대학병원 구강외과로 갈 것을 권했다. 다행히 환자도 상황을 잘 이해하고 바로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며칠 후 환자가 소독을 받으러 내원했다. 대학병원이 멀어 소독만 받으러 가기가 쉽지 않아 이쪽으로 내원한 것이다. 대학병원에서 오른쪽 아래 턱 부위에 절개를 하고 배농관을 봉합사를 이용하여 피부에 고정해 놓았다. 그 배농관을 통해 생리식염수를 이용해 소독했다. 그 후 치료는 잘 마무리되어 완치되었지만 약간의 절개 자국이 턱 밑에 남게 되었다.

그 후로 발치한 환자에서 한 번도 이런 일이 생긴 적은 없었다. 물론 앞으로도 생기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술자의 잘못이 없어도 낮은 확률로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발생했을 때에 적절한 대처와 환자의 양해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술자와 환자와의 신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