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외모를 적극적으로 가꾸고 쇼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남성. ‘그루밍족’이 늘자 명품 편집숍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눈과 귀에 즐거움을 줄 만하다’ 아름답다라는 사전적 의미다. 최근 광고 속 남성들을 보면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충분히 즐겁게 해 주고 있어 아름답다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요즘 남성들. 예뻐지는 게 아니라 아름다워지고 있다.

샤워를 시작한다. 아베다의 남성전용 샴푸와 린스를 사용해 머리를 감는다. 남성의 두피는 여성과 달리 기름기가 많아 남성전용 샴푸를 쓰는 게 좋다는 내용을 남성잡지에서 읽은 그가 얼마 전 구입한 것이다.

보디 클렌저를 이용해 몸을 닦고 지성피부용 폼 클렌징으로 세수를 한다. 폼 클렌징을 쓰고 나면 비누로 했을 때와는 달리 세수 후에도 얼굴이 당기지 않고 피부의 유분기를 없애주는 듯 해 폼 클렌징을 자주 이용한다. 샤워를 끝낸 후 스킨 향이 은은히 퍼지는 비오템 옴므 스킨로션을 바른다.

35세 회사원 김모씨의 출근 준비 모습이다. 남성전용 뷰티제품을 사용하는 그의 모습은 이젠 별다를 것 없는 자연스런 모양새가 됐다. 비누 하나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샤워를 하는 사람도 남성전용 스킨로션 한두 개 정도는 구비하고 있을 것이고 폼 클렌징을 쓰거나 남성전용 헤어제품을 사용하는 남성들 역시 흔하게 볼 수 있다. 하다못해 4~50대 중년층까지도 자외선 차단크림은 큰 거부감 없이 바르고 나온다.

신세계 ‘신세계 맨즈 컬렉션’.


젊은층 자아실현 위한 쇼핑 독립선언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패션, 뷰티업계에 남성들이 자연스레 등장하기 시작했다. 3~4년 전부터 불어온 미소년 ‘꽃남’ 열풍에, 관리된 외모와 구매력을 동시에 지닌 ‘차도남’ 열풍이 가세하면서 ‘그루밍족’(꾸미는 남자)들이 크게 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이미 남성복 시장은 여성복 시장 규모를 앞질렀고,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은 세계 최대 규모로 올해 1조원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10~55세의 남성인구가 여성인구보다 더 많은 상태에서 경기 회복세와 그루밍 열풍을 타고 남성 패션·뷰티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화장품 시장을 둘려봐도 ‘~~포맨’ ‘~~옴므’가 들어간 남성전용 브랜드가 쏟아져 나오고 있고 <남자에게 팔아라> <남자는 스타일로 승부한다> <화장하는 남자가 시장을 바꾼다> 등 남성의 소비 변화를 다룬 책들이 연이어 출간되며 그 중 일부는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다.

한 케이블 채널에서는 남성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남성패션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남성의 전문성을 더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남성들이 쇼핑에 조언을 해 줄 여성들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젠 아내나 엄마가 사주는 옷만 입는다는 남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갤러리아 백화점의 양정열 바이어는 “남성들이 이젠 소비의 주체가 되어 더 이상 여성들에게 쇼핑을 의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미리 생각해 방문하거나 스타일북을 보며 스타일링에 대한 조언을 듣는다”고 말한다.

20대로 갈수록 쇼핑을 하는 남성들의 독립성은 뚜렷해진다. 그들은 제품을 구매하기 전 스타일과 색상, 가격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과 거리 매장을 통해 확인하고 가격을 비교한 후 최종적으로 구매를 결정하는 매우 이성적인 구매 행태를 보이고 있다.

“최근 기능성 워킹화가 많이 나오는데 각 브랜드를 신어보니 저는 리복 이지토닝이 가장 잘 맞아요. 신발은 직접 신어봐야 하니까 착용감을 보기 위해 백화점에서 신어본 후 인터넷 가격비교 쇼핑몰 어바웃에서 가장 최저가격으로 파는 쇼핑몰을 골라 백화점 판매가보다 10% 저렴하게 구매했어요.” 대학생 이현모(21)군의 말이다.

20대 남성들은 사이즈 선택은 스타일과 색상, 가격, 품질은 물론 브랜드 마크 디자인까지 꼼꼼히 비교하며 제품을 결정했는데 이들은 패션 브랜드에 대한 지식도 높으며 브랜드마다 주는 이미지에 대한 분석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한 공간에서 원스톱으로 쇼핑을 해결할 수 있는 편집숍이 최근 남성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사진은 갤러리아 남성 전용 편집숍 ‘지 스트릿 494 옴므’.


경계 무너진 性…크로스섹슈얼 이미지로

최근 광고를 보면 ‘숨겨진 브이라인을 찾으라’며 살인미소를 짓는 현빈의 여성보다 샤프한 브이라인 턱 선에 새삼 한숨을 짓게 된다. 도대체 언제부터 남성들이 이렇게 아름다워졌단 말인가?

남성들의 변화는 2000년에 들어서며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선호하는 스타들 역시 1980년에는 터프한 남자가 인기였다면 1990년대 중반부터는 원빈이나 김재원 같은 곱상한 외모의 스타들이 인기를 끌었다.

뒤를 이어 2002~2004년은 보디라인은 근육질인데 얼굴선은 부드러운 권상우, 비, 조인성 같은 스타들이 인기를 얻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곱상한 외모에 남성미를 갖춘 남성성의 강인함과 여성성의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남성상 즉, 메트로 섹슈얼한 남성 스타들이라는 것.

2000년대 중반의 메트로 섹슈얼 열풍은 남성상이 변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았다. 2005년에는 메트로 섹슈얼의 변종인 남성성에 무게중심이 간 위버 섹슈얼한 이미지의 스타가 부각됐다. ‘프라하의 연인’에 등장한 김주혁이 대표적인 위버 섹슈얼한 남성상의 스타였다. 터프함과 함께 자상함, 감성의 풍부함 등을 드러내는 남성을 ‘위버 섹슈얼 세대’라고 지칭했다.

이후 치장을 즐기는 크로스 섹슈얼한 이미지의 남성상이 나타났다. ‘왕의 남자’에서 여장 광대 공길역으로 출연한 이준기가 대표적이다. 이준기는 고운 선이 돋보이는 얼굴, 섬세한 눈, 날카로운 헤어스타일 등 여성스러움이 돋보인 공길을 연기한 크로스 섹슈얼한 이미지의 유행을 선도했다.

최근에는 ‘꽃보다 남자’의 이민우처럼 자신의 스타일에 많은 공을 들이는 그루밍족이 뜨고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남성상의 변천에 대해 전문가들은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있다. 과거에 남성은 한 여자와 가정을 지키는 강인하고 든든한 존재로 여겨졌으나,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나며 남성의존도가 줄어들면서 성의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며 그들은 스스로 가부장적인 권위를 내려놓았고 자연스레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사고가 유연해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또한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 풍토 역시 한 몫 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모니터에서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피부미용에 대한 설문조사를 보면 전체 89.5%의 응답자가 “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외모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대답한 바 있다.

남성들의 외모 역시 경쟁력이 된다는 인식은 취업전선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설문조사에서 취업 시 외모가 매우 중요하며(81.4%) 향후 외모가 더욱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것에 79.3%가 동의해 외모지상주의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인식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취업 시 조금 더 나은 인상을 주기 위해 쌍꺼풀 수술을 하고 피부과 치료를 받는 등의 노력은 젊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된 말이 아니다. 올해 64세인 주택관리사 허모씨는 퇴직 후 재취업을 위해 주름을 피는 시술을 받고 가발을 맞췄다. 주름과 벗겨진 머리 숱으로 인해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이 재취업에 장애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아름다워지는 이유에는 이처럼 어려운 경제적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측면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그루밍족 겨냥 명품 편집숍 속속 등장

자신의 외모를 적극적으로 가꾸고 쇼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남성, 이른바 ‘그루밍족’이 지속적으로 늘자 유통업체와 명품 브랜드들이 이들을 중심으로 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백화점 내 가방과 구두 등 남성 잡화 상품을 한 곳에 모아놓은 명품 편집 숍이다. 단일 브랜드에서 보여주는 한정된 상품력으로는 남성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대안전략에서 ‘셀렉트 숍 개념의 아이템 토털화’가 필요했다.

또한 경제력을 갖춘 40대 남성들이 의류는 물론 명품, 시계 등 다양한 제품을 구매하며 전체 백화점 매출 중 7%대의 비중을 차지한다. 구매력이 높은 그들을 잡기위해 백화점은 남성전용 매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명품 남성전용관은 갤러리아 명품관의 ‘지 스트릿 494 옴므’(g.street 494 homme)다. 패션에 대한 관심이 큰 30대~50대 남성을 타깃으로 하는 이 편집 숍은 클래식을 기본으로 한 포멀 스타일에서부터 캐주얼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인다.

나폴리 정통 브랜드인 체사레 아똘리니를 비롯해 영국의 이타우츠와 프랑스의 질리, 미국의 옥스포드 클로즈, 일본의 카모시타 등 전 세계 수공명장에 의해 생산되는 최고급 남성복들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맞춤(비스포크) 브랜드 ‘장미라사’가 숍인숍 형태로 입점해 맞춤 섹션까지 갖추게 되면서 남성 클래식 멀티숍으로서의 구색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수트뿐 아니라 셔츠, 니트, 아우터, 슈즈, 벨트, 타이, 양말 등 다양한 소품들까지 갖춰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도록 했다. 명품 브랜드를 취급하는 이곳의 주요 가격대는 수트가 200만원~700만원대, 셔츠 25만원~85만원대, 점퍼 80만원~250만원대, 벨트 15만원~60만원대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지난 10월 남성전용 클래식 편집매장인 ‘신세계 맨즈 컬렉션’ 을 오픈했고 올해 9월 강남점에 남성명품 전문관을 오픈할 예정이다. 백화점 매출 중 40대 남성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남성 타깃 상품 매출이 올해들어 15% 이상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강남점 남성전용 명품관에는 톰포드 등 8~10개 클래식 슈트 브랜드가 신규로 매장을 열고 에르메네질도 제냐, 아르마니 꼴레지오니, 휴고 보스, 페라가모 등 기존 입점 브랜드들도 매장을 넓히고 상품 물량도 확대할 계획이다.

백화점 매장을 운영하지 않는 아르마니 최상위 라인인 ‘조르지오 아르마니 블랙 라벨’의 입점도 추진 중이며 리뉴얼과 함께 20~30대 남성을 타깃으로 하는 명품 의류 편집매장인 ‘멘즈 온더분’을 함께 선 보일 예정이다. 이 편집매장은 영업 면적과 취급 브랜드 수에서 기존 남성 편집관인 ‘멘즈 컬렉션’(영업면적 360㎡,브랜드 수 48개)이나 ‘멘즈 퍼니싱’(330㎡,41개)과 비슷한 규모로 들어선다.

이처럼 명품관도 아닌 신세계 강남점이 한 층을 털어 ‘남성 명품관’으로 만드는 것은 최근 남성 명품 매출이 전반적으로 증가세인 데다 서울 강남의 '명품 트렌드 세터'를 끌어들여 ‘럭셔리 1번지 점포’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신세계 선현우 바이어는 “미국 일본 등에서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돌파를 기점으로 남성 고급 패션 시장이 급속도로 커졌고 국내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며 “고급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기 위해 강남점에 대규모 남성 명품관을 선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 역시 지난 8월 의류부터 액세서리가 한 곳에 구비된 LG패션의 ‘리비에라 바이 마에스트로’를 압구정점에 입점시켰다. 여기서 파는 제품은 ‘루비암’ ‘헤르노’ 등 유럽의 고가 명품 브랜드로 재킷 가격만 봐도 최소 100만원 이상이다.

마에스트로 관계자는 “그루밍족들이 ‘소비욕구’는 높아지는 데 반해 ‘소비 방식’은 아직 활발해지지 않았다”면서 “이들이 한 자리에서 쇼핑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편집 숍”이라고 말했다.

양면적인 남자의 감성

남성들은 패션에 무심한 듯 보이나 단지 쇼핑 자체를 싫어하는 성향이 여성보다 높고 장식적인 부분을 중시하는 여성에 비해 기능적인 측면을 중시한다.

소매기업들이 여성들을 상대로 한 마케팅 방식을 남성들에게 적용시킨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상품의 기능성과 실용성을 중시한다. 옷의 경우 살에 닿는 천 소재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팔을 들 때 걸리는 부분은 없는지에 대한 기준이 디자인을 중시하는 여성들보다 까다롭다.

또 얼리어댑터 성향이 강해 과학적이고 세련된 기술을 적용한 소형 전자제품에 대한 반응이 여성보다 빠르고 마니아적 성향이 강하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겉으론 크게 표현하지 않지만 디자인도 매우 중시한다. 남성들이 애플사의 맥 컴퓨터 등 애플 제품에 열광한 이유 역시 기능은 물론 디자인 측면이 컸다.

또한 남성들은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다. 그들은 여성들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브랜드를 찾아 헤매지 않기 때문에 딱 한번만 마음을 휘어잡으면 된다. 이는 브랜드뿐 아니라 헤어숍을 고르는 데서도 그 특성을 알 수 있다. 헤어숍을 자주 바꾸는 여성들에 비해 남성들은 자신의 스타일을 아는 디자이너 한 명을 선택해 특정 헤어숍 한 곳만 이용하는 성향이 강하다.

도전적이고 공격적이며 실용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은 남성들의 고유한 특징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남자들은 신분과시나 외적형식을 중시하기 때문에 여성들처럼 자신을 가꾸는 일에 열중하기도 한다. 남성 마케팅을 하는 기업들은 소비 패턴에 있어 남성만이 갖고 있는 미묘한 감성의 차이를 이해하고 그들만을 위한 마케팅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최원영 기자 uni354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