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피아트 크라이슬러 지주회사 엑소르 그룹 이사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사회는 29일(현지시간) 예정되어 있다. 현재 엑소르의 사외이사인 이재용 부회장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사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해 이를 글로벌 경영의 일환으로 삼아왔다.

마그네티 마렐리 인수..무엇을 얻나?
올해 이재용 부회장의 엑소르 이사회 참석을 바라보는 업계의 관심은 지난 이사회 참석과는 차원이 다르다. 삼성전자가 피아트 크라이슬러 100% 자회사인 자동차 부품회사 마그네티 마렐리 인수를 타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인수금액에 대한 이견차이로 협상이 결렬됐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현 상황에서 업계의 관심은 인수합병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그 대상이 전체 사업부냐, 아니면 일부분이냐에 집중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인수합병에 성공해도 마그네티 마렐리의 경영을 피아트 크라이슬러에 위탁시키는 방법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 예상가는 최소 30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마그네티 마렐리 인수합병에 나서는 이유는 전장사업팀을 매개로 한 자동차 시장 전격전과 관련이 있다. 삼성에 있어 자동차는 일종의 '애증의 대상'이다. 의욕적으로 자동차 사업을 전개했으나 외환위기 및 정부 주도의 소위 5대 그룹 계열사 빅딜에 휘말려 그 끈을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국영자동차 업체 르노가 닛산자동차의 지분 36%를 인수해 탄생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Renault-Nissan Alliance)가 2000년 4월 6200억 원에 삼성자동차를 인수하며 명맥이 끊겼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공식석상에서 자동차 사업 진출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글로벌 ICT 기업을 중심으로 전기자동차 및 자율주행차의 돌풍이 거세지자 나름의 준비를 시작했다. 지난 4월 삼성전자의 미래동력을 중장기적으로 가다듬는 종합기술원에서 자율주행차와 관련된 연구직 경력사원을 채용한다고 밝힌 대목이 극적이다. 여기에는 연구개발(Device&System) 직무에 Autonomous Driving, Computer Vision, Neuromorphic/Mobile Processor, Optics/Bio-Signal Analysis 수행업무가 포함되어 있다. 더불어 자율주행차와 딥러닝 및 데이터,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도 병행한다.

삼성전자 전장사업팀 출범도 마찬가지다. 조직개편을 통해 전장사업팀을 신설하고 DS부문장을 맡는 권오현 부회장 직속으로 꾸려 무게감을 실었다. 신설된 전장사업팀장에는 컴프레서 최고 전문가이자 생활가전 C&M사업팀장을 맡고 있던 박종환 부사장이 선임됐으며 올해 초에는 삼성전자 부품솔루션(DS) 부문에 차량용 반도체 개발 태스크포스(TF)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차량 조명 및 엔터테인먼트, 텔레매틱스(차량 무선인터넷 기술)에 일가견이 있는 마그네티 마렐리를 인수합병할 경우 상당한 시너지를 예상할 수 있다. 유럽기업의 특성을 살려 현지 시장 개척에도 나름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 결국 삼성전자에 있어 전장사업팀의 수준을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는 마법의 도구인 셈이다. 더불어 삼성전자가 인수합병에 성공할 경우 삼성SDI 및 기타 전자관련 계열사와의 시너지도 고려할 수 있다. 최근 경영난을 겪고 있는 마그네티 마렐리의 손을 잡아 전장사업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삼성전자 자동차 인프라를 강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인수합병과 투자
현재 글로벌 ICT 기업 및 완성차 업체, 나아가 차량 온디맨드 기업들은 미래 자동차 산업에 전사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ICT 기업의 경우 포스트 스마트폰을 대체할 차세대 플랫폼으로 자동차를 주시하고 있다.

초연결의 사물인터넷 시대를 맞아 사용자 경험의 확대 범위를 자동차에 대입하는 방식이다. 막강한 콘텐츠 파워를 일반에 개방할 수 있는 창구로 자동차를 활용한다는 뜻이며 이는 운전대에서 운전자의 손을 해방시키는 자율주행차의 비전과도 연결된다. 나아가 O2O적 관점에서 방대한 오프라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고 이를 4차 산업혁명에 대입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인 논리다.

완성차 업체는 최초 ICT 기업의 시장 진입을 불편하게 생각했으나 이제는 공격적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ICT 기업과 대승적 차원에서 협력하는 일도 벌어진다. 그 흐름에서 일정정도 거리를 두던 마그네티 마렐리의 모회사인 피아트 크라이슬러도 최근 자율주행차에 부쩍 관심을 두고 있다. 지난 7월 알파벳과의 협력에 나섰기 때문이다. 피아트 크라이슬러가 100대의 자율주행 전용 미니밴을 제작하면 알파벳이 시스템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알려졌다.

온디맨드 기업은 차량공유의 방식을 통해 '소유하지 않아도 대중교통처럼 개인적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하고 있다. 자동차 자체를 공공의 인프라에 녹여내어 '퍼블릭의 프라이빗 플랫폼'을 노리는 셈이다. 우버 CEO인 트래비스 칼라닉이 "우리의 상대는 택시가 아닌 완성차 업체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인수합병과 투자를 통해 자동차 산업을 노리고 있다. 중국 전기차 1위 기업인 비야디(BYD)에 5000억 원을 투자한 대목이 극적이다. BYD는 충전용 배터리 업체로 시작해 전기차 분야에서 글로벌 1위에 오른 입지전적인 기업이다.

2008년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 자회사인 미드아메리칸 에너지 홀딩스를 통해 2억 3000만 달러를 투자, 9.89%의 지분을 확보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본 투자는 물량으로 보면 테슬라를 상회하는 점유율을 가진 BYD와의 협력에 방점을 찍었다는 평가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자율주행택시 상용화에 나서 놀라움을 안긴 무인차 개발 스타트업 누토노미(nuTonomy)에 투자한 지점도 눈길을 끈다. 지난 1월과 5월 두 차례에 거쳐 삼성벤처투자가 투자를 주도했다는 후문이다.

누토노미는 최근 펀딩을 통해 1600만 달러(약 180억 원)의 자금을 확보했으며 시험운행 참여자 10명을 선정했다. 스마트폰 앱으로 자율주행택시를 불러 이용하는 방식이며 르노 '조이'와 미쓰비시 'i-MiEV' 등 6대를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시험운행에 투입되는 차량 대수를 연말까지 10여 대선으로 늘리는 한편 서비스 대상 인력 규모도 몇 달 안에 1000 명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미있는 대목은 삼성전자의 자동차 행보가 LG전자와는 결이 다르다는 점이다. 전장사업에 집중하는 대목과 다양한 전자계열사의 역량을 모으는 방식은 같지만 세부적 로드맵에 있어 삼성전자는 외부 인수합병 및 투자, LG전자는 자체적인 경쟁력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실제로 LG는 오래전부터 전장사업에 관심을 보여왔다. VC사업본부를 통해 지난해 10월 미국 GM의 차세대 전기차 '쉐보레 볼트 EV'에 핵심부품 11종을 제공했으며 이후 도요타의 차량용 텔레매틱스 부품 납품 계약을 맺기도 했다. 자동차와 무선통신기술을 더한 텔레매틱스 기술은 VC사업본부가 꾸준히 그 경쟁력을 제고한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다. 지난 4월에는 2011년부터 활동해오던 ‘제니비 연합(GENIVI Alliance)’에서 최근 이사회(Board) 회원사에 선출되기도 했다.

▲ 출처=누토노미

일말의 걱정
이재용 부회장의 엑소르 이사회 참석을 기점으로 삼성전자의 마그네티 마렐리 인수합병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도 결국 전장사업, 즉 하드웨어 중심의 정책 로드맵이라는 점이 미묘하다.

대부분의 거대 플레이어들이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키우며 자동차 산업에 뛰어드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자동차 정책은 일종의 하청업체로 포지셔닝되는 분위기다.

지난 25일 일본의 엡손은 한국 판매법인 20주년 기념 기자회견을 열며 웨어러블 및 사물인터넷, 로봇을 매개로 삼아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증강 및 가상현실에 대한 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부족한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눈길을 끌었다.

기술기업이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을 타는 전형적이지만 긍정적인 방법론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도 차가운 디바이스에 소프트웨어라는 영혼을 불어넣을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