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은 9월 15일이고 김영란법은 같은 달 28일부터 적용될 것이라고 한다. 법 적용 시기도 추석과 관계없거니와 사실 일반 소비자들이 선물의 가격을 크게 걱정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못내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무심코 선물을 ‘잘못’ 전했다가 괜한 오해를 받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5만원’(김영란법이 정한 선물 가액기준)은 추석 선물의 보이지 않는 ‘절대 기준’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소비 심리를 반영해 각 유통업체들은 김영란법 걱정 없는 5만원 맞춤형 추석 선물 혹은 기획전 세일 등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혹자는 이러한 선물들을 ‘영란세트’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5만원이 소비 심리와 유통 환경을 바꾸고 있다.

‘4만9900원 기획전’부터 ‘영란세트’까지

김영란법은 유통업체들의 적응력과 창의력을 키웠다. 어떻게 해서든 5만원 이내의 단가로 판매할 수 있도록 상품들을 구성했다.

우체국쇼핑몰은 2016년 추석선물 할인대잔치 기획전에 ‘4만9900원 프리미언 선물추천’ 코너를 별도로 신설했다. 해당 기획전을 통해 가장 비싸게 판매되는 선물 세트 제품의 가격은 4만9900원이다. ‘햇과일선물’·‘바다선물’·‘생활건강선물’ 등 3개 카테고리로 분류돼 있어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선물 구성을 김영란법 걱정 없이 선택할 수 있다.

우체국 쇼핑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부담 없는 선물을 찾는 고객들을 위해 특별 기획전을 마련했다”며 “시중에서 6만~7만원에 판매되는 사과·배 등 과일이나 과일과 굴비, 전복, 표고버섯 등 인기 선물 품목들을 최대 4만9900원에 판매하는 것이 이번 기획전의 의도”라고 설명했다.

▲ NS홈쇼핑 온라인 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영란세트. 출처=NS몰

NS홈쇼핑은 5만원 미만 상품 구성에 집중하며 관련 상품의 특별 기획전들을 마련하고 있다. NS홈쇼핑의 경우, 김영란법 적용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농축수산업계와 연관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홈쇼핑 업체들이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과는 달리 여러 가지 대비책이 필요해졌다. 이에 NS홈쇼핑에서는 ‘건강한 추석’ 기획전을 통해 김영란법에 준하는 금액선의 농수축산물세트인 ‘영란세트’를 별도로 판매하고 있다.

NS홈쇼핑 관계자는 “법의 적용을 받는 분들을 위해 5만원 미만의 선물 상품 및 기획전들을 개발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점차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식품업계, “고마워요, 김영란법”

가공 식품을 제조하는 식품업체들은 김영란법으로 인한 ‘5만원’ 소비 패턴을 반기는 눈치다. 가공식품 선물 세트의 경우,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격이 5만원을 초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저가의 선물 세트를 찾는 소비자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계산이다. 주요 식품 업체들은 김영란법과 관계없이 이전보다 더 적극적인 추석선물 마케팅으로 많은 소비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추석을 약 한 달 넘게 앞둔 지난 3일 사전예약행사를 진행하는 등으로 ‘한 발 빠른’ 추석 프로모션을 시작했다. 또한 지난해 추석 대비 물량을 32% 수준 늘린 총 225여종, 846만 세트를 준비했고 특히 명절 인기 선물 품목인 ‘스팸’ 선물 세트를 지난해 추석보다 20% 이상 물량을 늘리면서 역대 최고 매출 달성을 예상하고 있다.

▲ CJ제일제당 2016년 추석 선물세트 '스팸연어 2호' 출처= CJ제일제당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소비자들은 보다 합리적인 가격대에 실용적인 선물 세트를 구매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CJ제일제당의 주력 세트인 3~4만원대 스팸 선물 세트와 복합형 선물 세트의 큰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동원F&B의 경우, 자사 온라인 몰인 동원몰에서 2016 추석선물대전을 진행함과 동시에 8월 4주차부터 대형 유통채널 본 판매를 시작했다. 동원 역시 인기 선물 품목인 참치캔을 앞세운 2~4만원대 선물 세트들을 지난해보다 10% 더 확대하는 등으로 ‘5만원’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대상 청정원은 올 추석에 총 140여종 440만개 선물 세트를 출시했다. 이는 130종 340만세트를 출시한 지난해보다 대폭 늘어난 수치다. 마찬가지로 메인 제품인 다양한 식품들을 중심으로 한 5만원 이하 선물 세트 구성을 지난해보다 강화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합리적 가격의 선물 세트를 찾는 소비자들이 이전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가공식품 선물 세트는 전에 없던 특수를 누릴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며 “김영란법 이슈로 인한 ‘5만원’ 소비패턴은 업계에 새로운 국면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생활용품 업계 “김영란법 악영향 전혀 없다”

생활용품 업계의 상황도 식품업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저가 선물 품목에 대한 관심 집중으로 인해 오히려 ‘호재’가 기대되고 있다. 거기에 ‘옥시 사태’로 인해 시장의 큰 영향력을 자랑하던 업체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은 나머지 업체에게는 기회로 비쳐지기도 했다. 피죤, 애경 등 생활용품 업체들은 2~4만원대 실속형 선물 세트를 지난해보다 더 확대하는 등으로 대처하기 시작했다.

생활용품 업계 관계자는 “김영란법 적용 이후라도 범용적으로 사용되는 생활필수품에 대한 수요는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명절 선물의 경우, 중저가 품목에 대한 관심 증가는 생활용품 업계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류업계의 고민 “이 가격에 어떻게?”

명절을 앞두고 ‘5만원’ 소비패턴을 대하는 주류업계의 입장은 생산하는 품목에 따라 조금씩 상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중적 주류인 소주나 맥주 등을 메인으로 생산하는 주류업체들은 식품업체들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생산 품목의 단가 자체가 높지 않기 때문에 명절 선물 세트의 구성에 많은 고민이 필요 없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명절 선물 세트를 별도로 내놓지 않기도 한다. 반면 같은 상황을 두고 위스키 등 고급 주류를 판매하는 업체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 출처= 픽사베이

몇십만원대 고급 주류는 특히 명절 시즌에 각광받는 인기 선물 품목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김영란법으로 소비자들에게 ‘5만원’이라는 심리적 제한선이 설정된 이후에는 완전히 달라졌다. 더 큰 문제는 주요 품목들의 생산 단가 자체가 높은 탓에 선물 세트의 가격을 5만원대로 맞추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에 있다.

위스키 업체 한 관계자는 “그간 위스키 등 주류들이 명절 선물로써 각광받은 것에는 각 제품들의 ‘고급’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는데, 소비 심리의 변화로 이러한 품목들의 수요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됐다”며 “그렇다고 명절을 코앞에 두고 저가 품목을 급하게 내놓을 수도 없는 입장이라 여러 모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패션업계 “암중모색 필요하다”

패션업계에는 지난 몇 년간 지속된 ‘아웃도어’ 호황기를 지나 ‘골프의류’라는 새로운 대세가 나타나고 있었다. 업계의 조사에 따르면 골프의류 시장은 2013년 2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3조원으로 약 15.3% 성장했다. K2·형지·세정 등 주요 아웃도어 업체들도 골프 브랜드를 새롭게 론칭하는 등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김영란법에서 골프 등 접대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전해지자 이제 막 탄력을 받아 성장이 시작되던 골프의류 업계는 발목을 잡혔다. 내수의 부진으로 SPA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여러모로 상황이 어려워진 업계가 찾은 새로운 돌파구처럼 여겨졌던 골프의류 시장에 제동이 걸렸다. 예전 같았으면 매출 실적이 대폭 증가하는 명절 특수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 출처= 와이드앵글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그리고 김영란법 적용 이후의 소비 트렌드를 적절하게 반영한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업계의 상황은 이전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5만원 소비 기준에 맞춘 중저가 제품 라인의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외식업계 “거품을 빼야 산다”

‘5만원 소비’에 가장 많은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업계는 외식업계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2016 외식산업경기전망지수’를 통해 “3분기 연속으로 0%대를 기록한 경제성장률과 5~6월 2개월 연속 100 이하(99)에 머무른 소비자 심리지수, 그리고 김영란법의 본격 적용 등을 감안할 때 3분기 업계 전망 역시 좋지 않다”고 밝혔다

고급 한정식집, 유흥업소 및 고급 술집의 매출감소와 저가 업종 변경 등은 각 지역의 소규모 외식업체들에까지도 많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지난 8월 22일 한국외식업중앙회·유흥업중앙회·중화음식업협회 등 외식업 관련 단체들은 간담회를 열고 김영란법 시행이 지역 외식업계에 미치는 영향과 문제점에 대해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청탁금지법의 시행의 배경은 공감하나 음식비 3만원, 선물 5만원 등의 액수 제한은 지역 식당 매출과 유통업계 매출의 감소를 야기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대책방안으로는 기준에 맞는 저가 신메뉴 개발, 고급 식당의 브랜드 가치 증대 및 매출 다양화를 위한 정책 지원 등이 제시됐다.

업계 관계자는 “횟집이나 한정식집 등 고급 식당은 다소 곤란을 겪을 수 있겠지만, 불필요한 제반 비용을 줄이고 음식의 맛과 품질에 중점을 둔 저가 메뉴를 개발한다면 고객 저변을 확대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업계 자체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지나친 시장의 축소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