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오른 아스팔트 마냥 뜨거웠던 한여름의 기세도 한풀 꺾이고 차츰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여름이 어찌나 뜨거웠던지 열기가 가라앉아 조금은 선선하게 느껴지는 바람이 너무나도 반가울 지경이다. 맨다리가 어쩐지 낯설고 썰렁하게 느껴진다면 본격적인 스타킹의 계절이 찾아온 것이다. 요즘 스타킹은 색상도 패턴도 매우 다양하다. 지금은 신고 다니다가 올이라도 나가면 근처 편의점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기도 하지만 처음 시작은 그렇지 않았다.

현재는 여성속옷 브랜드 비비안으로 유명한 ㈜남영비비안은 1950년대부터 한국 스타킹의 변화를 이끌어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스타킹으로 알려진 ‘무궁화’ 스타킹도 1958년 남영비비안에서 생산한 것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은 뻣뻣한 목양말을 주로 신었고, 스타킹이 소개되긴 했지만 외국산 제품이 암시장을 통해 아주 소량 들어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또한 50~60년대 스타킹은 우선 스타킹용 원단을 짜서 양말 모양으로 재단한 후에 다시 봉제를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다리 뒤쪽에는 원단을 꿰맨 봉제선이 그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봉제를 한 후에는 형태를 잡기 위해 다리 모양의 틀에 꿰어서 열처리를 하면 제품이 완성됐다. 색상은 흔히 살색이라고 부르는 살구색 한 종류였고, 형태도 지금과 같은 팬티스타킹이 아닌 허벅지까지 오는 밴드 스타킹이 전부였다. 스타킹용 원사는 외국에서 수입해 들여왔고, 당시에는 포장기술조차 발달하지 않은 상황이라 상표를 인쇄한 포장지도 일본에서 주문해 가지고 와야만 했다.

스타킹에서 보기 싫은 봉제선이 사라진 것은 1962년부터였다. 미리 짠 원단으로 스타킹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계에서 바로 다리처럼 둥근 모양의 완제품이 생산되는 이 심레스(Seamless) 스타킹은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재봉선이 감쪽같이 사라진 스타킹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했고, 비비안의 심레스 스타킹은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팔려나갔다고 한다. 또한 1년 후인 1963년에는 국내 최초로 팬티스타킹이 선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선보인 팬티스타킹은 1970년대 초반 미니스커트가 열풍을 불러일으키면서 덩달아 크게 유행했다. 고급의류에 속해 1970년대 스타킹은 명절 선물로도 각광받았다.

1980년대 초반까지 국내에서 생산된 스타킹의 주된 소재는 나일론사였다. 나일론사에 신축성이 부족해 스타킹이 다리에 제대로 달라붙지 않아 불편한 점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점을 보완해 남영비비안에서 1983년 출시한 고탄력 스타킹은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스판덱스사를 소재로 해 신축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한 이 스타킹은 소재의 특성상 기존의 스타킹보다 두 배 이상 비싸 처음에는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고탄력 스타킹의 편리함을 느낀 여성들의 입소문을 타고 크게 히트하게 되었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 이 고탄력 스타킹은 더욱 인기가 높아지고 시장의 판도 자체를 바꾸는 역할을 하면서 일종의 고유명사처럼 불리게 되었다.

익숙한 ‘살색, 커피색, 검은색’ 스타킹에서 벗어나 1980년대 후반부터는 스타킹에도 패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유행의 변화를 감지한 남영비비안은 1987년 국내 최초로 패션스타킹을 내놓았다. 초기의 패션스타킹은 아직 시작 단계라 색상이나 디자인 면에서 화려하진 않았다. 하지만 꽃무늬나 작은 기하학 무늬 등을 표현하여 민무늬의 살색 일색이던 스타킹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거의 모든 스타킹 브랜드들이 무늬가 들어간 패션스타킹을 선보일 정도로 인기는 크게 확산되었다.

현재의 패션스타킹은 화려한 꽃밭을 연상케 하는 큼지막한 꽃무늬를 비롯해 스트라이프, 도트, 망사 등 패턴의 종류도 매우 다양해져 매 시즌 20가지 이상의 디자인으로 선보이고 있다. 색상도 기본에서 탈피하여 피치스킨이나 스카이블루와 같은 사랑스러운 파스텔 톤부터 블루그린, 레드와인, 바이올렛 등과 같이 세련되고 개성 넘치는 컬러까지 색상의 구애가 거의 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