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Festo

로봇 시대가 도래했다. 그중에서도 자연의 원리를 적용한 ‘생체모방 로봇’ 산업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힌다. 미국 컨설팅 전문기관 FBEI는 2025년까지 자연 모사기술을 응용한 세계 시장규모가 1조달러(약 1100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인류는 자연을 희생시켜 발전을 이뤄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연과 인류가 공존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가장 알맞은 연구 분야가 생체모방기술이다.

지구생물은 35억년의 긴 세월 동안 진화를 거듭하며 환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최적의 특성과 기능을 갖추었다.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동식물은 자연이 만든 최고의 모델인 셈이다. 학자들은 ‘생체모방기술’을 연구하면 지속 가능한 기술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십억년에 걸쳐 진화를 거듭해온 자연의 지혜를 통해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믿음에서다.

자연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에서 탄생한 생체로봇. 자연의 지혜가 담긴 생체로봇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봤다. 생물체의 외형은 물론 골격, 생체 메커니즘을 쏙 빼닮은 세계 각국의 생체로봇을 만나보자.

1 자연에 배운다 ‘생체모방기술’

생체모방기술(Biomimetics)은 자연에서 관찰되는 디자인적 요소나 생물체의 특성을 연구하고 모방하는 기술을 말한다. 자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연구한 뒤 이를 모방해 인류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다. 처음 등장한 계기는 미국 생태학자 재닌 M. 베니어스 박사(Janine Benyus)가 쓴 책 <생체모방>에 의해 학문적으로 정립되면서부터였다.

인류의 생체를 모방한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고대 선사시대 동물들의 이빨을 보고 칼을 만드는 행위부터 생체모방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15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날아다니는 새를 유심히 관찰해 비행체를 설계했다. 19세기 라이트 형제는 독수리가 자신의 몸으로 난류를 줄이는 것을 분석해 비행기를 안정되게 만들었다. 이순신 장군 역시 거북의 등껍질을 보고 영감을 받아 거북선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생체모방은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국가대표 수영선수들은 상어의 비늘 모양을 모방해 만든 전신 수영복을 입고 금메달을 땄다. 너무 좋은 성능 때문에 국제수영연맹은 2010년부터 국제대회에서 전신 수영복 착용을 금지했다. 또 일본 고속열차 신칸센은 물총새가 사냥할 때 물방울이 잘 튀지 않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디자인됐다. 새로 바뀐 신칸센은 터널을 지날 때 공기 압력을 최소화해 소음이 크게 줄었다.

▲ 물총새를 모사해 디자인 한 신칸센. 출처=위키미디어

지난 7월에는 한·미 공동연구진이 살아있는 생체 세포로 구성된 가오리 로봇을 만들어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의 표지를 장식했다. 겉모습과 수영하는 모습 모두 가오리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은 이 로봇은 가오리의 근육 구조를 본떠 만들어졌다.

▲ 가오리를 모방한 로봇(왼손 유리판 위)과 실제 가오리(오른손 위) 모습.출처=Karaghen Hudson

미국, EU,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생체모방·생체모사 기술을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미래 기술로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13년 정부 주도 아래 155억원의 예산을 들여 서울대에 ‘생체모방 자율로봇 특화연구센터’를 개설했다. 이 센터는 무기체계의 초소형화를 선도하고 감시정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생체모방 자율로봇을 개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보안에 철저한 기관인 만큼 아직 많은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다. 현재도 세계 각국에서 도마뱀, 나비, 치타, 코끼리, 고래 등의 동물을 모사한 생체모방 로봇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2 생체 로봇 도감

동물형

 

게코 도마뱀 로봇

스탠포드 대학에서 개발한 ‘스티키봇(Sitckybot)’. 울퉁불퉁한 벽뿐만 아니라 매끄러운 면도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게코도마뱀(Gecko)에게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게코도마뱀의 발을 확대해보면 머리카락보다 500배 많은 털이 수백개 나 있고 이 끝이 다시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다. 이 털끝에 작용하는 힘을 통해 게코는 접착력을 얻는다. 스탠포드대 연구팀은 게코도마뱀의 이러한 특성을 접목해 스마트테이프도 만들었다. 유리 벽에 단단히 붙고 또 쉽게 떨어지는 이 테이프의 표면은 게코의 발바닥처럼 수천 개의 섬모로 뒤덮여 있다. 일반 접착식 메모지와 비교했을 때 스마트테이프의 접착력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하다.

치타 로봇 

미국 MIT 생체모방기술 로봇연구소(Biomimetics Robotics Lab)가 개발한 ‘치타로봇(MIT Robotic Cheetah)’. 최대 시속 29마일로 현재 개발된 4족 보행 로봇 중 가장 빠르다. 치타의 유연성을 모방해 만들어져서 33㎝ 높이의 장애물을 가볍게 뛰어넘는가 하면 억지로 밀어도 다시 일어나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향후 재난 현장 등에 투입될 로봇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뱀 로봇

미국 카네기멜론대 생체로봇공학연구소(CMU Biorobotics Laboratory)에서 개발한 ‘스네이크 몬스터(Snake Monster)’. 사용자가 원하는 형태로 조립할 수 있는 모듈러 방식 로봇이다. 평소에는 6개의 다리로 뱀처럼 기어 다니는데 다리 하나하나를 떼어 몸체 부품과 연결하면 거미처럼 걸어 다닐 수 있다. 거친 지형을 이동할 때는 무엇보다도 내장된 액추에이터가 탄력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발걸음을 지형에 따라서 조정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망둥이 로봇

▲ 출처=Rob Felt, Georgia Tech

조지아공대 카네기멜론대 공동 연구팀이 만든 ‘머디봇(MuddyBot)’. 꼬리의 힘과 2개의 다리를 활용해 20도 경사의 모래 언덕을 오를 수 있는 말뚝망둥이를 모사해 만들었다. 대부분 로봇이 경사진 모랫길이 있는 곳에서 움직일 때 어려움을 겪는데, 말뚝망둥이가 앞지느러미를 목발처럼 사용해 모래나 모래 경사 길을 지나다니고 장애물을 만나면 앞지느러미와 꼬리를 사용해 경사 난 길을 올라가는 점에 착안했다. 연구 성과는 지난 7월 <사이언스(Science)>에 소개되기도 했다.

곤충형

 

거미 로봇

독일 슈투트가르트대학 컴퓨팅 디자인연구소(ICD, Institute for Computational Design) 연구진이 만든 거미 로봇. 거미처럼 꼬리에서 실을 뽑아내면서 둥지를 만들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두 대의 ‘스파이더봇(Spiderbot)’이 벽을 오르내리면서 탄소섬유를 방출해 사람들이 편하게 들어가 쉴 수 있는 해먹을 만드는데, 연구팀은 이 기술을 ‘필라멘트 구조의 모바일 로봇 제작시스템(Mobile Robotic Fabrication System for Filament Structures)’이라고 명명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여러 대의 스파이더봇이 협력하면 복잡한 건축 구조물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나비 로봇

페스토(Festo)가 만든 ‘이모션 버터플라이(eMotion Butterflies)’. 무게가 32g에 불과한 이 로봇 나비는 작은 모터로 작동하는 50㎝ 길이의 날개로 약 4분 동안 날 수 있다. 초당 1~2회 정도 날개를 움직여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속도는 실제 나비보다 조금 빠른 초속 2.5m 정도다. 위치 추적과 실내 GPS 기술을 연동해 나비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개미 로봇

독일 기술 기업 페스토(Festo)가 만든 ‘바이오닉 개미(Bionic Ants)’. 길이는 13.5㎝의 로봇 개미는 실제 개미처럼 떼를 지어 움직이면서 협업할 수 있다. 눈에 장착된 스테레오 카메라와 배 부분에 있는 광센서로 위치와 주변 지형을 파악해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연구팀의 최종 목표는 단순히 개미의 외형을 본뜨는 것이 아니라 개미 군집의 집단 지능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형

 

재난 구조 로봇 ‘휴보(HUBO)’

카이스트가 개발한 인간형 재난구조 로봇 휴보. 지난해 세계 최고 재난구조 로봇대회 ‘DRC(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운전하기, 차에서 내리기, 문 열고 들어가기, 밸브 돌리기, 드릴로 구멍 뚫기, 돌발미션, 장애물 돌파, 계단 오르기 등 8가지 과제를 모두 완수한 로봇은 ‘휴보’를 포함하여 단 3개뿐이었다고 전해진다. 휴보 연구진은 현재 훨씬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감정 인식 로봇 ‘페퍼(Pepper)’

일본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사람의 표정이나 목소리를 통해 상대에게 관심을 표현하고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많은 일본에서는 페퍼를 통해 독거노인의 약 먹는 시간을 점검하거나 몸의 이상을 감지하는 등의 간호 실험이 진행되기도 했다.

스칼렛 요한슨 닮은 ‘마크원(Mark 1)’

홍콩의 릭키 마(Ricky Ma) 그래픽 디자이너는 1년 반 동안 5만달러를 들여 미국의 인기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을 모델로 휴머노이드 로봇을 완성했다. 골격 대부분은 3D 프린터로 제작했으며, 내부에 서보 모터와 전자기기를 내장하고 실리콘으로 만든 피부를 덮었다. 또한 눈에 있는 카메라로 얼굴을 인식·추적하는 기능과 음성 제어 기능도 탑재했다. ‘예쁘다’고 말하면 ‘감사합니다’라는 대답도 한다.

최초의 가정용 로봇 ‘지보(Jibo)’

▲ 출처=Jibo

미국 MIT 미디어랩 신시아 브리질(Cynthia Breazeal) 교수팀이 개발한 최초의 가정용 로봇이다. 지난 2014년 인디고고에 등장한 지보는 당초 목표의 2288%에 해당하는 371만410달러를 거둬들여 가장 성공적인 펀딩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높이 28㎝, 무게 2.7㎏으로 고해상도 카메라를 탑재해 사람들의 얼굴을 인식하고 화상채팅이 가능하며 가족들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출시를 앞둔 지보는 당초 예상과 달리 북미 지역에서만 출시된다고 밝혀 비난을 사고 있다.

3 ‘생체모방기술’ 미래 먹거리 될까?

생체 모방과 관련해 요즘 가장 큰 성장세를 보이는 분야는 생체인식(Biometrics)시장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트랙티카(Tractica)는 전 세계 생체인식시장이 2024년 149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향후 10년간 금융, 헬스케어, 정부 부문이 생체인식 시장의 주요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지문, 홍채, 음성 인식이 생체인식 방식 중 가장 큰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측된다.

생체인식 기술 관련해 안면인식, 지문인식, 홍채인식이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44.7%, 31.7%, 8.6% 순이다. 애플은 아이폰 터치 ID를 탑재하고 애플페이에 지문인식을 지원하는 등 스마트폰 지문인식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2015년에는 아이폰6S·6S플러스는 새로운 방식의 터치 지문인식 기술 ‘포스터치(Force Touch)를 적용했다.

구글은 2015년 출시한 차기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M 6.0(마시멜로)’과 안드로이드 페이에 지문인식 기능을 정식 추가하며 처음으로 안드로이드 OS에 생체인식 기술을 지원한다. 구글 플레이에서 앱 다운로드 또는 결제 시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대신 지문을 입력하면 결제가 승인되는 방식이다. 또한 구글은 머신러닝을 활용해 생체인식기술을 더욱 발전시킬 전망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음성인식 ‘코타나’, 지문·안면인식으로 로그인하는 ‘윈도헬로’ 등 생체정보를 활용한 서비스를 지난 7월 29일 발표한 ‘윈도우 10’에 적용했다. MS는 한국어판은 아직 개발 중이며 이른 시일 내 완료해 서비스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마존은 안면인식을 통한 전자결제 방식과 사용자가 스마트폰을 귀에 갖다 대는 경우 전면 카메라가 사용자 귀 모양을 인식해 잠금을 해제해주는 특허를 취득했다. 귀 모양 인식으로 잠금 해제뿐만 아니라 인식되는 사용자에 따라 벨소리, 버튼의 다양한 설정을 변경할 수 있다.

알리바바는 마윈 회장이 직접 나서서 얼굴 자체를 비밀번호처럼 활용하는 결제시스템 ‘스마일 투 페이’를 선보였으며, 지문인식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기술로, 알리바바는 자사 간편결제 서비스 ‘알리페이’에 결합할 계획이다.

삼성은 갤럭시 S6에 지문인식 기능을 탑재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모바일 결제서비스 ‘삼성페이’를 선보인 데 이어 홍채인식 기술을 장착한 갤럭시 노트 7을 출시했다.

국내 생체인식시스템 전문기업으로는 슈프리마, 유니온커뮤니티, 니트젠앤컴퍼니 등 40여 개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3개 기업의 매출합계는 700억원 수준이며 중국, 인도, 일본 등 해외 시장 진출 비중이 30% 이상으로 수출비중이 매우 높다.

생체인식 기술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 마다 각기 다른 생체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도난이나 위조의 염려가 적다는 점은 생체이기에 갖는 장점이다. 자연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모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자연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과학도 발전한다. 자연 속에 답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연의 놀라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며, 지금도 생체모방 기술의 역사는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