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음일석

 

아산의 숭천사상(崇天思想)은 특별하다. 산은 인간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영기(靈氣)를 지니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거대한 생명력이다. 산은 천지의 영육(靈肉)이며 바위는 천지의 뼈이고 나무와 풀은 영육에 뿌리는 내리고 기를 받아먹고 사는 생명체라는 것이다.

천지간에 모든 만물에는 기가 운용되고 있고 특히 산에는 영기가 있게 마려인데, 거대한 생명체 안에서 기를 뽑아 그려야 기운생동한 그림이 된다고 했다. 산을 그릴 때 바위와 나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 같은 생각에서다. 수묵산수에 뼈가 없으면 정신, 즉 혼이 깃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산은 가장 이상적인 삶을 여위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것, 즉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도교사상을 강조한다. 산과 사람이 떨어져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산에 깊숙이 들어가 보면 결국 사람은 산, 즉 자연과 동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 열고파금

 

“그림의 기운생동은 산에서 찾아야 해. 산의 기운이 모이는 곳이 명당이라고 할 수가 있어. 한국화에서 기, 즉 맥이 흐르는 곳에 절이나 마을, 집을 그려 넣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맞지 않지. 산수화가 되기 위해서는 산의 혈이나 맥의 흐름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

아산의 말은 집이나 마을을 그릴 때는 자연의 이치를 따져서 제 자리를 찾아줘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곧 자연과의 조화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산의 산수에서 집이나 절, 마을 등 인간의 거처를 그려 넣는 곳은 모두 산의 기가 뭉친 명당이라는 것이다.

아산의 숭산하는 정신을 이해하고 나면 그의 먹그림에서의 기운생동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를 알 수 가 있다. 그를 기의 화가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고불심

 

1960년대 중반, 내가 용아빌딩 아산 화실을 자주 들락거렸을 무렵, 그곳에는 낡은 축음기와 엘피판 판소리 음반이 몇 장 있었는데, 임방울의 <수궁가>와 <적벽가>는 아신이 어찌나 자주 들었는지 판이 닳고 닳아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임방울의 소리에는 민초들의 한이 서려 있네.”

아산은 좋은 소리와 좋지 않은 소리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귀 명창이다. 소리의 깊이와 가락의 흥을 이해 한 아산은 판소리 한의 리듬을 운필에 응용하고 있다. 먹의 농담이 풀리는 것을 보면 알 수 가 있다.

어쩌면 이삼만의 글씨를 좋아하는 것도 그 밑바닥에 깔려 서로 통하는 서민정서 때문이리라. 그는 먹그림의 탈속과 무심필의 세계의 기초는 무욕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믿고, 무욕은 사대부나 세도가들의 삶보다는 민초정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 와설면운

 

그 때문에 사대부 중심의 문인화풍 문기와 양주팔괴나 팔대산인의 문기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아산의 기운생동 한 문기는 임방울 판소리에서 느끼는 한의 가락과 이삼만의 글씨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하고 자유분방함과도 일맥상통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삼만과 이광사를 좋아하는 아산의 글씨는, 함부로 쓰지는 않지만, 그의 먹 산수 못지않게 탈속한 고격을 갖추었다. 이 때문에 아산의 화제 서체를 보면 이삼만이나 이광사의 글씨를 연상케 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붓을 칼날처럼 세우고 한 획 한 획 용트림하듯 운필한 아산의 힘찬 글씨는 매우 독창적이다. 그의 서체는 옛 명인들의 간찰(簡札)을 많이 대하고 전국 곳곳의 비문을 찾아다니며 배운 나머지 스스로 아산 서체를 만들어 낸 것이다.

▲글=문순태(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