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설(滿雪)

 

1994년 고희(古稀)를 일 년 앞두고 아산은 약속처럼 곡성군 죽곡면 연화리로 들어간다. 연화마을은 앞으로 보성강이 여울물처럼 흐르고, 마을 뒤로는 524m 화장산(華藏山)이 두 팔로 껴 안 듯 지켜 서 있는 자연마을이었다.

꽃을 감추는 산, 화장산-. 불교에서는 이를 극락세계라던가. 아산은 조용히 은거하듯 화장산 기슭에 터를 잡는다.

그는 은자(隱者)처럼 살기를 원했다. 집 주위를 빙 둘러 온통 대나무를 심어 집안이 보이지 않게 했다. 아산은 자신이 사는 집을 천옥(天獄)이라고 했다. 아산은 먹 색깔을 매우 중시했다. 수묵화는 먹을 어떻게 쓰느냐가 좌우하기 때문이다.

 

▲ 설매(雪梅)

 

“내 경우는 먹을 여분 있게 갈아 2시간 정도 가라앉힌 뒤, 위의 먹만 찍어 쓴다. 어떤 사람은 먹을 재워서 숙묵(宿墨)을 쓰기도 한다는데 먹물에는 아교가 들어있어 먹을 재우면 먹색이 죽어서 못쓴다. 그림을 들여다보면 숙묵을 썼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먹색의 변화에 민감한 그는 비가 올 땐, 아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비가 오면 화선지에 습기가 많아지고 수분을 급히 빨아들여 먹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연화리로 들어온 후 아산은 그림에만 몰두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가 일지 않으면 붓을 잡지 않았지만 한 번 붓을 잡으면 몰입했다. 장년기 한 창 때는 사흘 만에 대작을 그려냈던 그였다. 그러한 열정이 되살아난 것이다.

 

▲ 설산(雪山)

 

“나는 산을 매우 숭고하게 생각한다. 우리가 산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고, 죽어서도 결국 산으로 간다. 산은 하늘에 가까이 가기 위한 곳이자 산에게 나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은 세상이 시끄러우면 산으로 올라간다.

그들을 선인(仙人)이라 한다. 그러한 산을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떼어내기 위해 안개로 중간을 차단한다. 그 숭고한 산을 속세의 홍진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라고 해석해도 되겠다.”

첩첩산중을 그려도 단순히 사실적으로 그리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고, 물이 흐르고, 구름으로 가리고, 빈 하늘이 감싸면서 영기(靈氣)가 느껴질 때에 비로소 뜻을 얻는다고 말했다. 숭천(崇天)의 세계이다.

2000년 11월 아산은 회고전(回顧展)을 갖는다. 광주시립미술관이 개관 8주년 기념으로 아산을 초대했다. 그의 나이 75세였다.

“마지막 전시라고 생각하고 있지. 좋은 그림이 있어야 하는데 자구 비가와서 일을 통 못했어. 몸이 좋지 않은 탓도 있고, 신작을 해보려 해도 비오면 습기가 많아서 먹빛이 곱게 나오지 않거든. 먹은 참 미묘한 것이라서….

 

▲ 설운(雪雲)

 

회고전은 한국 수묵산수에 있어 한 획을 긋는 전시회였다. 남종화가 어떻게 한국 땅에 수용돼 한국의 남화가 되었는지 보여준 전시회였다. 남도화(南道畵)이다. 아산은 남화가 추구하는 세계에 대한 공부와 이를 한국적 토양에서 재해석, 창조해낸 데서 평가 받을 만하다.

아산은 ‘예술이란 손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불교의 염화시중 미소와 그 원리가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 “수묵화는 잘 그리기도 어렵고, 보는 눈도 수준에 이르러야 그림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좋은 그림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림이나 글은 ’반안반심(半眼半心), 즉 반은 눈으로 보고 반은 마음으로 본다고 하지 않는가. 눈을 기쁘게 하는데 그치지 말고 마음을 기쁘게 하고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그림이고 글씨다.”

△글=손정연(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