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싸이월드’를 원조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기억한다. 한국에 싸이월드가 있다면 미국엔 ‘마이스페이스’가 있다. SNS 원조이자 억대 유저를 거느리고 있던 서비스다. 신생 SNS에 불과했던 페이스북에 완전히 밀리면서 빠른 속도로 몰락해버렸지만. 싸이월드와 함께 마이스페이스는 원조의 자존심을 지키지 못했다. 그 원인을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보다 복잡한 속사정이 있었다.

 

페이스북 등장 이전의 마이스페이스

마이스페이스는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톰 앤더슨과 크리스토퍼 드울프다. 5년 동안은 행복했다. 사람들은 마이스페이스를 2차 현실로 받아들였다. 현실과 가까운 사회생활 무대로 삼았다. 대규모 유저 확보는 시간 문제였다. 2008년까지 2억명 이상의 유저를 확보했다. 월간 방문자는 7600만명에 달했다. 탄생 이후 유사 서비스가 속속 등장했지만 원조는 강했다.

무서울 게 없어 보였다. 그런데 위협적인 존재가 등장했다. 페이스북이다. 처음엔 소규모 대학생 커뮤니티 정도로 보였다. 마이스페이스의 상대가 되기엔 체급 자체가 달라보였다. 그런데 페이스북이 빠른 속도로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이냐 마이스페이스냐를 두고 유저끼리 편을 갈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예전 같았으면 싱거운 대결 구도로 보였을 테지만 원조의 선점 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다.

마이스페이스 유저 이탈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다. 그 많던 유저는 페이스북 혹은 트위터로 헤쳐 모였다. 그리고 2008년 4월 마이스페이스는 SNS 선두 자리를 페이스북에 내줬다. 페이스북이 억대 유저를 순식간에 모으면서 승승장구할 때 마이스페이스의 기업가치는 내리막길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페이스북이 마이스페이스를 죽였다.” <포브스>는 이렇게 논평했다.

미디어 재벌과 잘못된 만남

‘오버워치’ 때문에 ‘서든워치2’가 망한 것은 아니다. ‘오버워치’의 인기가 너무 많아서 ‘서든워치2’가 서비스 종료를 결정할 만큼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었고, 복잡한 원인이 있었다. 마이스페이스도 마찬가지다. 페이스북이라는 강력한 경쟁 서비스의 등장에서만 몰락 원인을 찾을 순 없다. 더 복잡다단한 요인이 얽혀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잘못된 만남’ 때문에 마이스페이스가 잘못됐다. 급성장하던 시절인 2005년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의 손에 회사가 넘어갔다. 머독이 소유한 뉴스코퍼레이션은 5억8000만달러에 마이스페이스를 인수했다. 마이스페이스 입장에선 성장을 위한 기회를 얻은 셈이었는데 몰락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일단 두 회사는 조직 문화가 달랐다. 마이스페이스 직원들은 스타트업 출신답게 자유분방했다. 그런데 뉴스코퍼레이션은 거대한 관료주의적 문화를 지닌 회사였다. 머독은 독자 경영을 보장하기보다는 마이스페이스를 물들이려고 했다. 뉴스코퍼레이션이 상장사인 탓에 실적 압박도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시스템에 제대로 녹아들기 전에 마이스페이스 직원들은 요구받은 매출 목표액을 맞추는 데 급급했다.

궁합이 맞지 않는 이 만남은 오래 가지 못했다. 둘은 결국 2011년 6월 갈라섰다. 뉴스코퍼레이션은 온라인 광고업체 스페서픽미디어에 마이스페이스를 넘겼다. 당시 매각 가격은 3500만달러에 불과했다. 기존 인수 가격의 6% 수준인 헐값이다. 2014년 머독은 한 행사에서 마이스페이스 경영 실패를 인정했다. “우린 마이스페이스의 원래 경영진에 믿음을 지녔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을 완전히 바꿨다. 비싼 값을 치르고 기회를 잃었다.”

유저들의 이유 있는 짜증

역시 ‘머독이 마이스페이스를 망쳐놨다’고만 하면 부족한 분석이다. 디테일한 운영방침과 실제 행보를 되짚어 봐야지만 더 선명한 몰락의 맥락을 읽어낼 수 있다. 일단 실적 부담은 무리한 광고 사업으로 나타났다. 웹사이트에는 무거운 배너 광고가 덕지덕지 붙었다. 그 결과 페이지를 불러오는 속도가 현격하게 느려졌다. 광고가 늘어갈수록 이용자들의 짜증지수는 치솟았다. 구글과 9억달러 규모의 검색광고 계약을 체결하고 나서는 광고가 더 많아졌다. 이용자 다수는 오로지 광고 때문에 마이스페이스로부터 등을 돌렸다.

가상공간의 물을 흐리는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잡아내지 못한 것도 아쉬움을 남겼다. 여느 SNS든 있는 일이긴 하지만 마이스페이스에서는 유독 댓글 스팸이나 가짜 친구 초청 같은 문제가 특히 심했다. 유명인 계정 해킹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야심차게 채팅 서비스를 추가했을 때는 남녀의 불건전한 만남을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모두 다 서비스 운영에 있어 미숙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다른 요인도 수두룩하다. 마이스페이스가 어린 세대에게 지나치게 의존한 탓에 광고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기는 어려웠다. 광고주들은 젊은 층의 구매력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특유의 변덕도 못마땅하게 여겼다. 페이스북과 달리 다른 콘텐츠·플랫폼 사업자와 서비스 연계를 거부하는 폐쇄적인 태도도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았다. 웹사이트 디자인을 큰 폭으로 뒤바꿔버리는 행태도 그나마 남아있는 유저들의 불만을 샀다.

94년 역사 <타임>과 함께 재기를 꿈꾸다

올해 초 <타임>이 다시 마이스페이스를 인수했다. 모회사를 통째로 사들인 것이다. 94년 역사를 지닌 전통 미디어 <타임>이 마이스페이스를 부활시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SNS 왕좌를 향한 레이스에서 마이스페이스는 너무나도 뒤로 밀려났다. 갈 길이 멀다. <타임>의 품에 안긴 이후인 지난 5월에는 이런 악재도 발생했다. 계정 암호 정보 4억2700만건이 유출됐다. 유출된 정보는 다크웹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