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의 주가는 민영화 이야기만 나오면 상승한다. 반대로 민영화가 불발될 것으로 예상되면 주가는 하락한다. 물론 실적 부문을 전혀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민영화 이슈가 우리은행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4년 11월 우리은행은 단독 상장됐다. 시가 기준 1만5400원으로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이후 주가는 지속 하락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상장할 경우 시장의 기대감과 시기적 호재가 맞물리며 고평가에 머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장 이후 주가 부진은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실적이 뒷받침되면 주가는 언제든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예대마진에 의존하는 은행의 수익성 문제는 우리은행뿐만 아니라 국내 은행업 전반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따라서 은행의 실적을 거론하며 주가가 상승할 것이란 전망보다는, 수익성 악화에도 불구하고 ‘저평가’돼 있다는 의견들이 주를 이뤘다. 또 ‘고배당’주로 분류된 것은 최고의 호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우리은행의 실적은 은행업을 둘러싼 실적부진 전망을 불식시켰다. 올해 2분기 우리은행의 당기순이익은 3071억원으로 이는 전년 대비 35.8% 증가, 전분기 대비 30.7% 감소한 수치다. 연간 기준 실적 개선세를 이어갔으며 1분기 일회성 비이자이익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실적이 이번 분기에도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은행의 주가는 1만원 초반에 머물고 있다. 어닝서프라이즈에도 불구하고 민영화 작업 관련 지분매각 불확실성이 주가를 억누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생각 없는 우리은행 민영화

시중은행들의 주가 추이를 보면 우리은행과 크게 다른 점은 없다. 다만, 우리은행을 둘러싼 최대 이슈는 여타 은행들처럼 저금리 장기화에 따른 실적이 아닌 면영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는 이미 네 차례 우리은행 민영화에 실패했다. 네 번 모두 일괄매각의 형태로 추진됐으며 이로 인해 인수자의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괄매각이 우리은행 민영화에 걸림돌이 됐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은행은 규제산업이라는 특성 때문에 매수 희망자가 제한적인 데다 덩치도 큰 만큼 인수가격도 부담이다. 따라서 원활한 매각을 위해서는 비교적 싼 값에 지분을 내놓아야 한다.

만약 저가에 지분을 내놓으면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바로 ‘헐값 매각’이다. 과거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한 이야기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으니 이를 생각하면 매각가를 쉽게 낮출 수 없다. 또 정부가 온전하게 공적자금을 회수하려면 우리은행 지분을 주당 1만3000원대에 매각해야 하는데, 현재 우리은행의 주가는 1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민영화’다. 그리고 민영화 이슈는 우리은행의 주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우리은행 민영화에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우리은행 민영화에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정부는 물론 우리은행 측에도 해가 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우리은행이 호실적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찾으라면 단연 민영화의 불확실성이다. 과연 정부는 ‘민영화’라는 뜻에 부합하는 행동을 한 것일까.

이광구 우리은행장, 임기 만료가 다가온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지난 2014년 12월 취임과 동시에 우리은행 민영화를 최대 목표로 잡았다. 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통상 부여되는 3년이라는 임기를 2년으로 줄이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 출처:한국거래소

이 행장은 올해 해외에서 직접 기업설명회(IR)에 나선 바 있다. 그의 행동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움직인 것일까. 올해 초 우리은행의 외국인 투자자 지분율은 20%였으나 최근 24%대로 올라섰다. 취임 당시에는 18%대였으니 ‘이광구 효과’는 분명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KB, 신한, 하나금융지주들의 경우 외국인 지분율이 60%대를 넘어서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연초 우리은행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기업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은 18%대에서 최근 17%대로 낮아져 대조적이다.

중요한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 행장의 말만 듣고 투자하는 단순한 주체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적 베이스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쉽게 돈을 꺼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이 행장 취임 이후 비록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금리는 은행에 악재’라는 직관을 극복해냈다. 그만큼 이 행장도 자신 있게 IR 자리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민영화 추진이 번번이 실패하면서 어느덧 이 행장의 임기 만료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은행은 민영화라는 최대 호재를 앞두고 있지만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도 직면한 상태다.

▲ 출처:KTB투자증권

만약 우리은행 민영화가 연내에 성공하면 이 행장은 분명 소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우리은행 민영화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민영화된’ 우리은행을 이끌어가는 이 행장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은행이 민영화된다고 해서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저금리라는 환경 속에서 실적을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민영화의 불을 지핀 것은 정부가 아닌 이 행장과 우리은행 직원들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우리은행 직원들은 민영화를 기대하며 세 번째 자사주를 사들여 눈길을 끌었다. ‘자의 반 타의 반’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들도 단순 민영화 기대감에 자사주를 매입한 것이 아니라 실적 베이스에 기반을 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행장의 임기만료가 우리은행 주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민영화의 현실화다.

여타 금융지주사들이 몸집을 키워가는 동안 우리금융그룹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우리은행은 계열사들과 분리되면서 오히려 규모가 축소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이라는 역할에 충실하면서 위험을 관리하고 수익성 개선에 힘썼다.

분명 우리은행은 자생력을 길렀고 이제 남은 것은 정부의 우리은행 민영화를 향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뿐이다. 매각 흥행을 위해 매각가를 낮춰 ‘헐값 매각’ 논란이 일더라도 정부는 매각 시기와 방법을 놓친 대가로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대다수의 증권사들이 우리은행을 논할 때, 민영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