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아이폰 7에 인텔의 LTE모뎀 칩을 채택했다는 소식은 인텔에 축복일 듯도 한데 사실은 인텔의 고육지책에서 나온 성과물이다. 더 이상 PC용 칩에만 매달릴 수 없어서 모바일 쪽으로 눈을 돌려 얻어낸 성과다. 1970년대 이후 인텔은 무어의 법칙에 따라서 트랜지스터 집적도를 18개월마다 2배씩 높여서 칩을 생산해냈다. 트랜지스터를 미세하게 만들면 컴퓨터가 더욱 강력해지고 컴팩트해지며 에너지 소비량도 줄었다. 인텔이 주도해온 반도체기술 발달은 강력한 컴퓨팅 기술로 이어졌고 인터넷서비스와 스마트폰을 탄생시키는 배경이 되었으며 인공지능과 유전자공학의 발달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IT 세계에서는 반도체가 무한정 작아지기 힘들다는 점을 인정해 왔다. 작게 만들면 만들수록 고도의 정밀도가 요구되므로 제조가 어렵고 불량률도 증가한다. 작게 만들수록 제조공정이 어려워져서 제조원가는 천문학적으로 증가한다. 제조업체가 원가를 보상받는 유일한 길은 판매량을 늘리는 방법이다. 따라서 한두 개 선두업체를 빼고는 제조원가도 못 건지기 일쑤다. 그러나 만약 컴퓨터의 핵심인 반도체 기술발달이 멈추게 된다면 그 순간부터 가상현실,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최첨단기술들도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같이 멈추게 된다. 레이 커즈와일이 주장해오던 특이점이나 기계성능이 사람을 능가한다는 속설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다.

 

선폭미세화 기술은 한계가 있다

지난 7월 초에 국제반도체기술로드맵(ITRS) 위원회가 발간한 로드맵보고서에는 지난 50년 동안 반도체 기술의 근간을 이루어 왔던 선폭 미세화 기술이 2021년 이후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는 ‘무어의 법칙’이 2020년대에는 지속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회로선폭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더 이상 경제성을 확보할 수 없어서 트랜지스터의 미세화 공정을 멈출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대신 메모리칩에서 적용하고 있는 적층기술을 프로세싱 칩에도 적용해서 수직방향으로 트랜지스터를 적층하는 공법으로 성능을 높여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2013년 ITRS에서도 지적한 내용이다. 단위면적당 트랜지스터 수를 늘리려면 트랜지스터를 적층하는 방법(3D Power Scaling이라 불렀다)밖에 없다고 했다. 인텔은 현재 3D 트라이게이트라는 핀펫(FinFET) 구조를 갖는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는데 이 구조는 트랜지스터 위에 게이트를 얹는 방식이다. 그러나 ITRS 보고서에서는 트랜지스터 기판을 수직으로 세우고 유전체 막과 금속 막을 교대로 증착시켜서 반도체를 감싸주는 방식으로 복합게이트 구조로 만들면 트랜지스터를 다층구조를 만들기 쉽다고 서술하고 있다. ITRS는 트랜지스터의 선폭 미세화란 전통적인 방법이 불가능해진다고 해서 무어의 법칙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언론도 다양한 방법으로 무어의 법칙을 지수함수의 연장으로 다시 정의하려 하지만 무어의 법칙은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 2년마다 트랜지스터 수를 두 배로 늘린다’로 명확하다. 무어의 법칙에선 선폭을 줄여야 한다고 지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주어진 칩 면적에 트랜지스터 수가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평가해서 무어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면 된다. 선폭을 줄이는 것보다 적층하는 방법이 더 경제적이라고 기업들이 판단하면 적층방법으로 트랜지스터 수를 2배씩 증가시켜도 무어의 법칙이 지속된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메모리 적층기술인 3D NAND공법에선 현재 32층(128Gb), 48층(256Gb) 구조 제품을 시판하고 있으며 금년 내에 64층 제품(512Gb)을 시판할 예정이라고 삼성전자는 최근에 밝혔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플래시(Flash) 메모리는 190층 정도까지도 적층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NAND 메모리의 경우 2001년에 160㎚ 선폭으로 만든 1Gb 메모리 가격에 비해 15년이 지난 2015년 말에 제조된 14㎚ 128Gb 메모리 가격은 1/50,000 정도로 줄어들었다. 가격하락이 무어의 법칙보다 더 심하다. 지금까지의 기술 추세를 이어간다면 동일한 면적에서 2017년이면 1Tb, 그리고 2020년이면 수십Tb의 메모리를 제조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트랜지스터의 경우는 다를 수 있다. 트랜지스터도 메모리처럼 지속적으로 적층방식으로 집적도를 높여갈 수 있을지는 아직 기술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트랜지스터는 밀도를 높여도 컴퓨터 속도는 높이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트랜지스터 밀도가 높아지면 컴퓨터 성능이 좋아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트랜지스터 밀도가 너무 높으면 발열로 인해 속도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 현상이 일어난다. 사실 지난 10여년간은 트랜지스터 집적도가 높아졌어도 칩의 클락(Clock) 속도는 증가하지 않은 이유이다. 그래서 칩 성능을 높이는 방법으로 멀티프로세서 즉, 한 개의 칩 속에 여러 개의 CPU코어나 GPU를 병렬로 집어넣은 방식을 활용해 왔다. 멀티코어 프로세서 덕분에 컴퓨팅 성능이 향상된 것이지 트랜지스터 수의 증가로 인해서 컴퓨팅 성능이 향상된 게 아니다. 앞으로 적층구조를 사용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이젠 트랜지스터 수를 증가시켜도 컴퓨터 속도가 증가하지 않는 영역에 도달해 있다. 또한 컴퓨팅 속도가 컴퓨팅 파워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이제 컴퓨터에 기대하는 역할이 단순한 4칙 계산속도가 아니라 지적인 판단능력을 원하는 세상이다. 예를 들면 1980년대만 해도 자동차 가속능력이나 최고속도로 자동차를 평가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젠 자동차 속도로 자동차 성능을 평가하지 않는다. 자동차의 기계적 성능의 차이는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오히려 디자인이나 안락함 그리고 첨단기능성이 눈에 띈다. 전기차인 테슬라 모델 S가 인기 높은 이유는 벤츠나 BMW보다 주행성능이 빼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첨단제어기능,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인포테인먼트, 자동주행 기능 등으로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다. 튼튼한 기계의 힘만으로는 세상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감성적 디자인과 함께 소프트웨어의 성능에 의해서 선호도가 바뀌게 된다.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컴퓨터의 성능은 이젠 일반인들이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비슷하다. 따라서 컴퓨터도 편리한 소프트웨어의 감성적 서비스가 평가의 기준이 되고 있다.

앞으로 컴퓨터 산업이 안게 될 커다란 문제는 컴퓨팅 파워는 계속 증가하지 못하는 데 반해 데이터 발생량은 지수 함수적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된다는 점이다. 데이터 센터에는 수백 수천대의 컴퓨터들이 열을 뿜어내며 가동되면서 전력소비량이 상상을 초월한다. 예를 들면 구글은 2014년도에 440만2836MWh의 전력을 사용했는데 이는 미국 가정의 36만6903가구가 연간 소비하는 전기량이다. 구글의 전력사용량의 대부분은 데이터 센터 가동에 의한 것이다. 이런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IEEE에선 컴퓨팅을 재기동시키는 방안(Computing Rebooting)을 연구하는 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에선 전력소비를 낮출 수 있는 새로운 트랜지스터, 새로운 메모리 디바이스, 뇌신경컴퓨팅, 슈퍼컴퓨팅 회로, 그리고 프로세서 등에 대한 적절한 기술적 해답을 구하려고 한다. 그 첫 번째 모임은 오는 10월에 열린다. 그때 새로운 로드맵 위원회가 개최되며 새로운 관점에서 컴퓨팅 기술을 발전시킬 방향에 대해 목표를 설정한다고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컴퓨터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무어의 법칙을 벗어난 상황에서 하드웨어 업체들끼리 모여 앉아서 로드맵을 짜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역할 분담하는 20세기적 접근법이 앞으로는 통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산업계가 변했다. 지금까지 반도체업계가 직접 칩을 제조했다면 지금은 첨단기술을 다루는 파운드리가 주문자 설계대로 칩을 생산해준다. 지금까지는 반도체 업체가 반도체 형태를 직접 결정했지만 앞으론 그렇게 하기 힘들 수 있다고 본다. 더욱이 첨단 반도체 칩을 제조할 수 있는 기업은 인텔, 삼성, TSMC, 그리고 글로벌파운드리만 남았다. 이들 업체들은 각자의 기술개발 로드맵을 가지고 장비나 부품업체들과 직접 거래하게 된다. 이들은 서로 회사의 운명을 내걸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관계다. 이들이 사이좋게 로드맵을 공유하긴 어렵다고 전망된다. 오히려 기존 산업질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HP의 ‘머신(Machine)’이 차세대 컴퓨터로 떠오른다. HP는 전통적인 컴퓨터 구조로는 데이터 센터를 앞으로 수없이 더 많이 구축해야 하는데 소모 전력을 다 감당할 수도 없고, 데이터양이 처리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강력한 컴퓨팅 파워를 갖는 로컬 컴퓨터인 ‘머신’을 분산 설치하고 인덱스로 연결하면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를 대체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로칼 ‘머신’은 모든 연결망을 통해 전 세계와 정보를 공유하면서도 보안이 철저히 보장된다. HP가 개발한 ‘머신’은 냉장고만 한 크기로 운동장만 한 데이터 센터를 대체할 수 있고 스마트폰에 100Tb메모리를 저장하며 한 번 충전하면 수 주일을 견딜 수 있다고 설명한다. 컴퓨터의 성능, 효율성, 가격, 보안성 등 모든 면에서 지금 폰 노이만형 컴퓨터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컴퓨터 구조는 3% 정도로 간단하고, 크기는 20%, 전력소비량은 11%에 불과하다고 한다. 레이저 통신방식을 채용하여 서버는 250나노 초 안에 160 페타바이트(Pb)의 데이터를 내보낼 수 있다고 한다. HP는 ‘머신’ 개발을 통해 지수 함수적으로 증가하는 사물인터넷 데이터나 정밀의료데이터를 가볍게 처리할 수 있는 미래컴퓨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관련자료 : https://www.youtube.com/watch?v=NZ_rbeBy-ms

https://www.youtube.com/watch?v=e3LgLA0cj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