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지난 8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AA-’에서 ‘AA’로 상향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AA는 S&P의 신용등급 중 세 번째로 높은 등급으로 한국이 AA등급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신용등급이 높을 경우에는 대외 자금조달비용이 줄어드는 이점이 있다. 일반인들이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신용등급에 따라 이자율이 낮은 것과 같이 이치다. 따라서 한국의 신용등급이 상향됐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국가신용등급은 해당 국가의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신용등급의 기준은 ‘현재’에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의 신용등급 상향은 현재 부채상환능력이 높아졌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한국 신용등급 상향 소식에 가장 먼저 반응한 곳은 단연 환율시장이다. 지난 6월 브렉시트 이후 원/달러 환율은 1150원대에서 1180원대 급격히 상승하는 등 변동성이 확대됐으나 이후 시장이 빠르게 진정되면서 최근에는 1100원 초반까지 하락했다. 이후 한국 신용등급 상향 소식이 전해지자 원/달러 환율은 1100원 선을 이탈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중심의 한국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져 있지만 금융시장의 즉각적인 움직임은 다르다. 원/달러 환율 하락(원화 강세)은 그만큼 원화에 대한 공급대비 수요가 높다는 것을 말한다.

한국의 신용등급 상향으로 원화 수요가 증가했다면 국내 시장에서는 안전자산보다 위험자산을 선호하게 된다. 이에 대표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으로 꼽히는 채권과 주식 중 주식을 선택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지면서 증시는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원/달러 환율의 하락은 국내 증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반면, 위험 선호도 측면에서 채권시장에는 부정적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시장금리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 한국채 10년물 금리(좌) 및 코스피(우) 추이 [출처:한국거래소]

일반적으로 금리 하락은 주식시장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들의 자금조달비용이 낮아져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분도 금융시장의 관점에서는 조금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물론 금리하락은 기업들의 영업활동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금리는 경제성장률(구체적으로 기대 인플레이션)을 추종, 즉 미래를 예상해 움직인다. 예를 들어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보이면 향후 경제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에 안전자산인 채권보다 위험자산인 주식을 선호하면서 채권가격 하락, 주가 상승이란 결과로 이어진다.

채권가격이 하락하면 금리는 상승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주가와 금리의 상승은 그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코스피지수와 한국 국고채 10년물 금리추이를 비교해보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 2010년 말까지 코스피와 금리수준은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2011년 이후부터는 주가는 박스권 행보를 지속하고 있는 반면, 금리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금리는 경제성장률을 추종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점차 낮아졌다. 하지만 코스피 지수가 박스권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기대수익률 제로(0)’다. 이는 주식이 인플레이션을 가장 잘 방어하는 자산으로 알려진 만큼 기대인플레이션도 낮았던 탓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2011년으로 돌아가 금리수준과 코스피 기대수익률을 비교하면 왜 채권시장이 지속적으로 강세를 보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비록 과거의 기록이지만 금리가 점차 낮아졌어도 주식시장의 0%(기대수익률)보다는 수익성 측면에서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다시 ‘정상적인 상황’의 경제상황이 나타나려면 주가지수는 상승하고 시장금리는 점차 오름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상황’의 경제상황이 나타나기 위한 필요조건은 무엇일까.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하지만 원화 강세는 국내 물가를 안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의 신용등급 상향조정이 현재의 상황에서 달갑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화의 강세 기조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 코스피 및 원/달러 환율 추이 [출처:한국거래소]

원화 강세는 주식시장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이로 인해 기대인플레이션이 낮아질 경우, 주식시장은 다시 부정적 전망이 지배할 수 있다.

지난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기존 1.25%로 동결했다. 금통위 회의 전, 시장 전문가들은 동결을 예상했지만 ‘소수의견’이 나올지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으나 이날 기준금리 결정은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하반기 기준금리 추가 인하 기대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의견이 제시되는 이유는 바로 원화강세에 따른 경기둔화 우려 때문이다. 한은은 원/달러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다소 약화됐다고 평가하며 지나친 우려를 경계했지만 원/달러 환율의 하락세가 물가와 수출에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인플레이션이 낮아질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실질금리다. 실질금리란 명목금리에서 기대인플레이션율을 뺀 수치로 인플레이션이 낮아지면 실질금리가 상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질금리가 상승하면 국채 금리에 하락압력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원화 강세가 해소되지 않을 경우 금리수준은 지금보다 더 낮아지고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한은의 입장에서 이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이뿐만 아니라 이번 8월 금통위에서 금리를 동결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저금리로 인한 가계부채증가 문제이기 때문에 쉽사리 금리인하 카드를 내놓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를 보면 금통위의 ‘만장일치’는 원화강세에 대한 우려보다는 가계부채 문제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원화강세를 방치했다가는 금리하락 압력이 더욱 커질 수 있으며 한국도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올지 모른다.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 따른 부작용이 노출되고 있는 점도 문제지만 원화는 기축통화도, 안전자산도 아니기 때문에 마이너스 금리 도입 시 자본유출 우려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러한 시기에 발생하는 것이 바로 ‘외환위기’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문제들이 국내 요인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글로벌 경제부진에 따른 결과이기에 통제 자체는 더욱 어렵다. 금통위의 ‘만장일치’ 기준금리동결에도 불구하고 추가 금리인하가 예상되는 것은 결코 이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