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피난처로만 알려졌던 국채 시장이 최근 이상해지기 시작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10일 보도했다.

그동안 통화 정책은 대개 단기 금리를 조정하고, 이에 대해 시장이 반응함으로써 장기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순서였는데, 최근 중앙 은행의 국채 매입과 초 저금리가 이런 흐름을 왜곡시키고 잇다는 것이다.

우선 마이너스 금리와 함께 이자 수익이 없는 제로쿠폰 국채 발행이 늘어나면서 만기 때 투자자가 떠안게 될 잠재적 손실액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로쿠폰은 이자가 없는 대신 액면가보다 큰 폭으로 할인된 가격에 발행되기 때문에 투자자는 만기 때 매입가와 액면가의 차액으로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다.

문제는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낳은 '신종' 제로 쿠폰은 이자가 없는데다, 액면가보다 높은 금액에 거래되는 경우도 있어 최종적으로는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국채 가격이 오르면 투자자들은 유통시장에서 매입가보다 더 비싼 값에 국채를 팔아 수익을 낼 수 있지만, 만기 때까지 이 국채를 갖고 있는 투자자는 그만큼 큰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독일 국채도 이자를 받을 수 없는 제로 쿠폰 국채 발행 규모가 1,600억 유로(약 196조 5,000억 원)에 달한다. 현재와 같은 초저금리가 이어지면, 제로쿠폰 국채는 더 늘어날 것이고, 이는 비싼 값에 국채를 매입해 대규모 손실을 입는 투자자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 신용등급회사인 피치는 앞으로 금리가 2011년 수준으로 회복된다면, 투자등급 국채를 매입한 투자자들이 입게 될 손실은 전체 투자액의 10%인 3조8,000억 달러(4,18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물론 글로벌 경기 둔화로 미국이나 유로존,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의 물가 수준이 중앙은행 목표치인 2%를 달성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올 들어 1% 안팎으로 오르고, 최근 일본의 10년물 국채 금리가 급등세를 보인 것 등은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치는 또 "올해의 국채 금리 하락은 금리가 상승할 경우 전 세계에서 대규모 투자 손실이 발생할 위험을 높였다"며 "금리가 역대 최저수준까지 내려가면서 투자자들이 직면한 금리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파이낸셜 타임스도 영국 국채 수익률이 급감해 마이너스로 떨어졌다고 10일 전했다. 영국은행(BOE)의 대규모 양적완화 프로그램(채권매입)이 시작된 지 사흘 만에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영국 은행(BOE)이 지난 9일 10년 만기 국채 매입이 목표량인 11억7000만파운드를 채우지 못하면서,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이날 사상 최저치인 0.541%를 기록했다.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지난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전 1.40%를 기록했었다. 약 한달 반 만에 1%포인트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또 3개월 전만 해도 2.3% 였던 30년 만기 국채도 사상 처음으로 1.3%까지 하락했다.

마이크 아메이 핌코 자산관리전문가는 “BOE가 6개월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한 지 사흘 만에 시장에서 이런 반응이 나온 것은 놀라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에 대해 BOE의 양적 완화 조치가 올해 국채 금리 붕괴를 가속화 시켰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