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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준의 ‘동행(同行)’] 게이가 많은 곳에 벤처 혁신이 있다?
   

<창조적 계급의 탄생>(Rise of Creative Class)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가 진행한 재미있는 연구가 있다. 그가 미국의 여러 도시들을 살펴보며 하이테크 기업 분포와 창업률(Founding Rate)에 대해 살펴보다가 재미있는 가설 하나를 떠올리게 됐다.

사회에서 비교적 소수자인 게이들이 많을수록 그 지역의 창조성 수준이 높고, 하이테크 기업 분포도 또한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발상이었다(오해하지 마시라. 이 글은 동성애 인권에 대한 칼럼이 아니다). 일단 동성연애자를 허용하는 사회는 다양한 삶의 기준을 허용하는 포용적 커뮤니티(Inclusive Community)일 가능성이 높고, 기존 사회 통념이 비교적 덜 작용하기 때문에 스타트업 같은 것들을 하기에도 적합할 것이라는 논리가 플로리다의 주장이었다.

그는 제자인 필자의 지도교수 연세대 이삼열 행정학과 교수와 지역사회에 얼마나 다양한 ‘게이’가 분포해 있는가 지수를 개발하고, 계량 분석을 했다. 그 결과 플로리다의 당초 연구 질문 대로 게이가 넓게 분포하는 지역일수록, 하이테크 기업 빈도도 높았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실리콘 밸리였다.

이 연구 결과는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바로 ‘분권화(Decentralization)’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은 애초부터 지방 분권 국가로 만들어졌다. 지역과 산업의 독자성이 매우 강하다. 따라서 한쪽 도메인에서 통했던 성공 공식이 다른 쪽에서는 전혀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관념이 국민들 사이에 공유되어 있다.

전문가들이 4차 산업 혁명 기반의 스타트업 혁신을 말하며 손꼽는 나라들이 있다. 영국, 독일 그리고 중국 같은 나라들이다(좀 더 넓게 보면 ‘제작소 문화’가 발달한 일본도 포함될 수 있다). 이들 나라들은 정부의 시장 개입 정도가 강하긴 하지만 역시 분권 국가다. 특히 중국을 중앙집권제 국가라고 보면 곤란하다. 공산당의 정책 지도하에 산업이 굴러가지만 지리적 특성에 의해 너무 다른 문화권이 한 나라 안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를 배운 것이 아니다. 차이가 당연한 사회 속에서 서로 다른 산업과 시장이 한데 뒤엉켜 생존해 가는 경험이 누적된 것이다.

   

반면 우리는 거의 7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중앙 집권제 경험을 했다. 우리나라의 관료제 기반 산업 정책은 엄밀히 말하면 막스 베버(독일의 관료제론 주창자)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래된 왕토 사상(王土思想)에 입각해 산업과 시장 또한 다스림의 대상으로 보았던 시각이 강하다.

이런 나라에서 정부가 큰 예산을 집행하고, 그를 위해 과제를 기획하고, 그중 일부러 스타트업 진흥 정책을 집어넣어 육성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역으로 뒤집어 보면 이런 풍토하에서 미국의 실리콘 밸리나 중국의 중관춘 같은 지역을 벤치마킹하겠다는 논리가 맞지 않는다. 엄연히 역사와 문화가 다른데, 그들을 역할 모델로 삼겠다니. 좀 이상하다.

필자는 관(官) 주도형 벤처 혁신 정책을 꼬집지도, 시장의 미숙함을 비판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우리가 이토록 ‘돈 버는 스타트업을 찾기 힘든가’에 대해 고민하려면, 한국의 혁신 생태계가 어디서 출발했느냐에 대한 분석도 필요할 듯하다. 지금까지 이 고민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미뤄왔다. 글로벌 경쟁 환경은 한국의 관료와 기업들이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고 곧바로 전쟁에 뛰어들라고 한다.

천영준 공학박사  |  taisama@naver.com  |  승인 2016.08.18  18: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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