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은 늙어가면서 그 가치를 알고, 낡음은 새로움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진리다. 우리가 운전 중 사고를 예방하려면 백미러를 잘 봐야 하듯이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미래로 안전하게 나아가는 방법이다.

인생이 단절되지 않듯이 사업모델이나 상품도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경우는 없고, 모든 개발 과정이 과거와 맞닿아 있다. 소비자의 구매행동도 마찬가지다. 소비흐름을 4단계로 분류해 설명하려는 이유는 바로 과거로부터의 소비흐름에서 미래를 예측해 보려는 시도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소비자의 구매행동 즉 소비의 맥락을 알면 앞으로 어떤 상품, 어떤 업종을 개발하고 선택해야 하는지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네 번째 소비사회’는 필자가 지난 30년간 창업컨설팅을 하면서 소비트렌드를 연구해온 경험으로 구분한 것이다.

먼저, ‘첫 번째 소비사회’는 도시 중심 소비사회로 시기적으로는 1986년 아시안게임 이전까지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인구의 도시집중화로 도시가 급팽창하고, 도시로 올라온 시골 청년들이 지방에 없는 상품을 사서 고향에 보내주는 시대였다. 웬만한 신제품은 지방에서 살 수도 없었고, 살 여력도 되지 못했던 시기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소비가 도시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때는 제조업과 무역, 오퍼상이 우리 산업의 근간을 이루었고, 지금처럼 다양한 서비스업은 찾아보기 어려웠던 시절이다. 창업 상담도 대부분 제조업과 오퍼상 창업을 위해 찾아오는 중장년층이었다. 기억하겠지만 당시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김우중)>라는 책도 무역과 오퍼상 창업을 자극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우리는 미증유의 사고가 발생하면 인연이나 관계(Relationship)를 생각한다. 이 기간 안에 일어난 IMF 금융위기(1997년)는 이러한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때 바로 조찬모임같은 ‘아침산업’이 뜨기 시작했고, 함께 즐기는 스포츠클럽과 패밀리레스토랑이 전성기를 구가했던 것도 우연은 아니다.‘두 번째 소비사회’는 86년 아시안게임부터 2003년 카드대란까지로 구분할 수 있으며 ‘가족 중심 소비’가 주축을 이뤘다. 이 시기에는 가족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상품들이 봇물을 이뤘다. 가전제품이 대표적인데 당시 TV, 냉장고, 세탁기를 묶어서 삼종소비시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시안게임을 거치고 월드컵을 기다리면서 외국인들이 몰려오던 때라 ‘물 건너온’ 수입상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해외브랜드 중심의 전문점들이 대거 창업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물론 해외여행객들, 특히 패키지여행이 이전과 비교할 때 확실히 늘어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이때에 해외여행에서 본 업종과 결합한 퓨전업종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다. 여행 가서 경험한 음식을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심리를 파고든 것인데, 에스닉푸드(Ethnic Food), 즉 다른 나라의 전통음식은 입맛에 잘 안 맞으니 우리 음식과 융합해서 새로운 퓨전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덕분에 자영업 시장은 전통업에 퓨전이 얹어져서 전에 없던 전성기를 누렸다. 내수시장이 커지자 자영업의 프랜차이즈화가 시도됐고,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도 이 시기에 설립됐다. 가족 중심의 소비시대에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으로 행복을 맛보려는 소비행동 패턴을 보였던 시기였던 것이다.

‘세 번째 소비사회’는 2003년 카드대란부터 2019년까지로 규정할 수 있다. 이 시기는 베이비부머의 자녀들이 주 소비층의 중심에 설 것으로 보인다. 산아제한 정책 아래 출생한 세대여서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점도 이전 시기와 다르다. 따라서 ‘개인 중심 소비시대’로 규정할 수 있다.

가족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이동하는 신호를 준 것은 바로 ‘무선호출기(삐삐)’였다. 독자들도 기억하겠지만 8282(빨리빨리), 100(돌아오라), 1004(천사), 981(급한일), 1010235(열열이 사모한다)와 같은 단축숫자들이 사용됐던 시기다.

그 뒤를 이은 휴대전화는 문자 중심이어서 열폭(열등감이 폭발한다), 심쿵(심장이 쿵), 노답(답이 없다), 갈비(갈수록 비호감) 같은 약어들이 있지만 당시는 숫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일방형 디바이스(Device)여서 숫자로 소통하는 정도였다.

이 시기는 가전(家電)에서 개전(個電)으로,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전환된 시기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 중심 소비는 남과 다른 상품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숨어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같은 상품을 거부하게 되고, 기업은 다양한 제품을 맞춤형으로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웰빙(Wellbeing)도 개인소비의 메가 트렌드다. 웰빙은 ‘복지·행복·안녕’을 뜻하는데 주로 개인의 건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합리적 소비와 메스티지(Mastiage)와 같은 소비트렌드가 힘을 얻은 시기이기도 하다. 질 좋은 제품을 보다 싸게 사려는 소비행동인데 유니클로, 자라같은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Brand)가 급성장한 것도 언급한 트렌드와 맞물려 있다. 앞으로 이러한 소비자행동은 3~4년 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 ‘네 번째 소비사회’는 2019년 이후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지방소비 시대’로 규정할 수 있다. 그 시기는 베이비부머가 직장에서 모두 물러나고 그 자녀세대들이 주력소비층에 진입하는 시기인 데다 우리나라 인구가 줄어드는 시점이기도 하다.

심신이 피로한 은퇴자들이 대거 지방으로 내려가고, 관공서들이 지방 혁신도시에서 자리를 잡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지방소비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지방소비시대가 온다는 것은 환경을 생각하고 이웃을 염려하는 공동체적 소비가 자리를 잡아가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개인의 건강을 중시하는 ‘웰빙’ 소비에서 더불어 이로운 ‘로하스(LOHAS, 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소비로 본격 전환될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이는 ‘공유경제’도 표현은 달리할 수도 있겠지만 같은 맥락에서 정착될 것이고, 더불어서 고정된 틀 속의 이기적인 유기체보다는 함께 해결하는 공동체, 그리고 직업(Job)보다는 자발적 일거리(Work)에 더 관심을 갖는 시대가 올 것이다. 즉 이기주의 소비에서 이타주의 소비로 바뀌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지방소비시대가 오면 ‘고향납세제도’ 도입이 탄력을 받게 될 것 같다. 일본에서 성공리에 정착되고 있는 이 제도의 배경은, 일반적으로 청소년기에는 지방에서 자란 경우가 많은데 도시로 취업을 하게 되거나 도시에서 사업을 하면 그 세금은 모두 거주지인 도시로 내게 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점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자신을 키워준 고향에 일부라도 납세하자는 운동인데 공식적인 세금은 아닐지라도 기부 형태로 고향에 납세하면 기부금으로 처리해서 세금을 깎아주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고향에 납세하면 고향에서는 특산물을 선물로 보내주는데, 그 덕분에 고향의 농수축산물 시장이 활기를 띠게 되는 등 2차효과도 있어서 앞으로 논의가 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외에도 로컬푸드 직매장, 제주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 같은 지방거리 걷기(롱트레일) 같은 지방 중심의 소비패턴이 열리게 될 것이며, 이러한 기반 구축을 위해 민관이 협력하는 거버넌스(Governance)형 비즈니스모델이 다양하게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 시기에는 도농(都農) 간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플랫폼 채널을 기반으로 한 여러 가지 사업모델이 보편화될 것이다. 예컨대 농산물 직거래, 유휴지 공유, 인력 공유와 같은 플랫폼들을 통해 도농 간의 거래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정리하면 첫 번째 소비사회는 ‘도시 중심소비’ 두 번째는 ‘가족 중심소비’ 세 번째는 ‘개인 중심소비사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앞으로 지속될 ‘지방 중심 소비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