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경쟁력을 결정짓는 현장의 혁신활동은 궁극적인 방향이 같더라도 해당 업계의 특성과 각 기업의 혁신 경험, 실행 수준 등에 따라 추진방법론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단일한 방법론으로 어느 기업에서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 우리 기업들의 수준은 글로벌 수준의 경영 및 관리 수준에 도달해 있다. 기업마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하고 새로운 문제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안고 있다. 더 이상 모든 기업에 적용 가능한 획일적인 방법론도 없거니와, 공통의 문제해결 방법이 기업이 추구하는 ‘차별적 경쟁우위’를 실현해 주지도 못한다.

7, 80년대 품질수준과 생산관리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산업화 초기에는 일본 오퍼레이션 컨설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정부 차원에서 표준협회, 생산성본부와 손을 잡고 일본의 혁신활동을 배웠다. 현장에 산재하는 기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의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 이때 마치 사제지간처럼 일본의 방법론을 배워 국내 기업에 전파하던 전문가들이 곧 컨설턴트였고, 필자는 이들을 1세대 컨설턴트라 부른다.

2세대 컨설턴트는 90년대 이후 6시그마 등으로 대표되는 혁신기법들이 국내에 유입, 유행처럼 퍼져나갔던 시대에 등장했다. 기업 내부에서 혁신활동을 경험한 뒤 컨설턴트로 전직하여, 동일한 혁신기법을 타 회사에 전파하던 혁신사무국 출신 전문가들이다. 제조업의 특성보다는 일률적으로 혁신기법을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빠른 속도로 기업이 성장했고, 점차 우리 환경에 맞는 기법인지에 대한 고민도 시작됐다.

2000년대 이후에는, IMF 당시 국내에 대거 도입됐던 글로벌 컨설팅사 인력들이 독립하며 소규모컨설팅회사들의 창업이 이어졌다. 주로 전략 컨설팅 중심의 글로벌 컨설팅 경험과 노하우를 토대로 하는 합리적 비용의 컨설팅이 강점이었다. 이 시기의 컨설턴트를 3세대로 구분한다.

기업의 컨설팅 니즈와 컨설팅사에서 제공하는 방법론 간의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 이 때부터다. 우수한 인력과 글로벌 시장경쟁의 경험을 갖춘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전략 수립에는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전략의 난이도가 높아짐에 따라 계획을 실행하는 구성원들의 혁신추진 역량이 이에 미치지 못했다. 산업화 전개와 구성원의 세대교체 그리고 이에 따른 기업관, 직업관이 변화하면서 ‘안 되면 되게’ 하던 과거의 왕성한 실행력을 어떻게 재창출해낼 수 있을지도 기업의 주요한 고민이었다.

스스로 성장할 방법과 역량을 찾아가고 있었던 기업이 컨설팅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어떠한 전략이나 방법론이 아니다. 우리 기업을 실제로 움직이게 할 ‘무언가’인 것이다. 그러니 기업은 필요한 전문가를 찾지 못하고, 컨설팅은 시장이 침체되고 있다는 엇갈린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다.

최근 ‘전사적 혁신전략 수립 및 실행력 강화’를 의뢰한 두 기업 사례를 통해 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석유화학업계 A 사는 지난 20년간 꾸준히 혁신활동을 전개한 경험이 있는 선도기업이다. 향후 지속적 경쟁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혁신의 전략과 방향성, 실행력 등 총체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였다. 제약업계 B 사의 현장은 혁신활동 경험은 적지만 높은 교육 수준의 우수한 인력으로 구성돼 있었다. 투자를 통해 글로벌 수준의 생산설비와 매출 규모도 이미 갖추었지만, 생산성, 품질 등 오퍼레이션 측면의 질적 경쟁력을 동시에 겸비하기 위한 혁신전략과 실행력 강화가 필요했다.

동일한 ‘혁신실행력 강화’ 요청이었지만 처방 내용은 완전히 달랐다. 현장혁신의 실질적 주체인 조직 구성원들이 이해하는 혁신의 방향과 관점, 실행력의 강약점에 있어 A, B 사가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고, 동일한 방법론으로 두 회사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이처럼 기업의 진정한 니즈를 이해하고 충족시킬 수 있는 ‘4세대 컨설턴트’들의 육성과 확보가 필요하다. 날로 높아지는 기업의 혁신수준과 경영환경의 복잡성은 기업마다 고유한 문제해결방법과 혁신실행력을 요구한다. ‘기업의 내부에서 출발하는 혁신’, ‘기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혁신’,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혁신’을 생각한다면 그것이 곧 차세대 컨설팅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