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형 유통업체인 월마트가 8일(현지시각) 신생 전자상거래 스타트업 제트닷컴을 33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30억 달러의 현금과 3억 달러에 달하는 월마트 주식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업계에서는 오래된 오프라인 유통 권력이 이제 막 설립 1년차로 접어든 신생 스타트업에 33억 달러라는 거금을 투입한 장면과 더불어, 그 이상의 목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마존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마트의 행보는 그 본연의 뜻과는 별개로 다양한 시사점을 남겨 눈길을 끈다.

▲ 출처=월마트

제트의 정체
제트닷컴을 평범한 스타트업으로 보기는 어렵다. 출범 당시부터 다양한 방법론을 보여주는 한편, 그 인적구성도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웹사이트 오픈 하루만에 무려 100만 달러의 물품을 팔아치웠다. 그런 이유로 지난 2015년 7월 제트가 설립될 당시 많은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높은 관심을 보인 바 있다.

먼저 제트의 방식이다. 제트는 코스트코와 아마존의 경계에 서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박리다매와 중독성 있는 할인체감을 무기로 삼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시작했다. 취급물품은 1000만개 수준으로 적었지만 포장단위가 컸다. 또 연회비는 50달러로 아마존 프라임의 절반, 코스트코보다 약간 저렴한 수준이고 개별상인이 직접 입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른 쇼핑몰과 연대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으며 배송적 문제에서 약점을 드러내기도 했으나 구매액이 35달러를 넘으면 배송 서비스 및 한 달 이내의 제품을 반품할때 발생하는 비용은 받지 않는 파격적인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약점도 나중에는 완전히 보강되어 아마존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다.

주요 수익원이 판매수수료가 아니라 연회비며 구입 금액에 따라 할인을 적용하기도 한다. 특히 상품을 결제하며 점진적으로 할인을 체감하게 만드는 부분은 초창기 제트의 출범에 관심을 보였던 많은 언론이 집중했던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트가 출발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금수저 스타트업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은 바로 마크 로어 CEO다. '아마존이 가장 두려워하는 남자'로 명성을 떨치는 그가 제트를 설립했기 때문이다.

마크 로어는 통계학과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그가 사회에서 손댄 것은 의외로 기저귀 사업이었다. 동시에 마크 로어는 소위 충성고객 전략을 펼치며 고객들이 소소한 가격차이보다 편리하고 신속한 서비스를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를 집중적으로 공략해 고객 감동 마케팅까지 전개해 나간다.

이후 마크 로어는 기저귀 닷컴의 모기업인 쿼드시(Quidsi)를 2010년 아마존에 매각시켰고 2년간 일했다. 그러나 이미 '다음'을 위한 작업은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었다. 이에 마크 로어는 지난해 초 옛 기저귀 닷컴의 직원들과 함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해낸다. 바로 제트다. 시범 웹사이트 공개 전부터 2억2500만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한 그는 지난해 2월 중국의 알리바바로부터 1억 4000만 달러의 추가투자를 끌어내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마크 로어는 생활밀착형 아이템의 절실함과,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파고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아마존과 코스트코의 사이를 넘나들며 그 교집합을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품어갔다는 평가다. 더불어 결제과정에서 고객을 할인의 즐거움에 매료시키고 박리다매 전술과 연회비 수익구조로 최상의 플랫폼도 잡아갔다. 1년 만에 매출 10억달러를 기록했으며 회원 360만명, 입점업체 1600곳을 확보했다.

▲ 출처=제트

월마트는 무엇을 원하는가
아마존이 월마트를 추월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도 지난해 6월 10일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이코노믹 클럽에 참석해 “올해 안에 월마트를 이길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월마트도 ICT 기술의 발전을 마냥 묵과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나름의 수를 내어 상황을 타개하려는 행보를 노렸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실제로 월마트는 2014년 2월 더그 맥밀런 CEO의 지휘아래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구사하며 제2의 도약을 꿈꾸기도 했다. 1990년 월마트 제품구매 견습사원에서 시작한 더그 맥밀런은 그 유명한 ‘낚시줄 메모 일화’로 성공신화를 쓴 젊은 사업가며 취임과 동시에 월마트닷컴의 대대적 업그레이드를 추진하는 한편 옴니채널까지 아우르는 '모든 것을 위한 전략'(everything strategy)을 구사하기도 했다. 지난해 처지가 비슷한 대형 유통공룡과 커런트C 동맹군을 꾸린 대목도 이러한 몸부림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월마트의 온라인 성장률은 신통치 못했다. 시장조사업체 슬라이스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e커머스 측면에서 2016년 6월 기준 월마트는 성수기 효과를 빼면 고작 30% 성장에 머물렀다. 온라인 매출은 더욱 암담해, 판매 성장률 기준으로 전년과 비교하면 2015년 12.3% 늘어나는데 그쳤으며 2016년 1분기는 7%로 바닥을 기었다.

결국 월마트가 제트를 품어내는 이유는 '온라인 경쟁력 확보'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마존의 전방위적 공략을 막아내며 상거래 시장에서 나름의 존재감을 확보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월마트가 보유한 막대한 오프라인 거점과 제트의 독특한 전자상거래 기술력이 결합하면 그 이상의 시너지도 가능하다는 평가다. 심지어 양사의 판매 아이템도 전자기기와 가정용품이 주를 이루는 상황에서 월마트는 의류 및 전자제품, 제트는 생활필수품으로 범위를 좁힐 수 있다. 겹치는 영역이 적다는 것도 이번 인수합병을 이해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아마존이 두려워하는 남자'인 마크 로어를 확보할 길도 열렸다. 전자상거래 업계의 천재로 불리는 마크 로어의 합류는 추후 월마트의 새로운 도전에 큰 힘이 되어줄 전망이다.

▲ 출처=월마트

오프에서 온으로, 온에서 오프로
이 지점에서 월마트의 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월마트는 전통적인 유통 대기업의 흐름을 따라가며 관련 인프라를 수직계열화로 모은 기업이다. 오프라인에 방점을 찍은 상태에서 다양한 시도를 거듭했지만 그 이상의 비전에 대한 각오는 의외로 약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더그 맥밀런의 온라인 퍼스트 전략이 의외로 힘을 받지 못한 대목과 일맥상통한다. 그 촘촘한 수직적 인프라에 온라인은 사실상 공백이었다.

하지만 아마존은 온라인에서 출발해 철저하게 수평적 인프라를 구축, 전형적인 O2O 플랫폼을 구축한 케이스다. 월마트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필요한 지점을 확보해 위계질서를 세웠다면 아마존은 전자상거래의 가능성을 중심에 두고 수평적, 아니 아마존을 중심에 둔 상태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원형으로 둘러버렸다.

이러한 양사의 차이는 발전 로드맵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었다. 아마존은 프라임으로 대표되는 배송 상품에 월스트리트저널 콘텐츠를 탑재하는 등 다양한 방법론을 유연하게 사용하는 한편, 드론과 항만은 물론 비행기까지 아우르는 총체적 인프라를 단 하나의 목적인 '전자상거래'에 집중시켰다. 그러나 월마트는 태생부터 수직적 인프라를 잡아간 상태에서 '앞으로 진격해 나가야 할 곳'으로 온라인의 공백을 남겨둔 셈이다.

그런 이유로 월마트는 오프라인, 아마존은 온라인에 핵심을 둔 상태에서 플랫폼과 지향점을 모두 온오프라인에 뒀지만 비율로 따지면 플랫폼의 경우 월마트가 오프라인 우세, 아마존은 아마존 우세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앞으로 월마트와 아마존의 대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오프라인에서 시작된 기업의 O2O 전략은 풍부한 시장 노하우를 바탕으로 온라인을 이용하는데 그친다면 온라인에서 시작된 기업의 O2O 전략은 플랫폼 역할 자체를 '중개' 수준에 머물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이 위력적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월마트의 제트 인수합병은 오프라인을 무대로, 온라인의 가능성을 품어내는 방법론의 정석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추구했던 기존 방식을 완전히 버려야 하며 온라인 방정식을 온전히 이해한다면 그 자체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전망이다. 하지만 수평적 인프라를 통해 온라인에서 출발했지만 의외로 플랫폼에서 오프라인에도 관심이 많은 아마존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닐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아마존은 생태계를 구축하며 대시와 알렉사, 가상 및 증강현실은 물론 스마트 디바이스 운용까지 섭렵한 전술의 천재다.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월마트가 오프라인이기에 강점을 가지면서, 또 오프라인이기에 약점을 보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