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매뉴얼, 워크숍, 트레이닝, 시뮬레이션 등으로 계속 위기관리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내부 조직 변화 속에서 시스템을 계속 살아 움직이게 하려니까 힘이 듭니다. 예산도 그렇고 계속 시스템을 관리하는 것이 점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느낌이 나네요. 다른 수가 있을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공감합니다. 실제 많은 기업들이 그와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기관리 시스템 업무를 시작한 실무자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처음 시작할 때는 매뉴얼만 한 번 만들어 놓으면 되겠다 싶었다고 하지요. 웬걸,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었더니 그 매뉴얼에 대해 사내 대부분이 이해를 못하는 상황이 발견된 것입니다. 황급하게 위기관리 매뉴얼을 위기관리팀에게 이해시키는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그 후 실제 위기가 발생해도 그 이전과 별반 다른 점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저번에 공유했던 위기관리 시스템을 따르지 않느냐?”고 여러 부서들에게 물어봤답니다. 그랬더니 “한 번 워크숍 한 내용을 어떻게 다 기억하고 있나?”라는 당황스러운 답변들이 돌아왔답니다.

그래서 그 실무 담당자는 얼마 후 다시 해당 매뉴얼을 기반으로 한 위기관리 대응 훈련이나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을 진행했습니다. 그 후로 대부분의 부서들은 ‘이제야 위기관리팀의 역할이나 프로세스를 이해했다’는 반응들을 나타냈지요.

그로부터 약 3개월이 지나자 부서 변동과 조직개편이 있었답니다. 임원들 몇 명이 퇴사를 했고, 위기관리팀에 소속된 인원의 절반가량이 새로 임명된 거죠. 그랬더니 이제는 회사에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위기관리팀 구성원이 반도 채 되지 않게 돼버린 것입니다. 해당 실무자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사실 비단 위기관리 시스템만 그런 건 아닙니다. 대기업들의 경우 매년 새로 임명되는 신임 임원들이 수십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인사교육 부분에서는 지속적으로 임원 훈련을 제공합니다. 이를 가지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생각하는 기업은 없습니다.

신입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어떻습니까? 사내 준법교육은 어떻습니까? 성희롱 방지 교육들은 어떻습니까? 안전이나 품질관리 교육들은 어떻습니까? 다른 대부분의 사내 교육과 역량 개발 시스템들도 원래부터 그렇게 반복성과 지속성을 바탕으로 관리되어 오고 있습니다.

위기관리 시스템 관리 작업이라고 해서 그리 별다른 특성이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위기관리 시스템 관리 작업이 반복될수록 실제 위기 발생 유형과 빈도에는 이내 변화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위기관리 워크숍과 시뮬레이션을 통한 경험을 바탕으로 실무에서는 위기 현상을 미리 발견하고 감지하는 직원들의 역량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온라인 부문을 담당하는 팀장이 문제 발생 가능성이 있는 메시지를 정리하고 있는 일선 직원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게 됩니다. “작년에 경쟁사에서 지금 그 내용하고 아주 비슷한 포스팅을 기업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한 일주일 고생했던 거 기억 안나요? 그 사진이랑 내용 이렇게 바꾸세요.” 이미 발생한 유사 케이스를 기억하고 미연에 문제를 방지하게 된 것입니다.

영업팀장이 이런 지시를 합니다. “거래처들하고 단체 카카오톡방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들 하면 안 됩니다. 회사 지시사항에 대해서 그대로 옮겨서 커뮤니케이션 하는 데만 사용하시고, 그에 대해 개인적으로 허락되지 않은 부연설명 최소화 하세요.” 혹시나 모를 거래처 문제를 방지하는 가이드라인을 내려주는 것입니다.

공장장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워크숍에서 조언 들었던 것 같이 공장 사고가 발생하면 지역 언론들이 사고현장을 방문할 텐데, 이에 대한 대응은 어떤 팀에게 담당시켜야 할까? 만약 기자실이나 브리핑 공간이 필요하면 공장 내 어디에 설치해야 하지? 공장 내 회의실은 위치가 좋지 않은데…어쩌나….” 이런 고민을 바탕으로 해당 계획을 보강하라는 지시를 하게 됩니다.

지속적인 위기관리 시스템 마인드 고취는 분명하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닙니다. 위기관리 예방 예산은 반복될수록 하향하고, 위기관리 복구 예산은 반복될수록 상향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후진국들과 일부 기업들은 매번 대비 없이 위기를 겪고 위기관리 복구에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잘 유지 관리된 위기관리 시스템만큼 위기 시에 소중한 자산은 없습니다. 이는 실제로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동의합니다.